꽃뱀
초기 면담은 평행선 위를 걷는 일이다.
박 씨는 이제 작정한 듯 자신의 범죄를 '사랑에 배신당한 남자의 비극'으로 포장하기 시작한다. 아니, 포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정말로 자신이 피해자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법의 테두리가 어디까지인지 모르는 무지(無知)는 때로 이토록 당당한 억울함을 낳는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이미 식어버린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다. 따뜻했던 온기는 가시고, 혀끝에는 미지근하고 밍밍한 액체만 남는다. 쓴맛과 탄맛의 경계가 무너진 그 텁텁한 산미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주무관님, 솔직히 말해서 그 여자 꽃뱀입니다.”
그의 입술 사이로 날것의 단어가 튀어나온다.
“5년을 만났어요.
지가 필요할 땐 돈 빌려달라, 뭐 사달라 다 해서 내가 뒷바라지 다 해줬는데... 그날은 술 먹고 기억도 안 나는 상황에서 지가 신고를 해버린 겁니다.”
그는 정말 억울함에 목이 메는 듯 헛기침을 하며 말을 잇는다. 가래 끓는 듯한 거친 숨소리가 좁은 면담실을 채운다. 피해자인 여자친구를 향한 원망에는 망설임이 없다.
“경찰도 그래요. 여자 말만 듣고 입건해버리고. 이번에도 합의금을 천만 원이나 달라고 하길래, 내가 안 준다 카니까 이 사달이 난 겁니다.
주무관님, 이게 정말 감옥까지 갈 일입니까?”
나를 향해 쏟아지는 건 가공되지 않은 항변이다.
현장에서는 종종 법의 맹점을 이용해 상대의 목을 죄는 잔인한 인간사를 목격하곤 한다. 그 역한 가능성이 찰나처럼 스친다.
'정말로 피해자가 영악한 사냥꾼이었을까.'
하지만 고개를 저어 의구심을 털어낸다.
지금 내 앞에는 오직 그의 일방적인 주장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그의 기억은 이미 자기중심적으로 재구성되어 있고, 나는 그 말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박 씨가 내뱉는 ‘꽃뱀’이라는 단어는 자신의 추악한 욕망을 가리기 위해 빌려온 비겁한 방패에 불과했다. 그 방패 뒤에 숨어 그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었다.
“박대기 씨, 그건 본인 생각이고요.”
내 목소리는 아까 마신 식은 커피보다 차갑게 내려앉는다.
“법원은 박대기 씨의 행위를 범죄로 판단해서 이곳으로 보낸 겁니다. 피해자 탓은 그만하세요.”
내 차가운 일침에 박 씨는 다시 입을 꾹 다물고 눈을 내리깐다. 여전히 억울하다는 듯 거칠게 몰아쉬는 그의 숨소리가 책상 위로 흩어진다.
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잠시 멈칫한다.
이미 자기만의 확신으로 단단하게 굳어버린 이 세계를 마주하며,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뒤틀린 인식을 조금이라도 깎아낼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회의감이 손가락 끝에 묵직하게 걸린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끝내 알 수 없을 것이다. 피해자가 정말 돈을 노린 사냥꾼인지, 박 씨가 그저 파렴치한 가해자인지. 다만 분명한 건, 그는 지금 법의 관리 아래 들어왔고 나는 그의 ‘다음’을 막아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나는 박 씨의 일방적인 항변을 전산에 입력했다. 모니터 속에는 확인되지 않은 그의 말들만 가득 채워졌다.
내 안에는 허망함이 낮게 감돈다.
우리 곁의 불편한 이웃들에 대한 낯선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례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철저히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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