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
박 씨가 억울하다는 듯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앉았던 의자에는 근거 없는 항변의 온기가 눅눅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다음 대상자인 용수철을 마주한다. 관자놀이 부근에 찌릿함이 스쳐간다. 연이은 기 싸움이 남긴 흔적이다.
나는 침침해진 눈을 지그시 비비고, 뻐근하게 굳은 뒷목과 어깨를 손끝으로 꾹꾹 눌러본다. 돌처럼 단단해진 근육이 뭉근한 저항감을 내뱉고 나서야 겨우 다음 사람을 볼 여력이 생긴다.
용 씨는 공장에서 막 퇴근한 차림이었다.
여기저기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과 투박하게 갈라진 손등, 그리고 목덜미에 남은 검은 그을음까지. 그가 다가올수록 기름 냄새가 면담실의 차가운 에어컨 바람 사이로 스며든다.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의 그는 그저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낸 성실한 노동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주무관님, 저 진짜 술 끊었습니다.
요즘 진짜 너무 바빠서 술 마실 시간도 없습니다.”
용 씨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결백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 응시에는 미세한 지연이 있다. 자신의 거짓말이 무사히 통과될지 가늠하는 눈빛. 나는 그 찰나의 흔들림을 놓치지 않는다.
나는 대답 대신 서랍에서 음주측정기를 꺼냈다.
플라스틱 케이스가 열리는 달칵- 소리가 정적을 깬다.
용 씨의 눈동자가 아주 찰나지만 날카롭게 떨렸다. 측정기 앞에서 누구나 보이는 본능적인 공포. 그는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측정기에 입술을 가져다 댄다.
기계가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 사이로 나는 아주 짧은 기도를 한다. 제발, 0.000이라는 무결한 숫자가 떠서 내가 이 사람의 옹졸한 거짓말을 추궁하지 않게 해달라고. 그를 몰아붙이는 데 쓸 감정의 소모를 멈추게 해달라고.
액정 화면 위로 숫자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0.021%]
책상 위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는다.
도로 위라면 훈방으로 끝났을 수치일지 모르나, 이곳에선 다르다. 그에게 부과된 특별준수사항 ‘일정량 이상의 음주를 하지 말 것’을 정면으로 위반한 숫자다.
사실 일정량이라는 표현은 참으로 모호하고도 위험하다. 누군가에게는 맥주 한 잔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소주 한 병일 수도 있는 그 빈틈을, 용 씨 같은 이들은 기가 막히게 파고든다. 하지만 내게 '일정량'이란 몸 안에 알코올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상태, 즉 0.000%를 의미한다.
“용수철 씨, 이거 뭡니까? 술 안 마셨다면서요.”
내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용 씨는 당황한 기색을 지우며 곧바로 황당한 논리를 꺼내놓는다.
“아... 주무관님...
제가 요즘 간이 안 좋아서 해독을 못 하나 봅니다. 어제 진짜 딱 한 잔 마셨는데, 그게 아직도 안 깨고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진짜입니다.”
어디선가 본 어설픈 지식을 제멋대로 짜 맞춘, 구차하고도 창의적인 항변. 용 씨는 이제 성실한 죄인의 얼굴 대신, 마치 희귀 질환이라도 앓고 있는 환자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간 해독’이라는 허술한 변명 뒤로 숨어버린 그를 보며, 나는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얼마나 더 구차해질 수 있는지 목격한다.
'또 시작이군.'
말을 길게 섞는 것도 이제는 힘이 빠진다.
나는 최대한 짧고 단호하게 그를 제압하기로 한다.
“용수철 씨, 기계 정상이고, 오류 아닙니다.
보이시죠? 준수사항 위반입니다.”
나의 차가운 일침에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인다. 0.021이라는 숫자를 전산망에 차갑게 입력하는 동안, 면담실에는 그의 거친 숨소리만 남는다.
용 씨는 끝까지 중얼거리다 구부정하게 면담실을 나선다. 대체 술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끌어내리는 것일까.
관자놀이의 찌릿함이 다시 한번 나를 스친다.
오늘 나의 기도는 실패했다.
흩어지지 못한 허망함이 갈 곳을 잃고
내 안에 묵직하게 가라앉는다.
우리 곁의 불편한 이웃들에 대한 낯선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례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철저히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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