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관찰소의 밤

로그아웃

by 한가을


판결이 끝난 사람들(첫대면)

판결이 끝난 사람들(민낯)

판결이 끝난 사람들(꽃뱀)

판결이 끝난 사람들(기만)


오후 6시

창밖의 도시는 푸르스름한 어둠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인근 건물들의 불빛들이 퇴근과 함께 하나둘 꺼져갈 때, 보호관찰소의 창문은 여전히 창백한 불빛을 토해낸다.


보호관찰관에게 퇴근은 시계가 정한 시간에 오는 것이 아니다. 내 앞에 놓인 수십 명의 인생을 전산망에 무사히 안착시킨 뒤에야 비로소 허락된다.


밤이 깊어질수록 사무실의 한숨 소리는 오히려 잦아든다. 우리 일은 결국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허투루 쓸 수 없는 시간 속에서 각자의 속도로 업무를 처리해 나가는 고요한 압박의 시간.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메운다.


낮 동안 면담실을 가득 채웠던 비릿한 기름 냄새와 옹졸한 고함, 구차한 변명들은 자취를 감췄지만, 그 잔상들은 여전히 전산망 안에서 나를 응시한다.



나는 전산망을 연다.

모니터에서 뿜어 나오는 푸른 빛이 피로한 안구를 찌르고, 화면 위로는 무표정한 내 얼굴이 희미하게 비친다.


보호관찰관으로 산다는 건

인간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거짓말이 기본값이다.


음주 수치가 나오면 대놓고 속인 인간이고, 수치가 나오지 않으면 출석 전에 운 좋게 긴장을 좀 한 인간일 뿐이다. 씁쓸하지만, 그것이 내가 마주하는 현실의 온도다.


낮에 만난 용수철의 이름을 검색한다. [0.021%].

그 숫자를 입력하는 손가락 끝이 무겁다. 그의 간 해독 능력을 운운하던 황당한 항변을 정제하여 상황보고에 등록한다.


내가 적어 내려가는 이 문장들은 단순한 일기가 아니다.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할 근거가 되고, 때로는 다시 교도소 담장 안으로 밀어 넣는 칼날이 되기도 하는 기록이다.


책상 위에는 아직 전산에 넣지 못한 대상자들의 기록이 쌓여 있다. 종이 뭉치마다 배어 있는 각기 다른 죄의 냄새가 어둠 속에서 진동하는 듯하다.


야근하는 동안 따뜻한 차 한 잔 마실 여유조차 없다.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모니터 속 리스트와 씨름하다 보면 허기조차 마비되곤 한다.


밤 9시, 10시.

시계바늘이 깊어질수록 사무실의 공기는 농밀해진다. 전산에 입력된 숫자들은 차갑지만, 그 숫자를 만들어낸 이들의 삶은 너무나 축축하고 끈적하다. 그 괴리를 메우기 위해 우리는 밤마다 눈을 부릅뜨고 기록을 이어간다.


마지막 점 하나를 찍고 로그아웃을 한다.

비로소 오늘 마주한 인간들의 그림자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다. 사무실 불을 끄고 복도로 나선다.



정적에 잠긴 사무실을 벗어날 때,

옆 사무실 유리문 틈새로 환한 빛이 새어 나온다.


전자감독과

그곳의 시계는 24시간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의 발목에 채워진 전자장치가 보내는 신호를 감시하며, 그들은 또 다른 밤을 지새우고 있을 것이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박힌다. 관사로 향하는 길목에는 낮의 활기가 거세된 오래된 공구골목이 어둠을 껴입은 채 가라앉아 있다.

굳게 닫힌 상점들 사이로 쇠 냄새와 묵직한 윤활유 향이 밤이슬에 섞여 떠다닌다.


나는 그 골목 한복판에 멈춰 선다. 그리고 내 안에 낮게 감돌던 허망함과 팽팽했던 긴장의 끈을 이 서늘한 밤공기 속에 슬그머니 섞어 보낸다. 그제야 나는 묵직한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는다.


머릿속에는 이미 내일 아침 출장지가 좌표처럼 찍혀 있다. 변두리 오래된 아파트, 가는 데만 1시간. 지도를 켜지 않아도 내일의 동선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들의 삶은 내 머릿속에서 퇴근하지 못한 채 나와 함께 걷고 있다.





우리 곁의 불편한 이웃들에 대한 낯선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례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철저히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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