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합니다
예전에는
누군가와 인연을 끊는다는 게
참으로 무겁고 비장한 일이었습니다.
밤새 고민하고,
편지를 썼다 지우고,
술잔을 기울이며 속을 끓이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했죠.
하지만 요즘은 다릅니다.
메신저의 차단 버튼 하나면 충분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친구
말이 통하지 않는 연인
피곤하게 하는 직장 동료.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들은 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이것을 손절이라 부르며,
쿨하고 현명한 대처라고 여깁니다.
“안 맞으면 빨리 끊어내는 게 답이야.”
“감정 낭비하지 마.”
서점의 베스트셀러들도 하나같이
불편한 관계는 정리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내 주변을 그렇게 깨끗하게 정리했는데
왜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시리고 휑한 걸까요?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상황이 꼬이면 우리는 리셋 버튼을 누릅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간관계에 적용하는 현상을 관계 리셋 증후군이라 부릅니다.
지금의 세대는
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풀고 봉합하는 과정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왜 내가 에너지를 써가며 맞춰야 해?
세상에 널린 게 사람인데.”
망가진 물건을 고쳐 쓰기보다 새것을 사는 게 익숙한 소비 사회의 습관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도 스며든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고유한 인격체가 아니라
언제든 대체 가능한 기능이나 콘텐츠로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거나 불편함을 주는 순간
그 관계는 폐기 처분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가 매정해서가 아닙니다.
너무 지쳐서 그렇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우리는 이미 자아 고갈 상태입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데
타인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감정을 소모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관계 유지의 효용보다 갈등 해결의 비용이 훨씬 높게 책정된 것입니다.
싸우고
오해를 풀고
사과하고
화해하는
그 지난한 과정이 비효율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성비 좋은 선택을 합니다.
바로 손절입니다.
깊어지면 상처받고
부딪히면 피곤하니
아예 얕은 관계에서 머물거나
문제가 생기면 도망쳐버리는 것.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 되어버린 슬픈 현실입니다.
문제는
손절이 습관이 될 때입니다.
나에게 100% 맞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나와 타인은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고
그 다름이 부딪히는 지점에서 관계의 깊이가 생겨납니다.
갈등은
관계의 위기가 아니라
서로의 경계선을 확인하고
조율하는 성장의 기회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불편해도 잘라내기 시작하면
결국 내 곁에는 내 비위를 맞춰주는 사람
혹은 아무런 깊이도 없는 피상적인 관계들만 남게 됩니다.
손절로 만든 깨끗한 인맥 리스트는
사실 고립의 증명서일지도 모릅니다.
갈등을 견디는 근육이
퇴화된 채로 홀로 남겨진
무균실 속의 외로움인 셈입니다.
물론 당신을 해치고 존중하지 않는 관계는 단호히 끊어내야 합니다. 그것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가지치기입니다.
하지만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조금 ‘불편하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가위를 들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한 번 찢어졌다 꿰매 본 옷이
내 몸의 곡선에 더 잘 맞게 되듯
갈등을 겪고 화해해 본 관계가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주는
단단한 울타리가 됩니다.
오늘
차단 목록을 한번 들여다보세요.
그중 한 명쯤은
손절이 아니라 잠시 멈춤이 필요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불편함을 견디는 그 잠깐의 시간이
당신의 관계를 소모품에서 반려로 바꾸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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