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

부채감

by 한가을

청년들이

부모님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사랑이 아니라 죄송함입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키워주셨는데,

제가 아직 자리를 못 잡아서요.”


“집 한 채는커녕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차서 면목이 없어요.”


부모님은 “건강하기만 해라”라고 말씀하시지만,

그 말 뒤에 숨겨진 옅은 한숨을 우리는 기가 막히게 감지합니다.


고성장 시대를 살아온 부모 세대에게 성실함은

곧 성공으로 이어지는 확실한 티켓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자녀 세대에게

성실함은 그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일 뿐입니다.


이 시대적 시차가 부모와 자식 사이에

거대한 죄책감의 강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랑이 투자가 될 때


우리나라의 부모님들은

자녀를 위해 당신의 삶을 기꺼이 갈아 넣으셨습니다.


안 먹고 안 입으며 학비를 대고,

노후 자금을 털어 자녀의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그 숭고한 희생은 감사한 일이지만

역설적으로 자녀에게는 갚아야 할 심리적 부채가 됩니다.


자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부모의 투자 상품으로 인식합니다.


‘나에게 이만큼 투자하셨으니,

나는 그에 상응하는 번듯한 직장과 안정된 수익을 돌려드려야 해.’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그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할 때

청년들은 자신을 실패한 투자처로 여기며 깊은 자기비난에 빠집니다.


사랑받았기에 오히려 괴로운, 부채감의 역설입니다.


거리두기


부모님의 전화를 피하거나

명절에 고향 가기를 꺼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부모님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초라함을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감당할 수 없는 부채감은 회피라는 방어기제를 불러옵니다. 채무자가 빚쟁이를 피하듯, 마음의 빚을 진 자녀는 채권자(부모)를 피하게 됩니다.


부모님의

기대 섞인 눈빛

혹은 걱정 어린 잔소리는

자녀에게 “너는 아직 빚을 갚지 못했어”라는

독촉장처럼 날아와 박힙니다.


그러니

연락을 줄이는 행위는

무너져가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거리두기이자 생존 전략인 셈입니다.


정서적 탯줄


이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리학자 아들러는 과제의 분리를 강조합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의 과제이고

내 인생을 내 속도대로 살아가는 것은 나의 과제입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생기는 그분들의 실망감은 냉정하게 말해 부모님이 감당하셔야 할 몫입니다. 그것까지 내가 짊어지고 괴로워하는 것은 효도가 아니라 자아의 침범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꿈을

대신 이뤄드리기 위해 태어난 아바타가 아닙니다.


독립된 인격체로서

내 삶을 꾸려가는 과정에서 겪는

행착오와 가난은 부모님께 죄송해할 일이 아니라

내가 감당해야 할 내 삶의 일부일 뿐입니다.


당신은 상환의 대상이 아닙니다


부모님보다

가난하다고 해서

당신의 삶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부모 세대가 겪어보지 못한 경쟁과 불안 속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를 버텨내고 있습니다.


효도는 내가 성공해서 금의환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단단하게 살아내어

“저 잘 살고 있어요”라고 웃으며 말해주는 것.


비록

월세방일지라도

내 공간에서 밥 잘 챙겨 먹고

내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는 것.


그것이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만 하는 진짜 효도입니다.


당신은 부모님께 갚아야 할 빚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 자체로 빛나는, 독립된 우주입니다.





모두들 명절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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