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포렌식
범죄의 영역이 소리 없이 넓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주먹이 오가고 몸에 상처가 남는 사건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결이 다르다. 상흔은 더 이상 피부에만 남지 않는다. 휴대폰 액정 뒤에 숨어, 누군가의 일상을 통째로 무너뜨린다.
손바닥 안 작은 창에서 시작된 이 공격은 빛의 속도로 번진다. 한 번 퍼진 고통은 아무리 닦아내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지독한 얼룩이 된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일상을 잠식하는 이 보이지 않는 파괴력이야말로 오늘날 범죄가 가진 진짜 얼굴이다.
그래서일까. 면담실에서 마주하는 이런 종류의 가해자들은 겉보기에 너무나 평범하다. 피해자의 고통을 눈앞에서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비겁한 거리감이 그들에게는 죄책감 대신 지독한 오만함을 심어준다.
면담실 책상 위로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걸려 있다. 사무실 안으로 낯설고 진한 향수 냄새가 훅 끼쳐온다.
안대용 씨가 계속해서 누르는 볼펜 소리.
그는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는다. 비딱하게 기대앉은 자세에서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성급함이 읽힌다. 인위적인 향기는 나른한 오후의 공기와 뒤섞여 금세 면담실을 답답하게 만든다.
“주무관님, 제가 오늘 프로젝트 마감이라 1분 1초가 아깝거든요. 대충 서류만 하고 끝내면 안 될까요? 제가 지금 좀 급하거든요.”
안 씨는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본론부터 던진다. 조리 있는 말투와 한톤 올린 활기찬 목소리로 연막탄을 친다.
지방 국립대 출신의 앱 개발자.
그는 익명의 채팅방 뒤에 숨어 누군가의 일상을 도려냈던 디지털 성착취물 가해자다. 누군가의 고통을 유희로 즐겼던 그의 손가락은, 이제 비싼 볼펜을 신경질적으로 굴리며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
나는 그의 조급증을 지켜보다가 질문을 던진다.
“안대용 씨, 본인에게 부과된 특별준수사항 잘 아시죠?”
그는 볼펜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린다.
“갑자기요? 글쎄요...
법원에서 뭐라고 하긴 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요...
그냥 출석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예상했던 반응이다.
가해자들은 불리한 의무 앞에서 언제나 선택적 망각을 택한다. 나는 대답 대신 책상 위에 놓인 그의 판결문을 툭, 소리 나게 짚으며 내용을 읊어준다.
“같이 보시죠. 판결문입니다.
‘본인이 소유하는 디지털 기기에 대해 미성년자 접근, 불법성착물 소지 여부 확인을 위한 보호관찰관의 디지털 검사 요구에 성실히 응할 것.’ 이제 기억나시죠?”
그는 마지못해 대답한다.
“아, 그... 네. 들은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주무관님, 제가 지금은 정말 바쁘거든요....
아. 근데...지난 일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니십니까?”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기록된 문장 앞에서는 어떤 화려한 말도 힘을 잃는다는 걸 본인도 알기 때문이다. 나는 흔들림 없이 다음 단계를 요구한다.
“그럼 지금 휴대전화 좀 보여주시죠.
특별준수사항에 따라 오늘 휴대폰 확인 진행하겠습니다.”
그는 기가 차다는 듯 비아냥거린다.
“...지금 당장요? 하...참....
어차피 회사 업무용으로만 쓰고 있어서 아무것도 안 나올 텐데요.
아...대충 좀 하시면 안됩니까.
이 거 진짜 기분 나쁜데...
주무관님이 보신다고 아시겠습니까?”
면담실에 날카로운 정적이 흐른다.
나는 테이블 위, 그의 최신형 스마트폰을 응시했다.
'저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날카로운 흉기였다는 사실을 그는 정말 모르는 걸까.'
“그렇군요.
안대용 씨 말처럼 그냥 봐서는 잘 모르겠네요.
다음 출석 때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하겠습니다. 국과수에 정밀 분석 의뢰할 테니 일정 비워두세요.”
그 순간, 안대용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굳어진다. 삭제 버튼 뒤로 숨겨둔 데이터들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공포가 그의 눈을 스친다.
“...국과수요?
아니, 이건 사생활 침해 아닌가요?
업무용 보안 톡도 다 들어있는데, 이건 좀 심하잖아요.”
그는 휴대전화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버틴다. 하얗게 질려가는 그의 손가락 마디를 보며 나는 낮게 대꾸했다.
“거부하시겠다는 뜻인가요?
이건 본인이 지켜야 할 준수사항입니다.”
단호한 목소리에 그의 입술이 떨린다.
사생활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보려던 발버둥이 무력하게 꺾인다. 면담실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은 들어올 때와 달리 눈에 띄게 위축되어 있었다.
나는 기록지에 마지막 문장을 적는다.
[디지털 검사 고지 시 불안 및 거부감 표출. 사생활 침해를 명분으로 회피 시도하나 준수사항 고지 후 수용. 차회 국과수 분석 의뢰 예정]
안대용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비싼 향수 냄새와 그보다 더 지독한 불안의 잔향이 엉겨 붙어 있다.
'저 향수가 가리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포렌식 기술로 파헤친들, 데이터 너머에 숨은 일말의 반성까지 끄집어낼 수 있을까.'
범죄는 빛의 속도로 확산되는데, 진실을 쫓는 나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다. 기계는 수만 조각의 일상을 쏟아내지만, 그 무의미한 데이터의 늪에서 찰나의 악의를 솎아내는 것은 결국 나의 몫이다. 디지털이라는 거대한 안개 속에서 한 뼘의 진실을 찾는 일. 아득하게 느껴진다.
나는 다시 마음을 추스르며 조용히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기계가 아닌 사람의 눈을 마주해야만 비로소 만질 수 있는 진짜 이야기들이 여전히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곁의 불편한 이웃들에 대한 낯선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례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철저히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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