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이 끝난 사람들

마음의 빚

by 한가을


나는 보호관찰관입니다.

판결이 끝난 사람들(금지된충동)

판견이 끝난 사람들(폐쇄병동)


산 중턱 병원을 뒤로하고 내리막길을 따라 천천히 산을 내려온다. 굽이진 길을 빠져나와 다시 운전대를 잡은 지 40여 분. 창밖은 은빛 파이프와 거대한 탱크들이 미로처럼 엉킨 공장 지대로 바뀐다.


끝도 없이 이어진 국가산업단지의 육중한 공장들, 그리고 대형 화물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항만 길을 지난다. 처음 보는 공장들을 스칠 때마다 이 도시의 거대한 동력이 느껴진다.


산업단지의 끝자락을 벗어나면, 도시의 화려함과는 동떨어진 낯선 풍경이 나타난다. 화려한 네온사인 대신 투박한 간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외지 노동자들이 고단한 잠을 청하는 모텔촌이다. 주변에 술집들이 듬성듬성 있지만, 유흥가 특유의 들뜬 분위기는 없다. 그저 하루의 노동을 마친 이들이 잠시 머물다 떠나는, 정막한 도시의 변두리일 뿐이다.


대낮 모텔 주차장. 나는 유흥업소에 발을 들이는 듯한 묘한 긴장감을 누르며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1층 출입문을 열자마자 햇볕에 잘 마른 수건에서 나는 뽀송한 냄새가 먼저 나를 맞는다.


“주무관님, 오셨습니까.”


안내실 옆에 딸린 좁은 방에서 강남철 씨가 나온다.


50세 신용불량자

통통한 체격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그는 과거 국가산단 내 큰 기업의 잘나가던 간부였다. 월급 천만 원을 상회하던 시절, 그는 유머가 넘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이른바 마당발이었다. 하지만 그 서글서글함 뒤에는 오만함이 숨어 있었다.


회식 자리마다 술기운을 빌려 여직원들의 어깨를 짚고 허벅지를 만졌다. 볼에 뽀뽀를 하는 일도 예사였다. 남의 인격을 가볍게 여기던 그의 오만함은 결국 그를 법정에 세웠고, 끝내 이 낡은 모텔 안내실로 그를 밀어 넣었다.


화려했던 경력은 해고와 함께 끝이 났고, 연이은 사업 실패로 12억의 빚만 남았다. 이제 그는 형님이 운영하는 모텔에서 방을 치우고 시트를 빠는 청소부로 산다.


월 100만 원의 현금

한 달에 손에 쥐는 건 현금 100만 원이 전부다. 통장을 만들면 바로 압류가 들어오니,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생계 수단인 셈이다. 그는 이 돈에서 딱 절반을 떼어 전처에게 보낸다. 자기 손에 남는 건 고작 50만 원뿐이지만, 그는 이 돈을 보내며 무너진 자존심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듯 보였다.


“먼 길 오셨는데 물이라도 한 잔 드세요.

아, 참. 주무관님, 이거 선물 받은 건데 진짜 달아요. 한번 드셔보세요"


강 씨가 배 두 알을 냉큼 내민다.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올 걸 뻔히 알면서도, 좋은 게 생기면 뭐라도 나누고 싶어 하는 그 특유의 정감.


“안됩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지만, 보호관찰관의 자리는 언제나 그 호의보다 한 걸음 뒤에 머물러야 한다.


“이번 주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별일 없으셨고요?”


질문이 떨어지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일주일을 쏟아낸다. 그의 일상은 지독하게 반복적이고 고독하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미소 섞인 얼굴로 한 곳을 향한다.



"주무관님

이번 주말이 제 생일인데 딸을 만나기로 했어요.

오랜만에 같이 밥 한 끼 먹으려고요.”


“이번에는 꼭 보셔야 할 텐데, 가능할까요?”


“그럼요. 이번엔.

아빠 생일이라고 딸이 먼저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중학교 2학년인 딸은 아빠의 파산도, 숨기고 싶은 과거도 모른다. 그저 엄마와 헤어져 따로 사는 줄로만 안다. 남철 씨는 딸 앞에서만큼은 예전처럼 번듯한 아빠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간절한 마음은 현실 앞에서 자꾸만 무색해진다.


딸에게는 아빠의 빈자리보다 친구들과 놀러 갈 용돈이 더 급해 보였다. 약속을 해놓고도 학원 숙제나 친구 핑계를 대며 미루는 일이 잦았다. 아빠가 보고 싶은 마음보다, 아빠의 지갑이 보내주는 ‘송금 완료’ 메시지가 더 반가운 사춘기인 걸까.


강 씨에게 텅 빈 지갑보다 더 아픈 건, 그 지갑 말고는 가족과 연결될 끈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처음 이혼할 때는 그냥 형식인 줄로만 알았어요.

빚더미에 가족들까지 앉힐 수 없으니까...

서류상으로만 갈라서는 거라고 약속했거든요.

그런데 정신 차려보니...

제가 진짜 남이 되어 있더라고요...

이제는 애엄마가 저를 정말 남처럼 대합니다..


그는 말을 멈추고 잠시 먼 곳을 보았다. 무거운 침묵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그는 참았던 숨을 길게 내뱉으며 다시 입을 뗐다.


“딸한테는 정말 미안해요...

엄마한테 용돈을 받으면서도 저한테 또 달라고 ...

아빠가 아직도 돈 많이 버는 줄 알고...

그럴 때마다 속이 타들어 가요...”


강 씨의 서글서글한 눈가에 물기가 맺힌다.

딸에게 초라한 아빠이고 싶지 않은 마음과 빈 지갑을 만지작거리는 현실. 그 사이에서 그는 위태롭게 서 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기록지에 옮긴다.


[생계 기반 매우 취약함, 가족 관계 회복 의지는 강하나, 금전적 지원에 의존한 피상적 관계 유지로 인해 실질적 유대 형성 미흡함]


모텔을 나와 생수 한 모금을 마신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내비게이션에 보호관찰소를 입력하고 천천히 엑셀을 밟는다. 산을 넘고 공단을 지나 모텔촌까지 이어진 긴 여정이 차창 밖 풍경과 함께 밀려난다.


오늘 마주한 삶의 냄새들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씻어낼 수 없는 타인의 삶을 한 겹 더 껴입은 채,

그렇게 나의 긴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우리 곁의 불편한 이웃들에 대한 낯선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례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철저히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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