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이 끝난 사람들

폐쇄병동

by 한가을

나는 보호관찰관입니다.

판결이 끝난 사람들(금지된충동)


내비게이션의 화살표가 도시의 경계를 지운다. 굽이진 길을 따라 산속으로 오를수록 소음은 멀어지고, 대신 짙은 숲이 창을 덮는다.


사람들은 이곳을 그저 정신병원이라 부르지만, 내게는 법이 포기한 이들을 사회로부터 물리적으로 도려내 가두어 둔 거대한 유예 공간이다.


건물 뒤편, 포장되지 않은 흙마당으로 차를 몰았다. 키 큰 나무들이 쏟아내는 짙은 그늘은 대낮임에도 서늘한 습기를 머금고 있다. 나무 밑동 근처에 시동을 끄자, 비로소 이곳의 무게감이 전해진다.


차 문을 열자 흙냄새와 함께 정체된 공기가 훅 끼쳐온다. 한여름의 열기조차 산그늘의 고요 앞에서는 제 기세를 잃고 흩어진다.


매번 오는 출장이지만, 이 곳의 정막함은 늘 어깨 위로 긴장을 얹어 놓는다. 나는 의식적으로 긴 숨을 내뱉으며 병동으로 향한다.



병동 건물 1층 복도는 길고 좁다.

천장의 등은 하얀 빛을 쏟아내고, 그 빛 아래 양옆 벽면에는 환자들이 직접 만든 작품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강렬한 색채의 유화부터 섬세한 종이 공예까지.


이곳에 갇힌 이들이 빚어냈다고는 믿기 힘든 화려함이다. 그 예술적인 온기가 낡은 건물의 냉기와 부딪쳐 기괴한 슬픔을 만들어낸다.


저 색채들 안에는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한 문장들이 겹겹이 칠해져 있다. 붓질의 간격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불안과 강박의 흔적들을 마주한다.



나는 화려한 잔상들을 지나쳐, 철제 난간을 잡고 계단을 오른다. 층을 오를수록 공기의 밀도가 달라진다.


마침내 3층

폐쇄병동 문 앞에 선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복도에 길게 울려 퍼진다.

잠시 후 보호사가 다가와 문을 연다.


안녕하십니까. 황태자 씨 면담하러 왔습니다.”


보호사는 내 공무원증을 흘긋 확인하고는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문이 열리는 찰나, 그 틈새로 이곳만의 특유한 공기가 배어 나온다. 소독약 냄새, 그리고 그 밑바닥에 달라붙은 약물 냄새다.


환자들의 피부를 통해 배출된 고용량 항정신성 약물과 땀이 뒤섞여 만들어낸, 비릿한 잔향이 공중에 무겁게 고여 있다. 밖에서 보던 정적은 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 묵직한 공기 속으로 매몰된다.


그 공기를 가로질러, 태자가 나타난다.


스물다섯 지적장애인


약 기운 때문인지 얼굴은 퉁퉁 부어올라 있고, 피부는 핏기 하나 없이 푸석하고 허옇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허공을 부유한다.


그는 여자친구를 향한 통제되지 않는 집착 끝에 건물에서 뛰어내리려 소동을 피웠고, 그 소동의 끝이 바로 이곳, 행정입원이었다. 자살 충동이 있는 대상자들에게 법이 줄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도 잔인한 보호 장치.


“선생님, 저 퇴원하고 싶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


태자가 내 눈을 바라보며 매달린다.

나는 그를 진정시키며 면담 테이블에 앉혔다. 나는 그의 간청 너머, 이곳에서의 일상을 촘촘히 확인해야 한다.


“태자 씨, 여기 앉아봐요.

병원 생활은 어때요? 적응할 만해요?”


“...심심해요. 나가고 싶어요.”



“밥은 잘 나와요? 점심 뭐 먹었어요?”


“... 그냥... 맛 없어요.”


태자는 어린아이처럼 투덜거린다. 나는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약물의 농도가 적당한지, 혹은 인지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지는 않았는지 살핀다.


“병원에서 프로그램은 좀 참여하고 있어요?

1층에 걸린 그림들 보니까 엄청 예쁘던데, 태자 씨도 뭐 좀 만들고 그래요?”


"저는 안 해요... 누워 있어요.”



태자의 대답은 짧고 파편적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할 정도의 무기력함인지, 아니면 그저 의지가 없는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병원에서의 생활 태도는 향후 그가 사회로 복귀했을 때 재범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다시 한번 강조한다.


“태자 씨, 프로그램 빠지지 말고 참여해요.

여기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 집에도 빨리 갈 수 있는 거예요. 알았죠?”


내 말에 태자는 알아들었는지 모르는지, 그저 멍하니 고개만 끄덕이다가 다시 간절하게 애원한다.


“선생님

우리 아빠한테 전화 좀 해주세요

아빠가 전화를 안 받아요.”


태자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린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적막한 고립 속에서, 매달 유일하게 자신을 마주해 주는 이방인에게 던지는 맹목적인 매달림이다.


온전하지 않은 정신 속에서도 그가 붙잡은 것은 아버지를 향한 지독한 허기였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이미 아들의 번호를 차단했다. 거듭되는 범죄와 예측할 수 없는 돌발 행위를 감당하며, 아버지는 이미 영혼까지 소진된 상태였다.


사실 현장에서 만나는 지적장애 대상자들의 재범을 막을 방법은 거의 없다. 성폭력 치료도, 나의 훈계도 그들의 투박한 인지 능력 앞에서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 판사들조차 처벌과 선처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여기로 그들을 보낸다.


면담을 마칠 때쯤, 대기실 문이 열리며 경찰관 두 명이 들어왔다. 병원에 적응하지 못한 태자가 진정서를 남발했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 내게 흐느적거리며 매달리던 태자가 순식간에 굳어버린다. 공권력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그를 옥죄는 것을 보며, 나는 면담 기록지에 적어 내려간다.


[지적장애, 시선접촉 불안정, 경찰 조사 시 극도의 경직 및 방어적 태도...]


병원을 빠져나오는 길,

다시 1층의 화려한 작품들 앞을 지난다.

불이 꺼지지 않는 이 거대한 공간.

아마도 아버지가 응답하지 않는 한, 태자의 간절한 허기는 이 창백한 빛 아래 박제된 채 남겨질 것이다.


나는 다시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을 켠다.

다음 행선지를 알리는 기계적인 목소리가 차 안을 울린다. 지도를 켜도 갈 곳 없는 누군가의 인생을 뒤로한 채, 나의 좌표는 다시 다음 현장으로 향한다.






우리 곁의 불편한 이웃들에 대한 낯선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례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철저히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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