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이 끝난 사람들

가스라이팅(1)

by 한가을

나는 보호관찰관입니다.


보호관찰소의 공기는 대체로 무겁다.

누군가의 억눌린 한숨이 공간을 채운다.

이곳의 성격은 숫자로도 선명히 드러난다.


95 대 5.

열 명 중 아홉 명 이상이 남성 대상자인 이 공간에서 여성 대상자를 마주하는 것은 생경한 일이다.


그래서였을까.

책상 위에 놓인 은하수 씨의 판결문은 그 두께보다 더 무거운 의문을 남겼다.


죄명은 스토킹.

그런데 피해자 칸에 적힌 이름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보통은 남자가 여자의 일상을 조여오기 마련인데, 이 사건은 반대였다. 아내가 남편을 스토킹했다는 이 낯선 구도 앞에서 나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이 부부 사이에는 어떤 어긋난 문법이 흐르고 있는 걸까. 호기심보다는 걱정을 누르며 나는 그녀를 기다렸다.


면담실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검은색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아담한 키에 까만 생머리, 모자 캡 아래로 살짝 보이는 가녀린 목선이 유독 도드라졌다.


“은하수 씨,

마스크를 좀 벗어볼까요?

본인 확인을 해야 해서요.”


내 권유에 그녀가 마지못해 마스크를 내렸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옅은 화장조차 가리지 못한 인형 같은 외모였다.



동그란 눈과 작은 얼굴. 스물여덟.

인생에서 가장 눈부셔야 할 나이의 그녀는 이곳의 칙칙한 분위기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서류를 정리하며 나지막이 물었다.


"은하수 씨는 예전에 인기가 참 많았겠어요.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죠?"


"아... 네. 그냥...

남자인 친구들이 좀 많았어요."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피했다.

한때는 그 활달함이 매력이었을 그녀가 지금은 왜 제 그림자조차 숨기려 하는 걸까. 나는 기본적인 사항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다.


“현재 주소지가 태양아파트 맞나요?

여기서 계속 지내는 거죠?”

“네... 맞아요.”


가족은 어떻게 되나요? 누구랑 살아요?”

“남편이랑... 둘이 살아요.”


판결문 속 피해자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며 나는 펜을 멈췄다.


“남편분과는 언제 결혼하셨어요?

기록을 보니 올해 5월에 혼인신고를 하셨네요.”


“네. 재판 진행되면서 하게 됐어요.

오빠가... 결혼하면 판결에서 유리할 수도 있다고 해서요. 저를 생각해서 같이 가서 해줬어요.”


은하수 씨는 초혼이었고 남편은 재혼이었다. 남편은 그녀를 고소한 상태에서 혼인신고를 제안했다고 했다. 판결에 유리할 것이라는 이유를 댔지만, 내 눈에는 그것이 배려라기보다 그녀를 자기 곁에 묶어두려는 수단처럼 보였다.


나는 기록지의 다음 장을 넘기며 물었다.


"보통 스토킹 사건은 판결문에 '피해자 접근 금지' 명령이 함께 나오거든요. 그런데 은하수 씨는 그 조항이 없네요?"


"네...

오빠가 법원에 탄원서를 냈어요.

자기가 옆에서 잘 보살피겠다고...

이 사람은 저 없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요."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눈은 고마움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혼인신고로 법적인 끈을 만들고, 이제는 탄원서로 접근 금지라는 마지막 안전장치까지 없애버린 것이다. 그녀가 배려라고 믿는 것들이 하나둘 쌓일수록, 그녀가 도망칠 길은 더 촘촘하게 막히고 있었다.


“지금 직업이 있나요?”

“...없어요.”


질문 내내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단순히 긴장해서라고 보기엔 떨림이 선명했다. 오랜 음주가 몸에 남긴 흔적이었다.



“집에서는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해요.

TV 보다가... 자다가...밥 먹고…

약속도 없고, 밖에 나갈 일도 없거든요.

오빠가 제가 나가는 거 싫어해서…

그냥 집에만 있어요.”


그녀는 자신을 고립시킨 남편의 통제를 사랑이나 보호라고 믿는 듯했다. 나는 서류를 넘겨 그녀가 지켜야 할 조건을 가리켰다.


“은하수 씨,

꼭 지켜야 하는 준수사항이 있어요.

‘혈중 알콜농도 0.03% 이상의 음주를 하지 말 것’.

제가 예고 없이 방문해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위반하면 집행유예가 취소될 수 있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는 아무런 생기도, 의욕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가 나간 뒤 기록을 다시 살폈다.

남편 김 씨에게는 1년 전 은하수 씨를 심하게 폭행해 처벌받은 전과가 있었다.


자신을 폭행한 남자와 혼인신고를 한 여자.

그리고 자신을 처벌받게 한 여자를 다시 곁에 두기로 한 남자. 이 기이한 결합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남편이 베풀었다는 그 모든 호의가 과연 그녀를 위한 것이었을까.'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며칠 뒤 전산망 메인 화면에 붉은 숫자 하나가 박혔다.


비극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 곁의 불편한 이웃들에 대한 낯선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례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철저히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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