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의 언어로 감정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2024년 7월 3일, 서울아산병원 교수님 진료실.
"마음 씨, 정말 없어요?"
- "... 아뇨, 있어요."
" 그 고민이 뭔가요?"
- "제가 전이 감정이 있어요."
감정 전이 또는 전이(transference)는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고안한 개념으로, 과거의 상황에 느꼈던 특정한 감정, 혹은 날 때부터 무의식에 새겨진 정서를 현재의 다른 대상에서 다시 체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을 치료자 등에게 무의식적으로 전환(redirection) 혹은 투사(projection)하는 것이다. 보통 유년기의 일차적 관계(primary relationship)에서 오는 감정과 관련되어 있다. 내담자를 치료하던 중, 내담자가 치료받다가 상담자에게 특정 감정을 느끼는 것을 전이라고 하고, 반대로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감정을 느끼는 것을 역전이라고 한다.
- 출처 wikipedia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은 집에 돌아와 유독 말이 많아졌다. 진료실에서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종알종알 떠들어댔다. 무슨 대화를 나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내가 얼마만큼 공감받고 이해받았는지 자랑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당신은 왜 이렇게 들어주지 못해?' 라며 책망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부터인가 병원에 가는 길이 즐거웠다. 점점 나도 모르게 선생님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생각이고,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어서 무시했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좋은 친구가 생겨서 내 마음이 너무 기쁜가 보다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란스러워졌다.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보고 책도 찾아 읽어보기 시작했다. 정신과 치료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며, 정신분석적인 치료에서는 전이가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는 글들을 읽었다. '아, 내가 특별히 이상한 사람은 아니구나.'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래서 이게 어떻게 해결이 가능하다는 건지는 잘 설명되어 있지 않았다. 끝나지 않을까봐 불안했다. 그래도 전이에 대해 이렇게 공부하고 이해하다 보면 나의 마음을 스스로 잠재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은... 나의 섣부른 기대였고, 오만한 착각이었다.
나는 내가 선생님에 대해 모르는 만큼, 그 자리에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채워 넣고 있었다. 내 상상 속에서 선생님은 세상에 없는 완벽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고, 나는 그 상상 속 인물을 동경했다. 나에게 선생님은 어느 날은 이상적인 아버지였다가, 또 어느 날은 이상적인 배우자이기도 했다.
치료 중 나타난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나의 진짜 감정은 아닐 거라고 암시도 해봤지만 잘 다독여지지 않았다. 혼란스러움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내가 감히 이런 감정을 가지다니. 나는 잘못된 사람이야. 나는 도덕적으로 옳지 못해. 어떻게 이럴 수 있어?'와 같은 자기혐오, 자기증오의 말들이 늘어갔다.
어지러운 마음은 2024년 6월이 되면서 극에 달했다. 더 이상 내가 나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를 이해하려 노력해 봐도 이해되지 않았고, 멈추려고 해도 멈춰지지 않았다. 괴로웠다. 너무나도 괴로웠다. 내가 나를 끝내는 것이 이 고통을 끝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약을 모으기 시작했다.
"마음이 많이 어지러운 6월입니다. 부디 폭풍 같은 동요가 가라앉고,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2024.06.26. 어느 서른셋 여자"
6월 말 제주도 여행에서, 어느 카페 방명록에 이런 기도 같은 마음을 적어두고 왔었다. 이 때에도 나는 약 뭉치를 들고 있었는데, 그래도 그런대로 충동을 억누를만했다. 하지만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도, 서울에 돌아와서 나는 결국 참아내지 못했다. 나의 괴로움을 해결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결국 약을 털어넣는 방법을 선택해 버린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첫 번째 자살시도 이유였다.
다시 2024년 7월 3일, 서울아산병원 교수님 진료실.
"마음 씨, 주치의 선생님은 알고 있어요?"
- "아뇨, 모르세요."
"말해야 돼요. 반드시 말해야 돼요. 다음 진료에서 꼭 이야기한다고 약속하세요. 전이는 치료자와 내담자가 끝까지 이야기해서 풀어나가야 해요. 혼자서 해결할 수 없어요."
교수님은 주치의와의 다음 진료 시에 반드시 전이 감정을 고백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수님은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시며, 다음 외래 전까지 숙제를 해오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마음이 무거웠다. 며칠 동안 불안한 마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다음주, 그 무거운 숙제를 안고 나는 주치의 선생님의 진료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