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않았더라면 끝내 말하지 못했을 이야기
2024년 6월 마지막 주 남편의 출장 일정이 잡혔고, 어차피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나는 제주도 여행을 예약했다.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집에 있으면 산재해 있는 고민거리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빙빙 돌아 편히 쉴 수 없었다. 마침 합창단 여름 연주회가 끝난 이후라 내가 부재해도 전혀 지장이 없는 시기였다. 아무도, 아무것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 곳으로 잠시 떠나 은둔해 보기로 했다.
남편 외에는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았다. 인터넷 세상과 멀어지려 노력했다. 친구들과의 연락도 모두 제쳐두었다. 그러면서 생각이 조금 정리되는 듯했지만, 여전히 나는 답답했다. 숨쉬기 어렵고 혼란스러운 기분이 없어지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나는 약을 제대로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받은 2주 치의 약 중에서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따로 빼내어 고스란히 모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온 다음 날 새벽, 2주 치 모은 약과 필요시 불안약들을 입에 털어 넣었다. 2024년 7월 1일이었다.
그렇게 한 움큼의 약을 먹고도 생각보다 빠르게 잠이 들지 않았다. 기절하듯 쓰러지길 바랐는데, 짧지 않은 시간을 두려움에 떨며 깨어있어야 했다. 나의 상상과는 다른 마무리였다.
눈을 떠보니 거의 하룻밤이 지나 다시 새벽이었다. 남편은 이유를 물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7월 3일, 예정된 일정대로 원래 진료받던 병원에 내원했다. 이틀 전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하자 선생님은 조금 놀라셨다. 왜 그랬는지 물으셨지만 진료실에서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냥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나는 죽었으면 했지만 죽지 않을 걸 사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프고 싶었다. 차라리 몸이라도 아팠으면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조차도 딱히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약을 먹었던 날 새벽 나는 아산병원 응급실에 갔었고, 기억이 없지만 남편 말로는 정신과 교수님을 응급실에서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교수님과 외래 예약도 잡혀 있었다. 교수님과의 외래 진료가 있던 날, 무얼 물어보실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 교수님은 기존 주치의 선생님이 떼어주신 진료기록을 한 장씩 차근차근 읽어보시고는 나에게 물으셨다. 회사 문제와 노래 문제 말고 다른 고민은 없는지.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재차 물으셨다.
"마음 씨, 정말 없어요?"
숨이 막혔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순간적으로, 마음의 빗장이 열렸다.
"... 아뇨, 있어요."
참았던 숨을 토해내듯이 뱉었다.
나는 처음으로 나의 다른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