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라는 이름으로 나는 도망쳤다

안타까운 시선을 받아들이는 일

by 김마음


나를 무너지게 하는 공간에서 잠시 도망치기로 했다. 회사에 병가를 제출하고 기간제 백수가 되었다. 기본급이 지급되니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백수는 아니었다.


'잠시라도 벗어나면 마음이 나아질까.' 나를 옭아매지 말고 숨 쉴 틈을 만들어 주자고 생각했다. 병가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막상 결정하고 보니 별거 아닌 일이었다. 남편의 축소화를 내가 여기 적용했다면 결정이 훨씬 쉬웠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에 수없이 많은 공백이 생겼다. 알람 없이 일어나는 여유로운 평일에 한동안 적응이 되질 않았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보면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정말 이렇게 쉬어도 될까. 내가 시간을 죽이고 있는 건 아닐까.' 종종 죄책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니라고,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토닥이며 다짐하듯 위로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자주 하는 생각들에 대해서도 모두 털어놓았다. 친구는 많이 놀랐고, 많이 울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나를 이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남편마저 나에게 공감해주지 않았는데. 말로 공감해 주는 걸 넘어 눈물까지 흘려주다니 진심으로 고마웠다. 가까운 사람에게 나의 마음을 이야기하라는 선생님의 숙제를 잘 수행했고,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


병가를 제출한 후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매주 토요일 합창단 연습에 참석하며 맡은 임무에 충실히 임했다. 마침 6월 여름 연주회도 앞두고 있어서 일이 많이 몰린 시기였다. 하지만 이것 역시 즐거운 일이 아닌 그저 의무일 뿐이었다.


회사에서는 도망쳤지만, 합창단에서는 도망치지 못했다. 나의 병가는 반쪽짜리 도피였다.


왜 그것을 마저 내려놓지 못하는지 선생님이 물으셨다. 나는 여전히 내가 노래를 못한다는 사실을 고백할 용기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걸 고백하는 것보다는 힘듦을 견디며 주어진 일을 다하는 게 나에게 덜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왜 그게 덜 어렵냐고 물으셨다. 그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기 힘들었다.


처음엔 노래를 못 부르게 된 것이 나의 약점이고 치부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약점 잡히고 공격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는 사실, 사람들이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게 싫었다. 나를 안쓰럽게 바라볼 시선들이 싫었다. 나는 아픔 없이 밝고 단단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다. 안타까운 시선을 받아들이며 사람들의 위로를 인정하는 것도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충분히 울고, 털어내고, 아픈 채로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마음 썩이며 준비한 합창단의 여름 연주회가 성공리에 끝났다.


합창단에서의 큰 산도 하나 넘었고, 병가 생활에도 익숙해졌고. 그렇게 6월이 평화롭게 흘러가는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