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

내가 나를 끝없이 혼내는 이유

by 김마음


진료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던 2024년 5월의 어느 날.


선생님은 혹시 어린 시절에 지금과 비슷한 주요 우울삽화가 있었는지 물으셨다. 2주 이상 우울한 상태가 지속되고, 흥미나 즐거움이 저하되는 경험을 했는지, 수면 및 식욕 변화 등의 증상이 있었는지, 집중력 저하로 인해 성적에 영향받는 시기가 있었는지, 자책을 많이 하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이 있었는지 질문하셨다.


나는 피아노를 그만두었을 당시에 그런 우울삽화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특히 불안정했다고 말했다. 갑자기 생각하려니 잘 기억나지 않아서 그때 말고는 특별히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사실 나는 종종 많이 우울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일단 약을 조절해 보자고 하셨다. 간혹 항우울제를 복용하면서 자살 사고가 높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은 이전에 들떴던 시기가 있는 사람, 즉 조증 시기를 경험했던 사람의 경우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하셨다. 나는 내가 조울증으로 판단받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내 기분은 변화하는 중입니다'라는 책을 열심히 읽어봤다.


책을 자세히 읽어본 결과,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조증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중학교 시절과 입사 초년에 겪었던 극심한 우울감이 생각났다.


처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의 우울은 자세하게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당시 피아노를 혹독하게 배웠고 그와 동시에 성적에 대한 압박이 심했다. 두 가지 모두에서 부모님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게 적잖이 버거웠던 것 같다. 어린 나이의 아이가 견디기에 무거운 의무감이었다.


이후 사회에 나와서는 입사 3년차에 가장 힘들었다. 매일이 정신없이 바빴고, 때때로 화장실에 다녀오기도 어려울 만큼 일이 몰아쳤다. 밤에 잠들기 전 침대에 누우면, 다음날 어떤 일부터 우선순위로 처리해줘야 할지 업무 생각만 가득했다. 머릿속이 팽글팽글 돌아서 잠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평가는 좋지 않았고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내려놓고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기도 했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다. 그 당시는 너무 바빠서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지만, 나는 그때가 우울의 시기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늘 무언가를 잘 해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 짓눌려 있었다. 선생님은 그런 삶의 방식이 지금의 우울을 만들어낸 것 같다고 하셨다. 뭔가를 잘해야만 칭찬받을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여겼다. 삶에 있어 탁월한 무언가를 가져야만 내 존재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건 내가 어린 시절 힘들었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든 삶의 규칙이었던 셈이다.


나는 이런 삶의 규칙 때문에 다시 힘들어졌다. 지금은 아무도 나를 혼내거나 압박하지 않는데, 나는 어린 시절의 나처럼 힘없이 나약한 존재가 아닌데, 어린 시절 배운 삶의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여 스스로를 혼내며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유일한 가치라고 여긴 노래를 잃어버린 것은, 내가 더 이상 삶을 지탱할 수 없는 이유가 되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