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 괜찮은데 왜 당신이 괜찮다고 해
남편에게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가까운 사람에게 위로를 구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내가 사실은... 이러이러해서 힘들어."
이런 식으로 말해야 할까. 어떤 타이밍에 어떤 전개가 적절할까. 힘들다는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도 나는 고민이 수백 가지였다.
2024년 4월, 어느 날 저녁을 먹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나 요즘 병원 다니잖아. 사실 괜찮지 않고 많이 힘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해."
남편의 반응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놀랐지만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기도 했다. "많이 힘들었구나, 몰라줘서 미안해"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평소 남편의 위로 방식은 '축소화'였다. 내가 힘든 일을 겪거나 아플 때 남편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에이, 그거 시간 지나면 괜찮아. 약 먹으면 금방 나아져. 별거 아니야." 남들도 다 그렇다는 식으로,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나를 응원하는 듯 위로하는 듯 애매한 말들을 했다. 처음엔 '아 그렇지? 금방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나도 생각이 끌려갔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의아해졌다.
'나를 별로 걱정하지 않나?'
몸살 기운으로 많이 아팠던 어느 날, 그날도 남편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별거 아니라며, 괜찮다며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에 화가 났다.
"내가 안 괜찮다는데 왜 자꾸 당신이 괜찮다고 해!"
서운함이 폭발해 버렸다. 나를 이렇게나 걱정을 안 한다고? 정말 이렇게나 관심이 없다고? 남편의 의도는 그게 아니라고 했다. 본인마저 어떡하지 호들갑을 떨면 내가 더 두려워할까 봐, 그런 상황에서 나를 안심시키려는 본인만의 위로 방식이었다고 했다. 아니, 하지만 그건 나에게 위로가 아니었다. 나에겐 그저 무관심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자살 충동을 고백한 날, 남편의 반응은 여느 때와 달랐다. 차분히 들어주었고, 충분히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이제야 내가 집에서도 힘듦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느꼈다. 비로소 안정감과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기분이었다.
저녁을 먹고 치우면서 나는 내가 그동안 어떤 생각들을 해왔는지 종알종알 떠들었다. "이런 방법도 생각해 봤는데 이건 이래서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또 저런 방법도 생각해 봤지 뭐야? 근데 그건 또 다른 문제가 있었어." 마치 별일 아닌 듯,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그동안 구상했던 나의 자살 계획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이렇게나 걱정이 많고, 고민이 많아서 절대 실행 못할 거야."
...
갑자기 모든 행동이 멈춰졌다. 남편은 또다시 축소화를 하고 있었다. 나의 계획을 무시했고, 나의 감정을 하찮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역시 집에서는 공감받을 수 없구나.' 나는 다시 입을 닫았다.
그리고 며칠 뒤, 병원에 가서 그날 있었던 일을 조용히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