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약점을 드러내는 일
나의 직업은 IT 엔지니어다. 구체적으로는 클라우드 엔지니어, 더 구체적으로는 보안솔루션 운영 담당자다. 노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나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전공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컴퓨터를 좋아하지 않았다. 직업이 된 이후에는 심지어 더 싫어했다. 나는 이 일에 흥미도 적성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바꾸지 못한 이유는 다른 잘하는 일을 찾지 못해서다. 다른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해서 그저 머물렀을 뿐인데, 벌써 만 11년이 지나고 12년 차가 되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을 하면서 살지는 않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나는 늘 부러웠다. 조금이라도 재미가 있고 보람이 있다면 그런대로 일을 지속할 수 있을 텐데,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회사에서 누가 나에게 "너 왜 이렇게 컴퓨터를 못해?"라고 절대 꾸짖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는 알고 있지 않은가. 내가 이 일을 잘하는지 못 하는지. 나는 당최 모르겠고 못 하는 일을 11년 동안 매일 마주하며 살았다. 회사에만 가면 작아지고 주눅이 들었다.
칭찬을 받을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 칭찬을 받는 건 애진작에 포기했다. 그냥 나는 중간만 가고 싶었는데, 그것마저 못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회사는 내가 하등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회사가 너무 싫었다. 사람 때문에 힘들진 않았는데 그저 일이 나랑 안 맞았다. 한 마디로 소질이 없었다. 나는 소질도 없는 일을 참 오랜 시간 꾸역꾸역 참았다.
회사에서 받지 못하는 칭찬을 나는 노래로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어느 날 무너졌다.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거리가 아무것도 없어진 것이다. 나의 유일한 가치였던 노래가 없어지자 나는 나를 더욱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위태롭던 자존감이 붕괴됐다. '넌 이것도 못해, 저것도 못해.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 너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어?' 마음의 소리들이 자꾸 나를 찔렀다. 분노가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안에서 화살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남을 탓하기보다는 나를 탓하는 것이 늘 더 쉬웠다.
매일 마주해야 하는 회사도, 매주 마주해야 하는 합창단도 나에게 너무나 큰 고통을 주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합창단에서도 나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자책감, 좌절감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
2024년 4월, 이런 마음을 진료실에서 처음 말했다. 선생님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고 하셨다. 나의 힘듦을 주변 사람에게 더 이야기하라고. 나는 힘들고 지쳐서 무너지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알량한 나의 자존심이었다. 나는 잘 지내는 모습만 보이고 싶었고, 내가 힘든 얘기, 아픈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알려지면 나의 약점을 누군가 공격할 것 같았다. 세상을 무섭게만 바라봤다. 타인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남편에게조차 제대로 털어놓지 못했다.
얼마 후 다시 찾은 진료실에서 나는 계속적인 자살 사고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죽고 싶은 생각이 너무 강해지면 대학병원 응급실이라도 가서 도움을 청하라고 하셨다. 자살예방센터 전화번호도 알려주셨다. 말하는 동안 감정이 잦아들 거라고.
"중요한 건 위험한 순간의 그 충동을 안전하게 넘기는 거예요. 우리한테 필요한 건 시간이에요."
그날 진료 전 체크한 척도에서 우울, 무망감은 여전히 계속 높았지만 몸으로 느끼는 불안 점수는 줄어들고 있다고 하셨다.
"해봅시다. 포기하지 말고 해 봅시다. 포기해야 할 건 삶이 아니라 그 자리이지 않나 싶어요. 잘못한 거 아니잖아요. '내가 이걸 그만두는 건 끔찍한 일이야'라고 생각하고 계세요. 그걸 멈춰야 나아지겠어요. 노래를 잘 부르는 것 보다도 그 생각을 멈춰야 나아지겠어요."
선생님은 주변사람에게 꼭 이야기하라고 하셨다. 남편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누구에게라도 털어놓아야 한다고. 문제를 계속 혼자만 가지고 있으니까, 현실적인 판단을 못하고 머릿속 세상에서 더 파국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셨다.
"가까운 사람에게 얘기 못하고 고립될 때 제일 위험한 거예요. '주변에서 아무도 날 이해 못 해.' 이때가 제일 위험해요."
- "아무도 이해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아요."
"말해봐야 알죠. 말해봐야 알죠. 나를 백 프로 이해할 수 없더라도, 날 걱정해 주고 토닥여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을 거예요."
다른 사람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현실 감각을 찾고, 현실에 붙어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에게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도록 숙제를 내주셨다. 내가 기대하는 만큼의 이해는 물론 못 해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패라 여기지 말고 '나 이렇게 힘들다는 걸 남편이 알아주려 하고 걱정하고 있구나.' 이걸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남편에게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