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라는 하나의 기둥, 경직된 사람

나를 지탱하던 단 하나의 기둥이 무너졌다

by 김마음


2024년 3월, 여행에서 돌아왔고 다시 진료실에 갔다.


선생님은 여행하는 동안 기분이 어땠는지, 여행 전 증량해서 가져간 항우울제의 부작용은 없었는지 물으셨다. 나는 크게 우울하진 않았지만 나른하고 축 처지는 날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답답하고 숨 쉬기 어려운 증상은 조금 줄어들었음도 이야기했다.


그럼 이제 뭐가 더 나아졌으면 좋겠냐고 물으셨는데, 나는 이만하면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울, 불안 척도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약을 좀 더 써봐야 하는 상태고 아직은 불편하실 거라고. 나는 내가 괜찮은지 아닌지도 사실 잘 파악이 안 되는 상태였던 것 같다. 객관적 평가와 주관적 인식이 엇갈리는 모순이 일어났다. 선생님 처방대로 항우울제가 증량되었고, 우울과 불안이 더 나아지길 기대하며 일주일 뒤 진료를 예약했다.


그 사이 합창단 활동이 시작되었다. 나는 합창단에서 2024년도 음악총괄을 맡고 있었다. 1월부터 업무가 시작되었고, 나는 과분하게 주어진 역할로 인해 큰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1월, 2월에도 선곡과 여러 고민들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았는데, 3월 9일 첫 연습이 시작되면서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매주 토요일 연습 전후로는 수면제를 먹고도 잠들지 못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일보다 더 스트레스 받는 건 노래를 잘 부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노래가 유일하게 자신 있는 일이었는데, 노래가 잘 되지 않는 상태로 합창단에 나가는 게 과연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내가 노래를 못 한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숨기고 싶었다. 다시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내 목이 나아질 때까지 어떻게든 감추고 싶었다.


옆사람, 앞사람이 나의 이상한 목소리를 눈치챌까 봐 두려웠다. 이런 마음으로 앉아 있다 보니 연습 시간이 내내 고통이었다. 내가 합창단에 일절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다음 진료에서 이런 마음을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노래가 나에게 중요하다는 게 이상하거나 잘못은 아닌데, 노래라는 하나의 기둥으로 모든 걸 지탱하고 있다 보니 유연한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내 삶에 기둥이 여러 개여야 어느 하나가 흔들려도 '나는 여전히 괜찮아. 가치 있고 멋진 사람이야.' 그런 생각이 들 텐데, 그래야 흔들리는 나를 받아들이고 조절할 수 있을 텐데, 하나의 기둥에만 매달리는 게 너무 경직된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그것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정말 그것밖에 없을까요?" 물으셨다. 정말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게 노래밖에 없는지, 정말 그럴지, 고민해 보자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