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못한다는 이유로, 나는 죄스러웠다
매주 연습시간마다 고통이 반복되었다. 긴 시간 긴장하고 버티느라 힘든데도 집에 돌아오면 잠이 오질 않았다. 아무리 자려고 노력해도 뜬 눈으로 천장만 바라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목이 아픈 것보다도 마음이 점점 더 조여왔다.
결국 다음 진료에서 나는 필요시 불안약을 처방받았다. 그 뒤로 자나팜과 인데놀이 담긴 불안약 봉지를 늘 가방에 들고 다녔다. 매주 합창단 연습 시작 30분 전에는 항상 약을 복용했다. 그렇게 약에 기대어 긴장과 불안을 조금 내려놓았다.
'이게 맞나. 이렇게까지 다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내가 맡은 역할만 아니었다면 나는 그곳에서 당장 도망쳤을 거다. 그런데 나에게 주어진 역할 때문에 그곳에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다는 것이 미안했고, 그보다 걱정되는 건 나의 어려움을 고백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공개하지 않고는, 중간에 무책임하게 일을 관두는 것에 대해서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았다.
나의 약점을 드러내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노래를 못한다는 사실이 마치 나의 치부 같았다. 이걸 고백하는 게 너무 두렵다고 말했더니, 선생님은 그게 잘못이냐고 하셨다. 노래를 못하게 된 것이 나의 잘못이 아닌데, 왜 죄 지은 사람처럼 말씀하시냐고 하셨다.
나는 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목을 잘못 써서, 그래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그리고 이렇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된 게 왠지 모르게 죄송스럽다고. 선생님은 내가 아픈 게 왜 남에게 죄송해야 할 일이냐고 하셨다. "모르겠어요. 그냥 제가 다 잘못한 것 같아요."
나는 죄책감에 매몰되었다. 누가 뭐라고 위로해도 들리지 않았다. 노래를 못한다는 이유로, 나의 소리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는 죄스러웠다. 내가 맡은 음악총괄이라는 역할을 반쪽밖에 못 해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채우기 위해 발버둥 쳤다. 나를 극한으로 몰아붙였다. 빈 소리 대신에 뭐라도 채워 넣으라고 나를 닦달했다.
힘들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스위치를 끄듯이 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24년 4월의 어느 날, 진료실에서 이런 마음을 이야기했다.
"사라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