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랜만에 글을 썼다. 새로 태어난 아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긴장 반, 기대 반으로 아내에게 글을 보여줬다. “잘 썼네.” 간단하고 명료하지만 약간은 무미건조하게 들린다. 물론 아내는 정말로 잘 썼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겠지만, 더 큰 반응을 바랐던 나에겐 조금 서운하게 들린다. 아내는 짧게 한 마디 덧붙인다. “다음엔 나에 대해서 써.”
나는 아내의 말을 잘 듣는 남편이기에 지금 타이핑을 치고 있다. 그런데 아내에 대해 무엇을 쓸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몇 년 전, 아내에 관한 글을 이미 몇 편 써서 그럴지도. 사실 한 가지가 떠오르기는 한다. 어제 아내와의 작은 다툼. ‘그걸 주제로 글을 쓰는 건 득 보다 실이 더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제의 다툼에 관해 타이핑을 치고 있다.
어젯밤, 작은 주방 안. 깨끗이 씻어 선반 위에 놓아둔 컵을 정리하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잠시 스친 짜증과 당황함을 뒤로하고, 유리 조각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뭘 깼어?” 방에 있던 아내는 조용히 나와 나에게 묻는다. 실수한 남편은 아내를 바라보지 못한 채 유리 조각을 줍는다. “손으로 집지 말고 장갑 끼고 해.” 아내는 짧게 말한다. 온 집안을 기어 다니는 아들이 떠올라 작은 조각도 남기지 않으려 물티슈로 바닥을 꼼꼼히 닦았다. 이제 청소기도 곧 돌릴 참이었다.
아내는 주방과 연결된 다용도실 바닥에서 나온 2~3미리 정도의 조각을 나에게 보여준다. 놀란 듯하면서도 못마땅한 듯한 표정으로 유리를 가리킨다. 확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 유리 조각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현하는 거야. 아내의 표정이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가?’ 왠지 모르게 나와 아내 사이에 냉기가 돌기 시작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짜증이 났다고? 변명을 하자면 이렇다. 어제는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이 많았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아이를 안고 기저귀를 갈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아내에게 저녁을 먼저 먹고 오라고 아파트 커뮤니티에 보내고, (아내가 다시 올라왔을 때 편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38도로 맞춘 물을 아기욕조에 채워 아이를 씻기고, 천기저귀에 아이를 싸서 마루로 데리고 나와 로션을 바르고, 팔다리를 바둥거리며 옷 입기를 거부하는 아이를 입히고, 젖병에 150cc 물을 채워 분유 5스푼을 타서 아이 손에 젖병을 쥐어 주고, 흩어진 장난감과 책을 정리하는 중에 아내가 돌아왔다. 이후 아이가 잠에 들고 밀린 설거지를 하려고 컵을 정리하다가 그만 떨어뜨린 것이다. 나름 가족을 위해 애쓰던 중, 손에서 컵이 빠져나간 것뿐이었다.
어제 내가 바랬던 건, 아마도 “오빠, 괜찮아?”라는 걱정과 “괜찮아”라는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나름 아내와 아이를 위해 애쓴다고, 대부분의 남편보다 가사와 육아에 더 많이 참여한다고, 300일이 넘도록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아이와 함께 자는 건 당연히 내 몫으로 여기면서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작은 인정을 받고 싶었나 보다. 산산조각 난 컵처럼 내 마음에도 잠시 금이 갔었나 보다.
사실 아내는 억울했을 거다. 조금은 무뚝뚝한 말투에 흥분한 듯 들리는 억양이 있는 경상도 출신 아내에게 나는 종종 “지금 화났어?”라고 묻는다. 어쩌면 어제도 아내는 화가 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냥 떨어진 유리 조각을 주워 나에게 보여줬을 뿐인데, 내가 과민하게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오늘 평소와 다르게 하루 종일 아내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이리저리 기어 다니는 아이를 돌보며 지친 기색을 보인다. 어제의 감정싸움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나는 다시 아이를 안으러 간다. 어느새 아내와 일상 대화를 나눈다. 그리 나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