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생각

by 슬기로운결혼생활

아이가 생겼다. 우량한 남자 아이다. 300일이 넘는 동안 좌우로 뒹구는 아이에게 잠자리 대부분의 공간을 내어주고 나는 아이 옆 구석에서 잠을 잔다. 그런데 종종 나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아이가 지나가던 큰 트럭에 치이거나, 갑자기 집이 무너져 아이가 깔리거나 하는 등의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다.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냐고 핀잔을 준다. 물론 말이 안 되는 건 나도 안다. 일어나길 바라지도 않고 일어 나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내 머리에 종종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니 당황스럽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도 나를 엄습한다. 함께 지난 시간은 고작 300일이지만 아이가 없는 세상은 너무나 무섭게 느껴진다.


원래 나는 결혼도,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었다. 지금도 누구나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은 선택이지 필수는 아니라고 믿는다. 심지어 아이가 없다면 내 삶이 더 자유롭고 편할 거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미 아이와 함께한 세상을 경험했다. 냇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아무리 그 물줄기를 막아도 역행할 수 없듯, 아이와의 세상은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을 만지고 나를 보고 웃을 때 반달 모양으로 사라지는 눈을 보지 못하는 세상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선택사항이 아니다. 경험한 순간 모든 것은 변했다. 영화 <어벤저스>의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 우주의 절반이 사라진 것처럼, 나의 싱글 라이프, 아이가 없는 삶은 선택지에서 사라졌다.


아이가 다치고 죽는 끔찍한 생각은 아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는 마음을 넘어, 아이와 함께 보고, 느끼고, 만지고, 경험하고 싶다는 나의 강한 의지의 투영이다. ‘기꺼이’ 누군가에게 나의 잠자리 대부분의 공간을 내어주는 경험, ‘기꺼이’ 수면의 질을 포기하면서 함께 눕고 싶은 마음, ‘기꺼이’ 내 목과 허리 관절의 연골을 닿게 하면서도 아이를 들고 안고 내려놓는 반복 행위는 아이와 함께하는 세상을 향한 나의 헌신이다.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이 되었다 (넷이 되는 건 아내의 뜻에 달렸다). 간혹 다시 하나가 되면 어떨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셋이 변하지 않을 거란 확신 안에 유효 기간이 짧은 작은 정신적 일탈을 꿈꾸는 것뿐이다.


앞으로 끔찍한 상상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갈 때면 아이의 숨소리를 더 깊게 들으려 한다. 숨결에 따라 너울처럼 울렁이는 아이의 불을 잠시 만지려 한다. 그럼 나의 끔찍한 생각은 어느새 머리 밖으로 흘러나갈 테니까. 끔찍한 생각 대신 아이의 숨소리와 온기가 전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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