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의 용량이 꽉 찼습니다
당신의 용량은 몇 GB 짜리입니까? : 채움보다 비움을 알 때
“요즘 당신의 사진첩은 어떤가요? 삭제 버튼 앞에서 망설인 적, 한 번쯤 있지 않나요?”
얼마 전 베이커리 카페를 방문했다. 널찍한 공간과 통유리로 인테리어를 해서 카페의 공간은 바깥에 심어놓은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햇살에 비친 카페의 여유로운 주말 오후 어느 날'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된 그림의 한 장면 같았다. 눈동자에선 아름답게 푸른빛이 맴돌고 있었다. 이 느낌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곧바로 휴대폰을 켜서 동영상을 찍었다. 정지 버튼을 눌렀을 때였다. '저장 공간이 꽉 찼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그렇다. 용량이 꽉 차서 정성스럽게 찍은 영상은 저장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휴대폰을 켜고 사진첩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사진과 영상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사진과 영상을 하나하나 클릭해 보았다. 과거 연도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이미지들로 인해 그 반가움에 정리해야 된다는 생각은 잊은 채 정리가 아닌 감상을 하고 있었다. 실룩되는 입가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속에는 수많은 추억과 서사가 담겨 있었다. 용량이 꽉 차도록 지울 수 없었던 이유였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기억이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려움에 비우지 못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단순히 저장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붙잡고 있는 기억, 정체성, 그리고 놓지 못함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있는 것은 이로움을 주지만 없는 것이 그것을 쓰이게 한다라고 했다. 그릇이 그릇인 이유는 그 속이 비어 있기 때문이고, 방이 방인 이유는 공간이 비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비움은 가능성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사진첩을 가득 채워 놓으면 새 기억을 담을 자리가 사라지듯이 마음 또한 꽉 차 있을 때 새 감정, 새 관계, 새 사유가 들어올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진첩의 공간을 비울 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아름다운 추억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비움은 곧 새 사유가 들어올 여백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의 인생도 사진처럼 과거의 한 장면을 멈춰서 붙잡고 싶어 하기보다는 집착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잡으려고 하는 순간 스스로 고통을 만들지만 집착을 내려놓을 때 진정한 자유가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채움보다 비움을 알 때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된다.
“채움이 삶을 화려하게 보이게 한다면, 비움은 그 삶을 숨 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