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목적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 목적 성취의 허상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대부분은 먼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힘쓴다.
그리고 원하는 목표를 이뤘을 때,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한 단계 성장했다’고 느끼며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목적을 달성할 때마다 우리는 또다시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끝없이 새로운 목표를 갈구한다. 그럴수록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찝찝함과 공허함이 밀려온다.
목적의 종착역은 없다. 즉, 목적이란 허상이다. 목적은 달성하는 순간 목말라지는,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을 유발하는 음료와도 같다.
성취는 감정적으로 강력하지만
실체는 너무나 허약합니다.
삶의 의미나 가치라는 무거운
질문을 감당할 그릇이 아닌 겁니다.
"그래도 내가 그건 해냈잖아",
"그 경험이 나를 만든 거야"
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사실은 흔들리고 있는데 자신은
의미를 찾았다고 믿고 싶은 겁니다.
진정으로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들먹이며 의미를
증명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성취를 인생의 본질처럼
붙잡고 있다는 것은 그 이후의 삶이
성취만큼 만족스럽지 않다는 반증입니다.
즉 성취 이후에 떠오르는 질문들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혼란은 성취가
'완벽한 삶의 이미'는 아니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공허의 시대』에서 조남호 작가는, 삶의 의미나 가치를 ‘목표나 목적’으로부터 찾으려는 우리의 습관이 얼마나 허상인지를 과학적 근거로 제시한다. 우리는 세상이 규정해 놓은 목적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한 삶의 의미는 목적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얼마나 후회 없이 살아냈느냐에 있다. 허상의 논리는 시대 변화 속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팬데믹을 겪으며 세상의 변화는 예견할 수 있었지만, 급격하게 다가온 AI 시대는 우리의 예측을 초월했다. AI의 속도는 놀라울 만큼 빠르고, 일자리·산업·정책·사회 구조까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변화는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개인의 하루 또한 수없이 변한다. 하루의 목표를 쪼개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 해도 100%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 속에는 언제나 변수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쫓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본질을 성찰하는 일이다.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본질은 ‘사랑’이고 ‘행복’이다.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잃거나, 휴식 없이 달리다 병들어 버리는 삶은 목표와 본질을 혼동한 결과다. 본질을 먼저 묻고 행동하면, 경직된 생각이 부드럽게 풀리고 삶은 훨씬 유연해진다.
세상을 본질 안에 담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AI, 경제, 금융, 기술 트렌드를 공부하는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깨닫기 위한 ‘지적 명상’이다.
스피노자는 말했다. “지식을 얻는 것은 자유를 얻는 것이다.”
본질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곧 영적 성장의 한 형태이며, 지성은 영혼의 또 다른 날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진정한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