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주의
인생이 선명해지는 경험
오늘은 먼저 “인생이 선명해지는 경험을 해본 적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연재를 시작하려 한다. 추상적이고도 다소 독특한 질문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한 번이라도 자신에게 이 질문을 깊이 던져본 적이 있는가를 먼저 묻고 싶다. 내가 느꼈던 ‘인생이 선명해지는 경험’은 이러했다.
30대 후반에 들어선 요즘, 그동안 내 안에 깊게 자리한 채 해결되지 못한 공허함을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답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독서나 미디어 강의 등을 찾아다니며 듣고, 읽고, 필사도 해 보고, 행동으로까지 옮겨봤다. 그러던 중 『공허의 시대』 조남호 작가님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책의 핵심 키워드는 ‘충만함’과 ‘Live Fully’였다. 자본주의 사회에 길들여진 우리가 ‘본질’로부터 멀어지고, 허상에 가까운 목표에만 전력을 쏟는다는 것이다. 목표는 허상이라 했다. 중요한 것은 삶이 행복해지려는 ‘쾌’를 찾는 충만감이었다. 이 책은 잊혀 가던 인간의 본질을 명쾌하고 새롭게 재해석한 책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통해, 공허함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20대 시절, 내 주변에는 꽤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평범한 20대 소녀의 삶을 살았다.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술자리를 가지며, 펜션을 잡아 여행을 가거나 소개팅 자리에 나가기도 했다. 독서실에 가서 함께 공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언제나 내 안은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클럽을 좋아하던 친구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전화를 걸어 나를 불러냈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대화 속엔 언제나 남자 이야기, 신세 한탄, 성형 이야기, 고민 상담 등으로 가득했다. 그 모든 것이 나에겐 다소 ‘비생산적’인 이야기로 들렸고, 왠지 모를 헛헛함이 늘 따라왔다.
30대에 접어들면서 가치관이 맞지 않는 친구들과는 서서히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만 연락을 이어갔다. 그러다 30대 후반이 되자, 그마저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외로움이나 타격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맞지 않음’을 인정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알 수 없는 공허는 여전했다. 친구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직장에서도, 혼자 있을 때도, 늘 마음 한가운데엔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자리했다.
열심히 일할 때도, 명품 옷을 입을 때도, 명품 가방을 들 때도 그 공허는 채워지지 않았다. 물론 순간의 기쁨은 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그 뒤엔 늘 공허함이 꼬리표처럼 따라왔다.
심지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도 자신감까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조남호 작가님을 만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면서, 드디어 공허함의 원리를 찾게 되었다. 그때 나는 ‘인생이 선명해지는 경험’을 했다.
그동안 풀지 못한 갑갑함이 뻥 뚫린 듯 전율이 느껴졌다. 그 공허함은,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20대 청춘에게는 클럽을 좋아할 수도, 외모에 신경 쓸 수도, 이성에 관심이 많을 수도 있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각자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일이다. 다만 나는 그 시절, 마음 한구석이 늘 찝찝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늘 있었다.
그 시절 친구들은 음악에 푹 빠져 클럽을 즐겼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며 몰입했다. 좋아하는 이성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 있었다. 그들은 최소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며 충실하게 ‘주체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반면 나는, 아무것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애매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최근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드디어 답을 찾아낸 것이다. 인생의 본질이었다. 철학적인 공부를 하며 그 답을 발견했다.
공부하는 순간의 몰입감, 공허했던 마음이 꽉 찬 듯한 그 느낌. 눈앞에 놓여 있는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다 녹을 정도로 몰두하던 나. 그것이 바로 충만이었다.
모든 것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나는 아주 깊은 본질을 탐구할 때 비로소 충만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경험은 지금의 글쓰기로 이어졌다. 글쓰기를 하면서도 같은 몰입감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주체적인 삶’이라는 것이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어떤 것도 해낼 수 있는 자신감까지 피어올랐다. 이런 몰입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주체가 운동이 될 수 있고, 나와 같은 본질을 탐구하는 탐험가일 수도 있고, 여행을 좋아하는 것 일 수도 있다. 클럽을 통해 음악을 온전히 느끼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처럼 공허한 마음을 꽉 채우기 위한 많은 경험을 해봐야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비록 친구의 숫자는 줄었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더 나은 삶의 답을 찾는 이들을 SNS, 브런치스토리, 커뮤니티에서 만나고 있다. 이들과의 관계는 이전보다 훨씬 충만하다.
비어 있던 마음이 꽉 찰수록, 충만한 경험이 많을수록
비로소 인생이 선명해지는 경험을 온전히 느끼게 되었다.
당신에게 다시 질문해 본다.
뜨겁도록, "인생이 선명해지는 경험을 해본 적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