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상처받은 사람에게 복수하는 방법

복수의 본질

by 마인드 오아시스

상처받은 사람에게 복수하는 최고의 방법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잘 지내시나요?"


먼저 안부 인사로 연재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잘 지내냐는 말. 그저 평범한 안부 인사 같지만, 사실 이 한 문장 안에 상처받은 사람에게 복수하는 방법의 해답이 숨어 있다.

‘안부 인사? 이게 무슨 복수의 방법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복수의 진짜 본질을 깊이 공부하고 이 방법으로 최고의 복수를 경험했다. 부디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 찬 마음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얀 눈으로 덮인 바깥 풍경이 눈치도 없이 아름답다. 사무실에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가 손과 발을 시리게 한다. 내려간 무릎 담요를 다시 허벅지 쪽으로 올려 본다. 빵빵하게 틀어놓은 히터는 내 자리까지는 역부족인가 보다. 책상 앞에 놓인 따듯한 둥굴레 차로 녹여보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가슴이 시리고, 분노가 차 오른다. 눈물까지 날 지경이다. 당장 퇴근해서 따듯한 물에 몸을 맡기고 씻고 나와 보들보들한 수면잠옷으로 갈아입고 아무 생각 없이 자고 싶은 생각뿐이다. 같은 팀 오 과장이 내게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마음을 크게 다친 것이었다. 상황은 이랬다.


(띠리 리리)

"네, 전화받았습니다. 재무팀 오 과장입니다."

"아~ draft파일이요? 전화 끊으면 '경리'에게 알려주신

메일 주소로 보내라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 과장의 전화통화를 들은 나는 불쾌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경리?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린가? 내가 경리라고? 회계 전공으로 공부하고 노력해 입사했는데, 나를 고작 두 글자로 정의한다고?’


단순히 ‘경리’라는 단어가 싫었던 건 아니다. 다만 사회적 인식 속의 ‘경리’는 커피를 타고 잔심부름만 하는 사무보조 여직원의 이미지였다. 그 단어는 그간의 노력과 자부심을 한순간에 부정하는 느낌이었다.


그날이었다. 자존감을 한 없이 무너뜨린 오 과장을 위해서라도 복수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었다. 능력을 키워 지금 있는 직장보다 더 큰 기업으로 이직해야만 했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퇴근 후 자격증 공부로 위로했고, 1년 후 정말 나는 원하던 더 큰 기업으로 좋은 조건으로 이직에 성공하였다.


이직한 직장에서도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때쯤 이였다.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이 왔었던 것이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 과장이었다.


"김주임, 잘 지내지?

예전에 네가 담당했던 파일 좀 찾으려는데,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네. 김주임 퇴사하고 새 직원 뽑는다고 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어. 나 혼자 다 하려니 요즘 죽겠어.”


속으로 생각했다. '벌 받았네.' 그리고 이때다 싶었다. 통쾌한 복수의 순간이었다.


"잘 지내셨죠? 저 주임 아니고 이제 대리예요. 그리고 여기는 회계팀만 다섯 명이에요. 사람 안 구해져서 힘드시겠어요. 파일 위치는 메시지로 보내드릴게요."


통화가 끝나자마자 묘한 희열이 밀려왔다. 드디어 복수를 완성했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그때의 '경리'발언 사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복수를 위한 진짜 복수


시간이 흘러도 그때의 불쾌감은 여전히 떨쳐지지 않은 채 응어리로 남아있었다. 그때의 위치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도달했음에도 지워지지 않았다. 회사를 퇴사한 시점까지도 '경리'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그때가 떠 올랐다. 그러다 복수의 본질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부터였다. 확실한 복수를 경험한 것이었다. 먼저 복수의 본질은 이랬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뛰어넘으려고 하다 보면 '결과'에 집착하게 되어있다. 어떤 목적지를 박아두고 그걸 향해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 이것을 전문용어로 '외적 동기'라고 한다. 이렇게 외적 동기를 좇다 보면 결국 인간은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


유튜브 채널 속 인순이는 상처 준 사람에게 확실히 복수하는 법을 이렇게 얘기했다.


"선생님, 선생님께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합니까? 용서 안 합니까?"

"용서할 것도 없어. 왠지 알아? 저 사람에 대해서 욕하고 싶어 죽겠어. 근대 저 사람이 내가 욕할 때마다 큰 타격감을 받아. 그러면 나는 맨날 욕할 거야. 그런데 저 사람은 이상할 만큼 멀쩡히 잘 살아. 나는 욕하기 위해서 그때의 기억을 또 해야 돼. 결국 그러면 나만 상처받는 거야. 나도 잘 사는 걸 보여주는 거야. 그렇게 되면 오히려 상대방은 앗, 저 사람은 나 때문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구나라고 느끼게 되어 있지. 그 느낌을 들게 하면 돼. 그게 복수야."


맞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최고의 복수란 성공이 아니라, 잘 사는 모습 자체였다. 오 과장이 잘 지내냐고 물었을 때를 다시 생각해 본다. 승진도 하고 더 이상 경리에 대해서 운운해하지 않을 만큼 정도의 능력도 키웠다. 이미 외적으로 스스로를 증명해 낸 셈이다. 오 과장한테 전화 왔을 때만 해도 내가 잘 지내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마음은 언제나 병들어 있었다. 결코 잘 지내는 게 아니었다. 타격감을 여전히 느끼고 있었으니까.


다시 복수의 본질로 돌아와 보면 외적동기는 인간의 메커니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동기가 부족한 게 아니라 복수심이 덜 한 것이 아니라 인내심이 부족한 게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인위적 외적 메커니즘에 빠져 있었던 것이었다. 잘 산다는 것은 내 인생에 집중하는 내적 동기라는 것이었다. 사회적 순위 개념이 아니었다.


현재는 퇴사 후 깔끔해지는 집을 상상하면서 청소하는 게 즐겁다. 똥손이었던 내가 갓 지은 밥 짓기에 매료되어 쌀과 물의 정확한 1:1 계량으로 포슬포슬하고 윤기가 나는 밥이 탄생될 때마다 즐겁다. 또한 철학 공부를 하는 시간도 너무 재밌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재밌다. 아침 일찍 일어나 7시에 헬스장 가서 러닝머신을 뛰고 쿨다운 시간에 이어폰 속 음악과 하나가 되어 나만의 작은 클럽에서 음악에 심취한다. 어떠한가? 꽉 채운 하루 속에 살고 있다. 이미 나는 복수심이라는 자리가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결혼을 해서 가정주부가 되었다고 밥 짓기나 청소가 재밌는 거 아니야? 혹은 퇴사했으니까 시간이 많아서 운동이나 하는 거겠지? 시간이 남아도니까 철학 공부할 시간이 있는 거겠지? 전부 틀렸다. 이전과의 삶과는 전혀 다르다.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어떤 환경에 처해있든 변함없이 똑같이 꽉 채운 하루로 살 것이다. 이제는 외적 동기에 흔들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 자신이 있다. 이것이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다. 그리고 내 인생에 그저 충실할 뿐이다. 오롯이 내 인생에 집중하고 몰입할 때 모든 결과도 좋게 나는 것이다. 그게 돈 벌기, 업무, 청소, 밥 짓기, 공부, 출근, 복수든지 간에. 생산적인 일이거나 비생산적인 일이거나 그것은 관계없다. 구분 없이 충실히 살면 된다. 이것이 진정한 복수인 것이다.


이제 당신의 차례다.
상처 준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다면,

그 사람을 잊을 만큼 당신 삶에 매료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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