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새기는 새로운 눈
기억을 새기는 여행법 : 여행을 새기다 [心]
여행의 목적은 무엇일까? 생각 정리, 자유로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온전히 여행을 만끽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렇게 단언하는 이유는, 여행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어쩌면 잘못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행지에 가면 ‘선 사진, 후 감상’이 대부분이다. SNS에 올릴 사진을 남기기 위해 감상보다 핸드폰을 먼저 드는 습관,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서 동영상을 찍는 일. 유명한 명소에 도착하자마자 카메라를 켜는 우리의 모습.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곳을 여행하든 대부분 비슷한 양상이니까.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여행을 가서 한 번이라도 ‘온전히 느낀 적’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행을 즐기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여행은 기억 속에 남더라도, 그것은 단순히 ‘어떤 장소에 들르고, 어떤 음식을 먹었던’ 일종의 ‘도파민 경험’에 그친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제대로 여행을 즐긴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제는 여행의 새로운 관점을 새겨야 한다. 단순히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는 ‘기록’의 여행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는 ‘기억의 여행’으로 시선을 바꿔야 한다.
만연한 단풍과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
하지만 낮에는 따스한 햇살 덕분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완벽한 계절. 가을의 끝자락, 10월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어느 이브날(?)이었다. 11월이 오기 전, 남편과 나는 강릉 양양의 동호 해변으로 떠나기로 했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이번에는 여행을 온전히 느끼자.” 그 다짐과 함께 출발한 마음은 설렘이 가득했다. 차에 타서 가을 정취에 어울리는 잔잔한 노래를 틀자, 남편이 말했다. “외국 힙합 듣자.” 나는 한술 더 떠서 검색창에 ‘빡센 외힙’을 입력했다. 그러자 비트와 스웨그가 넘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평소 잔잔한 음악을 선호하던 그가, 여행의 설렘 때문인지 볼륨을 MAX로 올려버렸다. 우리는 고개와 어깨를 비트에 맞춰 흔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이도, 체면도 잊고 음악과 하나가 되었다. 마치 우리만의 작은 클럽에 온 듯했다. 이태원 클럽 자체였다. 2시간 반 동안 그렇게 차 안에서 신나게 흔들어댔다. 이토록 자유롭게 즐긴 적은 처음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소리 좀 줄여”라며 불평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은 음악의 리듬 하나하나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도착 후 짐을 풀고, 수산시장에서 사 온 가리비와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식사 후 해변으로 향하며 두꺼운 옷과 블루투스 스피커를 챙겼다. 편의점에 들러 맥주 2캔과 폭죽, 과자를 골랐다. 계산대 앞, 편의점 사장님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2캔보다 행사하는 2+1으로 3캔고르는 게 훨씬 저렴해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미소가 너무 따뜻해서 결국 행사하는 맥주로 3캔을 구입했다.
편의점을 나와 해변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밤바람이 매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두꺼운 겉옷을 벗어던졌다. 아직 우리의 클럽 열기가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피커를 켜고 파도소리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비트와 파도의 조화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신발을 벗고 모래 위를 뛰어다녔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핸드폰은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다음 날 체크아웃 후, 근처 대게집에서 해물라면을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밖으로 나와 해변과 하늘을 바라보았다. 파도의 높이, 물결의 결, 파도를 밀어내는 에너지, 푸른 바다의 색감, 구름의 모양, 시원한 바람의 냄새까지 오감으로 모든 것을 느꼈다.
점심을 먹고 속초에 들러 '문우당서림' 서점에 들러 10월 마지막날을 장식해 줄 책 한 권의 구입으로 그렇게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누군가에게 자랑하려고 사진을 찍고, 혹은 기억을 오래 간직하려고 남긴 ‘기록의 여행’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다. 결국 그 기록은 오래 남지 않는다. SNS 속 여행 사진을 보고 “저 사람도 갔으니 나도 가야겠다”는 생각, 그건 보여주기 위한 여행일 뿐이다. 아무리 많은 곳을 다녀도 늘 여행에 목마른 이유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기록을 남긴 여행이 아니라, 기억에 남는 여행을 했구나.” 정말 ‘생명력 있게, 생기 있게 다녀왔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이젠 과거의 기록을 꺼내 “그땐 좋았지”라고 회상하는 대신, 마음속에 새겨진 여행의 감각을 언제든 꺼내볼 수 있게 되었다.
2+1이 더 저렴하다고 나지막하게 웃던 사장님의 미소, 음악과 하나 되어 춤추던 우리의 클럽, 아이처럼 모래를 뛰던 모습, 바다의 색, 파도의 소리, 구름의 크기. 그 모든 것이 나의 기억 속에 새겨졌다. 10월 끝자락, 가을의 색채가 내 안에서 완성된 순간이었다.
기억이 풍부할수록 생각도 깊어진다.
이제는 여행의 새로운 관점에 서서,
나만의 이야기를 온전히 경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