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식견
“진짜 아는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 소크라테스
한정된 경험을 절대적 진리로 여기지 않고, ‘모름’을 인정하는 태도는 삶의 가장 성숙한 자세일지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겪은 일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아파본 사람은 세상의 상처를 더 잘 읽고, 사랑해 본 사람은 타인의 미소 속 온기를 알아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경험이 깊을수록, 때로는 세상을 한쪽으로만 보게 된다.
나는 아는 만큼만 세상을 이해했고, 모르는 만큼 세상을 오해했다. 경험이 많을수록 더 현명해질 줄 알았는데,
그 경험이 내 판단의 울타리가 되어버릴 줄은 몰랐다. 모든 것이 옳거나 그른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본 세상은 수많은 세상 중 하나였을 뿐이다.
우리는 종종 경험의 크기로 자신을 판단하지만, 세상의 스케일 앞에 서면 그 생각이 얼마나 좁았는지 깨닫게 된다. 세계적인 건축물로 꼽히는 그리스 신전 앞에 서면,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실감한다.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인간의 흔적 속에서, 몇억 명 중 하나인 나는 그저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이 가진 신념이 얼마나 초라한지 알 수 있다.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판단하는 결정에는 언제나 오류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제는 반복적인 일상에서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매일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결국, 내가 ‘안다’고 믿는 것이 실은 ‘모른다’는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시각에서 새로운 경험이 쌓일수록 기존의 의미는 다른 빛으로 바뀌어간다.
사회는 자신이 가진 정보로 타인을 이해시키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것이 고집을 넘어 집착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좁은 식견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독서를 하고, 사유를 확장하며, 매일의 일상에서도 새로운 시선을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자신만의 판단력을 키우는 길이자, 삶을 잘 살아내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도 휩쓸리지 않고, ‘모름’을 인정하는 태도로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게 배움의 자세를 지닌 사람은 지성과 감성, 도덕성과 창의성을 고르게 성장시킨다.
흔히 요즘 말하는 육각형 인간 이 바로 그런 사람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진짜 아는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 모름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배움은 다시 시작된다. 색안경을 벗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