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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타 Jun 30. 2023

글쓰기 책 | 스토리 설계자

스토리텔러가 되기 위한 첫 걸음 

* 이 책은 2016년에 [헐리우드 스토리 컨설턴트의 글쓰기 특강]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고 한다. 나는 그 때 읽지 못했으므로 최근에 출간된 이 책을 보고 난 뒤의 느낌을 쓴다.




첫 장을 읽었을 뿐인데 어느덧 마지막 장까지 읽은 경험, 드라마 첫 편만 보았는데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날이 새도록 시리즈를 내리 보았던 경험이 있는가? OO 폐인이라는 말도 한참 유행했었다. 그만큼 열혈 독자, 시청자라는 의미를 세게 표현한 것이다.



특히 스토리와 플롯이 탄탄하거나, 흥미로운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들은 종종 이 '폐인'들을 양산한다. 영상물은 배우자들의 연기, 연출, 영상미 등 다양한 기법이 동원되지만, 책은 오로지 글로만 승부하기 때문에 독자들을 끝까지 끌고 갈 힘이 강해야 한다. 결국은 영상물이나 책이나 주된 스토리가 개연성이 있고, 메시지가 있으며 보는 이를 사로잡을 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광팬들이 구전을 통해 다른 이들을 작품으로 끌어들이는 자연스러운 마케터 역할을 할 테니까.



▲ 책 <스토리 설계자> ⓒ VITA



책 『스토리 설계자』 는 스토리 컨설턴트로 유명 영화사에서 스토리 각색을 맡고, 여러 곳에서 러브콜을 받는 일명 '작법 전수자' 리사 크론이 쓴 작품이다. 스토리계의 대가가 썼으니, 자신의 책에서는 스토리 설계법을 어떻게 적용했을까 궁금했는데, 설명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설계의 기승전결부터 주요 포인트를 흥미롭게 집어주는 것이 매우 인상깊었다. 




책을 요약하기 보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주요 포인트를 적용한 예시를 들면서 글을 써볼까 한다.

최근 "연진아, 나 되게 신나."로 박연진, 문동은 신드롬으로 각종 상을 휩쓴 『더 글로리』를 타겟으로 잡았다. 

기억에 남는 많은 대작들이 많지만, 『파리의 연인』, 『신사의 품격』, 『태양의 후예』, 『시크릿 가든』 등을 탄생시킨 김은숙 작가의 특별한 스토리 작법이 있는지 대응해보기 위해서이다. 김은숙 작가는 스토리, 플롯, 인물과의 갈등, 반전, 메세지 등 사람들을 사로잡는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녀는 어떤 힘으로 작품들을 설계하고 써내려갔을까?



잘 구성된 스토리는 우리가 그 세계에 빠질 때 쾌감, 즉 복잡한 현실에서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스토리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이 증가한다. 이는 주인공의 내적변화를 겪으므로써 동시에 희노애락을 경험할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들의 뇌 활동을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으로 보면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로서의 뇌활성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래서 드라마 속 주인공과 자신을 연결시켜 대리만족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닐까? 



▲ 책 <스토리 설계자> ⓒ VITA


거의 모든 스토리는 클리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출중한 창조력이다.

영국 문인 새뮤얼 존슨은 "작가의 가장 매력적인 능력 두 가지는 새로운 것을 친숙하게 만드는 것과 친숙한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 드라마 <더 글로리> ⓒ 화앤담픽쳐스



1. 클리셰

『더 글로리』의 주인공 문동은은 부모의 보살핌은커녕 지독한 가난과 알코올 중독 홀어머니의 폭력 밑에서 불행하게 자랐다. 사회적 약자인 그녀는 왕따를 넘어선 학교 폭력에 무자비하게 노출된다. 소설과 시나리오에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다. 여기서 출발하는 작품의 세계는 김은숙 작가의 새로운 창조력으로 재탄생된다.



2. '만약에'를 설정

문동은이 현실에 적응하며 그저 그런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삶에 도전해 볼 것인가?

만약 얼굴에 점이라도 찍어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 복수극을 펼친다면?



3. 나만의 주인공

『더 글로리』에 나오는 인물들은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이 주를 이룬다. 박연진, 전재준, 하도영, 이사라, 최혜정, 손명오, 주여정 등. 각자의 캐릭터가 분명하니 누구를 초점으로 전개하느냐에 따라 다른 작품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다들 주인공 같은 역할일지라도 핵심 주인공을 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인공 문동은의 눈을 통해 나머지 인물과 연관된 사건의 중심을 보게 된다.



▲ 드라마 <더 글로리> ⓒ 화앤담픽쳐스



4. 주인공이 원하는 그것, 왜?

친구들의 폭력으로부터 내내 당하던 동은은 더 이상 같은 삶을 살지 않기로 한다. 이미 자신은 망가졌으니 홀로 세상을 등지기에는 너무도 억울하다. 자신이 겪었던 처절한 고통을 그들도 느끼게 할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은 운명적으로 착착 맞아떨어진다. 이 부분은 다소 비현실적이지만, 이것이 작품의 중요한 플롯이다. 관객들은 알면서도 다음을 궁금해한다. 결국, 사람은 어떠한 이유로도 일방적이고도 비인간적인 폭력을 당할 수 없고 주인공에 동화된 관객들은 통쾌한 복수를 갈구하기 때문에.



5. 주인공의 세계관

여기서 말하는 세계관은 작가가 창조할 세계 전체를 한눈에 본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세계관이다. 즉, 주인공이 겪게 될 '내적 변화와 관련된 범위'에 한해서다. 스토리와 관련된, 주인공의 '주관적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저 세상에 복종하며 살아왔던 동은은 끔찍이 겪어왔던 사건들을 가해자들에게 되새겨 주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꾸민다. 같은 인간이기에 누구도 일방적으로 폭력을 가하거나 당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복수극을 진행하며 느꼈을 동은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속이 마냥 시원했을까? 자신도 괴로워하지만 시작한 이상 멈출 수는 없다. 그 누구에게도 정을 주거나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러나 도우미 강현남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주여정을 만나며 원망, 미움, 절망 등에서 조금씩 회복되는 과정을 천천히 보게 된다.



6. 주목할 장면

스토리가 계속해서 고조되기 위해서는 중요 장면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작가가 아니라 관객의 입장에서 이 드라마의 주요 장면을 꼽으라면 1. 문동은이 당한 폭력(학폭, 어머니) 2. 문동은의 복수극(주된 내용) 3. 문동은의 마음 변화 이 세 가지로 꼽겠다. 사이사이 극적인 주제와 메시지를 던지면서 관객은 작품에 더 몰입하게 된다. 이것은 책에서 제시한 장면 카드로 더욱 구체화할 수 있다.



7. 스토리를 어디에서 끝낼 것인가?

극이 전개될수록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간의 갈등을 치열하게 보여줬다면, 장면의 끝은 어떻게 매듭을 지을 것인가 하는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다. 결말을 미리 생각해 두고 작품을 연결하는 전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내내 긴장감과 스릴을 보여주다가, 결국 이 모든 게 꿈이었다고 관객에게 허무함과 실망감을 불러일으킬 테니까(아마 생각나는 작품들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더 글로리』에서는 관객으로 하여금 통쾌함, 서늘함, 안타까움 등등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극이 끝에 다다를수록 희망도 보았다. 인간은 인간으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지만, 인간으로부터 치유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주인공 스스로 깨닫게 하면서 관객들도 같은 감정을 전이 받게하여 결말을 이끌기 위한 주요 테마로 이용했다.



8. 스토리의 논리. '무엇'에 일일이 '왜'를 깔아 두기

찰진 구성을 자랑하는 작품들의 대부분은 굳이 왜 이런 플롯을 심었을까? 하는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숨어있다. 에피소드를 심고 주인공이 왜 그런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 왜 사건의 발단이 되었는지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그것이 스토리의 전개와 절정, 결말을 짓는 중요 요소가 된다. '이 작품은 배우의 연기력이 다 했다.' 이런 평이 나오는 이유는 스토리의 개연성과 논리가 부족해서였을 것이다.



9. 배경 스토리도 스토리이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이라는 주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일진, 빵셔틀' 등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다. 고데기 사건은 너무도 충격적이었으며 진화된 악행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회적인 주요 사건임과 동시에 근절되어야 할 문제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게 하고, 주의 깊게 조명함으로써 악에 빠진 이들이 결국 파멸해 가는 모습을 작품으로 말하고 있다. 사람은 사람으로 절망하고 치유된다는 메시지도 함께 일러주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10.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두 가지

글을 쓰다 보면 강력한 아이디어에 매몰되어 이야기의 중심이 흐릿해질 때가 있다. 스토리 전개는 감정을 이입해서 쓰지만, 퇴고 시에는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이다.


리사크론이 강조한 두 가지는 첫째, 모든 것에 '왜'라는 질문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작품에 서술되는 사건, 캐릭터, 감정의 변화, 주요 메시지 등은 '왜'라는 질문에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의 두께 또는 영상물의 횟수와 시간만 늘어지는, 관객들에게 외면받는 작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


둘째, 모든 것에 대해 '그래서?'라고 묻는다. 독자가 왜 이것을 알아야 하나? 스토리 전개에 도움이 되나? 말하려는 요점이 무엇인가? 이 두 가지는 작품을 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요건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전하는 일방적인 앵무새가 되지 말고,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독자를 생각하는 글,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스토리텔러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 책을 보면서 스토리 전개에 대해, 작법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꽤 구체적인 사례와 논리로 공감하게 했다. 더불어 하나의 작품을 쓰는 일이란 얼마나 힘들고 고된 작업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우리가 마냥 소비하는 훌륭한 작품들, 그저 별점 몇 점, 평가에만 연연할 것이 아니라 작가의 입장, 연출자의 입장, 배우의 입장 등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작품 쓰기를 고려하거나, 작품을 평가하려는 자는 창작물을 다각도로 접근하고 이해하기 위해 일독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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