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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타 Aug 22. 2023

작별인사

나와 당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


- 언니…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진 나는 더럭 그녀를 안았다.



-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 나도 몰라... 나도 모르겠어….



이제 마흔인 사진 속 그이는 언제나 그랬듯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 육체는 아직 이 땅에 머물러 있으나 혼은 벌써 떠나가 버린. 너무도 건장하고 누구보다 성실히 삶을 꾹꾹 눌러살았던 그의 사인은 심근경색.



불과 2주 전, 나는 그녀를 지나가다 우연히 보았다, 약 4년 만에.



-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우리 봐야지.

- 네, 곧 봐요. 언니.



으레 주고받는 지나간 안부와 미래의 만남을 가볍게 입에 올리고 우리는 각자의 길로 돌아섰다. 기약 없는 '곧'이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검은색 옷과 초췌한 얼굴을 두른 채 이런 식의 만남으로 이어질지는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다.



- 언니. 언니 나 이제 어떻게 살아? 어떻게 나 혼자 애 둘을 키워…



습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른 그녀의 목소리에 내 마음이 갈라지는 것 같다. 지금 내가 어떤 말을 건네더라도 연기처럼 잠시 머물다 의미 없이 공중에 흩어질 뿐. 아니 어떤 말을 건넬지 나조차도 모르는 텅 빈 진공상태와 같은.



그렇게 벙어리가 되어 그저 뽀얀 손을 잡아주는 게 다였다. 외동딸로 곱게 자란 그녀의 손이 너무 보드라워서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남편은 가족의 사업을 물려받을 앞이 창창한 예비 CEO였다. 일하면서 받는 온갖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풀었다. 스트레스가 과했을까, 어느 순간부터 운동이 사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좀 쉬면서 아이들과도 시간을 보내라고 하였지만 남편은 운동을 안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다며 매일, 새벽같이 운동을 나갔다.



그리고 어느 날, 별안간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 아니… 아침에 애들 주려고 밥도 만들어놨더라고요…. 근데 이상해서 가보니까 숨도 못 쉬고 얼굴이 까매져서 쓰러져 있는 거야… 장난인 줄 알았다니까요… 근데… 사람이 눈을 못 떠…



급하게 부른 119는 10분 안으로 도착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기적은 없었다. 그녀는 나한테 왜 이러냐며 울부짖었다. 이 보드라운 손이 앞으로 얼마나 많이 상할까 하는 생각에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삶이란 참,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로구나. 죄를 짓지 않아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떠날 수 있는 거구나.



- 발인할 때 눈물 많이 날 거야…  많이 울고, 많이 슬퍼하고 잘 보내줘. 남편 너무 미워하지 말고, 잘… 잘 보내줘….



나는 그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두 배, 세 배 더 커질 것이라 믿는다. 작고 말간 손에 상처 나고 거칠어지더라도 어머니, 여자로서 더 당당하게 살 것이라 믿는다. 언젠가 반가워하며 스쳤던 그날처럼 다시 해맑게 웃으며 '언니 또 봐요'라고 건넬 수 있는, 아무렇지 않게 보통의 나날들을 먼지 털듯 이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우린 누구나 별이 되는 거니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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