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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타 Feb 14. 2024

남의 나라에서 외쿡인 작가를 만났다



베트남 여행을 갔다가 귀국하는 날, 새벽 1시 즈음 호치민 떤선녓 국제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위해 한참 줄을 서고 있었다. 일일이 얼굴과 여권을 대조하고, 느릿느릿 진행하는 터라 시간이 배로 걸렸다. 신속 효율적으로 자동 입출국 심사를 하는 우리나라에 대해 다시금 감탄을 하게 되었는데, 타국에 나가보면 없던 애국심이 절로 생기는 이유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대기줄 앞쪽에 사람들의 형형색색 머리들 사이로 머리통이 두개쯤은 위로 튀어나온 외국인이 있었다. 멀대같이 큰, 그 흔한 백인종 말이다. 무료함에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봐도 내 시야에 자꾸 걸리는 키 큰 외국인. 그렇지만 나의 눈을 사로잡은 건 키 뿐만이 아니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생김새 때문이었다.



'응? 어디서 많이 봤던 사람인데.'



흔한 외국인이라고 하기엔 내 눈에 너무 익다. 누구지…? 어디서 봤지?

나는 불현듯 2년 전에 읽은 책이 떠올랐다. 어? 그분? 혹시 그분인가?



나는 재빨리 나의 인스타를 열었고, 책 제목과 함께 저자를 훑었다. 저자의 이름은 안톤숄츠 . 나의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검색창에서 안톤 숄츠(안톤 슐츠)의 이미지를 검색하고 있었다.



'어?! 비슷하다, 비슷해!!'



나는 계속 휴대폰과 실물을 번갈아 쳐다보며, 씽크로율이 얼마나 되는지 고개를 조아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눈과 손이 너무 바쁜 찰나, 그와 눈이 번뜩 마주쳤다.



'읏! 어떡하지? 맞나? 아…, 아닌가?'



나의 불안한 눈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렸다가 다시 그에게로 멈췄다. 그도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맞는 것 같아, 나를 자꾸 보는 게. 어떡하지? 아는 체를 해, 말어…. 괜히 짧은 영어로 생사람 짚었다가 아니면 민망해서 어쩌냐. 흐음...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가자.'

이럴 때 진가를 발휘하는 호기심 천국 E인 나는, 홀린 듯 사람들을 제치며 그에게 다가가 운을 뗐다.



"어... 익스큐즈 미?"

"Yes?"



긴가민가하는 표정은 나도 그도 마찬가지였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아 유 안톤 숄츠?"

나는 그의 책 표지를 보여주며 내가 아는 당신이 맞냐고 들이댔다.



"Yes, right."

"오 마이갓!!"

나도 모르게 나온 튀어나온 탄성으로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굉장히 서툴지만 빠른 속도로) "아이 뤠드 유어ㄹ 북 앤드 아이 륄리 인조이드 잇. 와우!"

나는 내 인스타그램을 보여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랬구나."

응? 그랬구나? 너무 자연스러운 이 말...어째 좀 이상한걸?



"디스 이즈 마이 인스타그램. 아이 뤄어트 유어 북 리뷰."

"오, 고마워."



이쯤되니 서툰 영어를 하는 나와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를 보며 기묘하게 닭살이 돋았다.




"디스 이즈... 어? 아, 아니... 그러니까... 정말 인상깊게 읽고 썼다니까요? ...근데 정말 한국말을 잘하시네요. 제가 봤던대로."

(특유의 미남 미소를 지으며) "아, 그래요? 고마워요." 



안톤 슐츠는 독일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한국 문화를 사랑하고 관심이 지대한 언론인, 저널리스트로서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자주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배우처럼 생긴 마스크에 목소리도 중후하고, 논리 정연해서 저 양반이 외국인 탈을 쓴 한국인인가 착각할 정도.



"저기 실례지만 사진 좀 같이 찍을 수 있을까요?"

"아, 그럼요. 그럼요."



키가 큰 그는 다리를 쭉 벌리고 매너 자세를 해주었다. 나는 떡본 김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손도 덥석 잡았다(무례한 한국인인 내게 베푼 그의 매너).

앞에서 심기 불편한 베트남 공무원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는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었다.

세상 친절하다, 친절해...



"감사합니다! 안톤님, 응원할께요!"



손을 마구 흔들며 자리로 돌아오니 에서 멀뚱히 지켜보던 누군가가 슬며시 다가와 질문을 한다.

"저기... 저 분이요... 유명한 사람인가요?"






-

내가 호들갑을 무진장 떨긴 떨었나보다. 타국에서, 하필 그 공항에서, 그 시간대에, 오래전 TV로 봤던 작가를 이렇게 우연하게 보다니.

그를 알아본 나도 신기하지만, 환하게 대응해준 그가 참 고맙고 반가웠다.

사람은 이래서 잘 살아야 하나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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