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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타 Apr 08. 2024

내 안에 괴물이 있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요즘 흔히 이야기하는 '프랑켄슈타인'과 책 속 인물인 '프랑켄슈타인'은 엄연히 다른 존재다. 전자는 괴물을 의미하고, 후자는 그를 창조한 인간을 가리킨다. 작품의 다이나믹한 특성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되면서, 원래 이름이 없던 괴물이 어느 순간부터 '프랑켄슈타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세밀한 풍경 묘사로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스토리텔링이 인상적이다. 1800년대의 작품으로 기념비적인 고딕 문학으로 꼽히면서도, 그 스토리텔링 덕분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과연 괴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또한, 작품의 제목인 '프랑켄슈타인'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 책을 깊이 있게 읽어볼 기회가 없었기에, 이러한 의문들을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인간이 정말로 신의 영역에 도전할 수 있을까? 자연적인 여성의 출산을 넘어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창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는 현재 AI 발전의 추세와도 연관이 있다. 그간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 인간을 위협하는 로봇이나 기술이 등장하며 세상을 몰락으로 이끄는 디스토피아적인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AI의 발전 속도는 매우 빨라서 따라잡기 어렵다. 대량의 데이터를 단 몇 초 만에 분석하고, 때로는 사고와 감정을 가진 것처럼 반응하는 그들에게 놀라는 순간도 많다. 인간이 AI를 창조했지만, 현대의 '괴물'로 변하지 않도록 다양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편견과 차별, 소통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체면 문화'가 발달한 한국에서는 특히 외모가 중요한 능력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일단 외모가 단정하면 할로 효과에 의해 그 사람의 능력, 성격 등이 더 좋게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단정'이 아니라 '뛰어난' 외모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외모, 피부색, 성별, 인종, 장애 등 겉모습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내면을 볼 수는 없을까?


마지막으로 소통 부재의 문제를 들여다보자. 경제 성장기에는 부모님이 하루 종일 일하고 늦게 귀가하시는 경우가 많아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이 어려웠다. 부흥기 이후로는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휴대전화만 바라보느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소통의 부재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문제를 넘어,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고독과 외로움을 야기한다. 코로나 시대에는 실제 만남이 어려워도 SNS, 인터넷, 미디어의 발달을 통해 어떻게든 소통을 이루어냈다. 이는 인간이 외로움을 맞닥뜨리기에 매우 취약한 존재임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1800년대의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깊고 무겁다.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창조물인 괴물은 어쩌면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이성과 감정을 지니고 있으며 소중한 것의 가치를 알고 있지만, 서로에게 칼을 겨누다 결국 파멸의 길을 걷는다. 자신의 부정적인 면모를 회피하기 위해 그토록 몸부림친 것은 아닐까? 이런 점에서 볼 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며 괴물 또한 프랑켄슈타인이다. 나는 프랑켄슈타인이고,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니, 결국 나도 괴물이다.



이러한 사유를 거치며 내 생각이 바뀌었다. 프랑켄슈타인을 괴물로 지칭하는 것이 어쩌면 타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내 안에도 괴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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