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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삶의 심리학 mind Apr 24. 2020

COVID-19, 당신의 마음에 제안된 거대한 실험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코로나 시대의 심리방역에 대해 학교 신문사와 이야기 나누다, 학부 수업 중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 생각들을 모아 이렇게 다시 줄글을 남깁니다.


- 코로나 시대의 심리 방역에 대해 학교 신문사와 이야기 나누다, 학부 수업 중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
생각들을 모아 이렇게 다시 줄글을 남깁니다.
적다 보니 너무 길어졌고.. 흑흑


-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를 요구하는 지금의 시간은 많은 분들에게 형벌과도 같다는 것을 압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거나, 보호자가 없는 극도의 위험에 아동청소년들이 노출되는 것은 심리학으로 구원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 무력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임상심리학자로서 지금의 사회적 재난 시대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바는 그저 말과 글이어서, 이렇게 적습니다.

2020년 아닌, COVID 1년으로 기록될 시대.

COVID-19, 당신의 마음에 제안된 거대한 실험


박사과정 중이나 되어서야, 저는 제가 내향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박사과정을 돌아볼 때 가장 좋았던 기억들은, 대부분 홀로 연구실에 남아있던 때였습니다. 사람이 싫었다기보다 그 환경이 제 천성에 가장 맞는 것이었던 거죠. 그때 즈음에야 저는 제가 좋아하는 작업이 무엇인지를 (컴퓨터 앞에 하염없이 앉아있는 일), 저를 돌보는 좋은 방식이 무엇인지 (맛집 리스트 업데이트..) 천천히 알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제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든 부정적인 메시지를 말하든, 마음속의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타인의 인정이나 비난 없는 고요한 공간에서 편견 없이 흘러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 생각들이 (불필요한 감정만 남기고) 휘발되는 일이 없도록,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는 공간과 시간 안에서 그 안에 잠시 머무르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거대한 실험실 장면과도 같습니다. 외부의 자극은 통제된 상태에서 소수의 환경 자극들이 유기체의 감정과 생각과 행동을 바꿉니다. 누군가가 설계한 실험이라면 외부 자극의 정체와 각자의 마음에 작용하는 기제가 드러나겠지만, 이번의 실험은 오로지 자신만이 분석하여 그 결과를 도출해내야 합니다.


저도, 여러분도, (1) 본인을 잘 파악한 상태에서 (2)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3)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하여 그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 우리의 통제감과 효과적인 문제해결력을 높인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지요. 그러므로 이 실험의 분석은, 이렇게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1) 자기의 파악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죠. 진짜 자기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자기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


먼저, 진짜 자기 모습을 파악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외부의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측면은 분명 성격과 정체성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늘 간과되는 것은, 외부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의 자기는 어떤 사람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본인은 어떤 마음인가요. 조금쯤 홀가분한가요, 무료한가요. SNS 하는 빈도가 더 느슨해지고 있나요 혹은 여전히 정력적으로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있나요? 당신은 사람을 만나고 있지 않을 때 어떤 행동이 더 늘어나나요. 그 행동을 할 때 몰입감 flow을 이제 경험하기도 하나요?


당신의 행복감을 결정짓는 요소들은 코로나 시대에 그 순위가 뒤바뀌어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요새 와서 어떤 일을 할 때에 만족감을 빈번하게 느끼나요? 혹은 당신이 피하고자 했던 일들이, 실제로 머나먼 이야기가 된 지금, 이제 와서 조금은 아쉽기도 한가요?


이 시기를 지나며 나 스스로에게 뭔가를 남기고 싶다면, 그 밖의 여러 질문들을 스스로 생성해내고, 그 답도, 찾아내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자기 문제의 파악에 대한 것입니다.

문제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음.. 없습니다.. 문제없는 사람은 없어요..) 이 예측 불가, 통제 불가한 전염병에 대응하여 당신의 마음이 조금씩 왜곡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 같은 임상심리학자들이 흔히 관심을 기울이는 영역이지요.


먼저 현재 본인의 상태를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COVID-19와 같은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는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 의사결정 능력 저하와 같은 ‘인지 문제’, 우울감, 불안감, 무력감, 분노, 정서조절 능력 저하 등과 같은 ‘정서 문제’, 심장이 두근거리고 위장통을 경험하고 수면 및 섭식 패턴이 변화하며 사회적으로 철수하는 등의 ‘신체 및 행동 문제’ 등의 증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인지 문제, 정서 문제, 행동 문제 중 어떤 특성이 더 자신의 일상생활을 방해하고 정신건강에 위협이 되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이때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간의 개인력, 기질적인 특성들과 현재 상태에 따라 재난에 대한 스트레스 반응은 매우 다르게 나타납니다. 자신이 돌보아야 할 문제의 우선순위는 본인이 제일 잘 알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심리전문가들의 도움을 구할 수 있겠지요.

 

그리하여 인지 문제로 인해 수행 수준이 저하되어 있다면 본인이 해야 할 과제를 작은 단위로 쪼개어 하루의 계획을 미리 작성하는 것은 꽤 괜찮은 방법이 됩니다. 물론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책상 앞에 앉는 것입니다. 이건 저와 동료 교수님들도 늘 괴로워하는 문제이긴 한데, 일단은 뭐라도 시작해야 뭐라도 됩니다. 꾸물거리는 지연 시간이 길수록 나 자신 그리고 일에 대한 혐오감만 늘 뿐이죠. 뭐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정서 문제로 힘든 분들도 있습니다. 우울감이 문제라면 자신을 즐겁게 하는 새로운 패턴을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COVID19 사태의 종료 시점을 고려할 때, 최소 서너 달 정도의 시간이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지금에야말로 세련된(sophisticated) 수준의 자기 돌봄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쾌적해하는 온도와 습도, 좋아하는 집안의 냄새, (죽지 않기 위해;; 해야만 하는) 간단한 운동방법, 내가 좋아하는 방식의 간단한 아침 식단. 앞으로 나이가 들어서까지 괜찮게 유지할 만한 새로운 취미를 개발하는 시간으로 운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요리든 게임이든 술;;이든 프랑스 자수 든요.


(2)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기


신체 및 행동 문제가 두드러지는 경우는 사실 불안감이 관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기에는 특히 건강 염려와 죽음에 대한 압도감을 경험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건 기질적으로 좀 타고 태어나는 부분인데, 아 내가 또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신체 반응이 또 올라오나 보다, 하고 자신의 사적 경험을 한 층위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메타인지’를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 내가 지금 또 불안한가 보다’ 하고는 적절한 거리를 두어 자신의 불안을 관조해야 합니다.


첫째, 부정적 정서를 억지로 외면하지 마세요. 복잡하고 무거운 감정들을 경험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우울과 분노가 몰아닥칠 때, 이 역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세요. 나 힘들 수 있어. 지금은 힘든 것이 당연하니까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수면 위로 올라갈 거야, 하고 갑작스러운 불운에 대처할 시간을 자신에게 좀 주세요.


둘째, 다만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그 이유를 곱씹으며 괴로워하는 데에는 에너지를 쓰지 마세요. 이미 일은 일어났고, 지금의 심리적 에너지는 이다음을 준비하는데 모아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혐오를 표현하거나 분노를 표출하는데 생의 시간을 쓰지도 마세요.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1년 후에 혹은 5년 후에 지금의 상황을 돌아봤을 때 본인이 제일 아쉬워할 만한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세요.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생각보다 우리가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셋째, 비관적인 자기 서사를 만들어 그 안에 자기를 가두지 마세요. 이 심각한 재난상황에 생각이 경직되고 완고해질 수 있는데 이는 문제 해결력을 더욱 낮출 뿐입니다. 어처구니없는 유머, 별점이 높다는 웹툰, 새로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방에 둘 꽃을 구매하는 등의 하찮은 소비활동은, 자아의 비대한 바람을 ‘푸쉬쉬’ 빼주고 심리적 유연성과 회복탄력성을 높여줄 수 있습니다.


늘 이야기하지만, 사실 COVID19가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 지금 생에서의 우리의 운명이 닫힐지 알 수 없습니다. 결국 이런 불안은 우리 생각이 만들어 낸 ‘인지적 사치’ 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삶에 대해 조금 더 겸손해지면서 미리 재단하거나 걱정하려는 습관이 다소 줄어들고 신체 반응도 잦아듭니다. 일상의 루틴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요. 잠드는 시간보다는 일어나는 시간이 규칙적인 것이 더 중요하고, 식사는 두 번만 해도 좋으니 꼭 챙기고요.


(3)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비탄에 빠져 미래를 비관하기보다, 그날의 일상을 유지하려 애썼던 유태인들이, 예를 들어 자기 위생관리를 위해 주어진 비누를 가장 빨리 소진했던 유태인들이 더 오래 생존했다는 이야기들은 이미 익히 들어 알고 계시겠지요.


얼마 전 학부 수업 때에는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 이 온라인 수업을 듣기 전에, 씻고, 의관정제하고 앉아있는 분들 채팅창에 이야기 좀 남겨 주실래요?' 150명의 학생 중에 옷을 갖춰 입고 대학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은 8% 정도였습니다. 작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숫자만으로도 약간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누구도 보고 있지 않은데 자기 정돈을 하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는 분들.


자기 세상을 구축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간단히 식사를 하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갖춰 입고, 자신만의 공간에 꼿꼿이 앉아 자기의 한평 남짓한 세계를 온전히 구축하는 것.


짧은 이야기이지만 이런 일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구축하는 그 한 편의 세계는 언젠가 조금씩 그 넓이를 넓혀갈 것이며 또 다른 세계와 접점을 이루어 더 복잡하고 거대한 이야기를 이룰 것입니다.


삶의 95% 정도는 어차피 저희가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입니다. 미세먼지, 실패한 메뉴, 옆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목소리, 면바지의 구겨짐, 뻗치는 머리, 누군가의 마음. 그건 그냥 일단 두고, 가능한 부분에 집중해서 통제감을 가지고 자기의 세계를 새롭게 구조화시켜나가셔요. 큰 위기 이후 원래의 세계에는 균열이 일어나고 뉴 노멀(New normal, 새로운 정상)이 자리잡게 됩니다. 당신의 뉴 노멀을 선제적으로 구축하고 능동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세우세요.

 

각자의 거대한 실험에서 분명한, 그리고 본인에게 장기적으로 이로운 결과를 관찰해내세요. 비로소 자신만의 가설을 설정하고, 검증하고, 그 결과로 또다시 자신의 정체성과 세계를 구축해 주세요. 이 강제적인 연옥의 시기, 강제적인 잉여의 시기는 당신의 뇌와 당신 삶의 흐름을 조금씩 넓히기에 좋은 때.


사회적 생산성보다 자신의 안위를 우선순위에 두어도, 그 누구도 무례하게 굴지 않는 최초의 시기입니다. 이용하세요. mind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 임상심리 Ph.D.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임상심리전문가. 한국임상심리학회 홍보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대한뇌기능매핑학회 대의원 및 학술위원. 정신병리 및 심리치료의 효과를 임상과학 및 뇌신경학적 수준에서 규명하고자 연구를 지속함.



>> 한국인을 위한 심리학 잡지, <내 삶의 심리학 mind> 온라인 사이트가 2019년 7월 8일 오픈하였습니다. 내 삶의 비밀을 밝혀줄 '심리학의 세계'가 열립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심리학자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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