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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삶의 심리학 mind May 01. 2020

복수, 그래서 금자 씨는 행복했을까?

김수비 중앙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수료

김수비 중앙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수료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복수는 자신과 자신의 집단을 보호하고, 타인의 보복을 염두에 둔 적응적 행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복수하고 나면 기분은 좋아질까요?


복수의 본능과 보상회로


이별을 고하는 애인, 갑질 하는 직장 상사, 층간소음을 내는 이웃, 방향지시등 없이 끼어드는 운전자... 분노를 유발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심리적, 육체적 피해를 줍니다. 피해를 헤아리다 보면 가해자에게 그것을 되갚아주고 싶은 욕망인 복수심이 차오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분통하다고 앙갚음해 버리면 나도 상대방과 별반 없는 사람이 되는 법이기에, 우리는 나쁜 상상을 접고 ‘그 사람과 같은 부류가 아님'을 위로하며 살아갑니다.


사실 보복에 관한 생각이나 충동은 인간이 가진 본능입니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복수는 자신과 자신의 집단을 보호하고, 타인의 보복을 염두에 둔 적응적 행동을 취하기 위한 것입니다(Feinberd, 1965). 복수는 불의로부터 정의를 실현함으로 사회를 유지하고 발달시켰습니다.


복수의 생리적 메커니즘은 보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해를 끼친 대상에게 처벌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보상을 추구하는 뇌 영역인 선조체(stratum)의 활성과 관련되며(Ariely, 2010), 보복 상황에서 가혹한 처벌을 택하는 것은 보상회로인 복내측전전두피질(vmPFC)의 활성과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즉, 복수는 정당하지 않은 피해로부터 보상받고자 하는 생리적으로 내재된 본능입니다.


복수는 기분을 좋게 할까?


복수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 기제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침해된 정당성을 회복하는 긍정적 기제이기도 합니다. 복수와 관련된 정서를 알아보기 위해 칼스미스와 동료들은 복수를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교하였습니다(Carlsmith et al., 2008). 그 결과 복수를 한 사람의 기분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나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복수를 한 사람들은 ‘복수를 하지 않았다면 기분이 나빴을 것’이라 여겼고, 복수할 기회를 얻지 못한 참여자도 ‘복수할 기회가 있었다면 기분이 좋았을 것’이라고 응답하였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복수는 기분을 좋게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복수하는 것이 자신의 기분을 좋게 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수하는 것이 왜 기분을 나쁘게 하는지에 대해 칼스미스는 반추(rumination; 반복적으로 지나간 일을 생각함)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단순히 복수심을 가지는 것은 얕고 쉽게 없어지는 가벼운 수준의 사고에 그칩니다. 이와 달리 복수를 ‘하는 것’은 감정에 따라 행동한 것으로, 행동하게 만든 감정과 대상에 대한 반추가 일어납니다. 복수감과 보복 대상에 대한 반복된 생각은 부정적인 정서를 유발하기 때문에 복수하는 것이 기분을 오히려 안 좋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복수의 굴레에 빠지면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자신이 당한 피해를 그대로 되갚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복수하는 사람과 보복을 당하는 사람이 지각하는 가해(및 피해)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Jaffe, 2011). 복수하는 사람은 작은 처벌을 가한다고 해도 당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가혹하게 느껴지게 되고, 이러한 차이는 과잉 보복을 또 보복하는 사이클이 양산합니다.


복수는 먼저 ‘정당하지 않은 피해’를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피해로 해석되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상식과 도리를 벗어나는 타인의 행동을 가해로 느낍니다. 그러므로 피해를 준 사람의 상식에서는 자신이 피해를 끼쳤다고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어떤 것이 정당한지, 피해인지 판단하는 개인의 관점을 객관적(더 나아가 절대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잣대는 점점 엄격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편향적인 시각들은 개인 차원을 넘어 해를 끼친(다고 해석된) 세상에 대한 분노, 대중을 향한 비난, 불특정 다수를 향한 혐오로 번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복수는 정의를 구현하는 한 방법이었다. Pierre-Paul Prud'hon. 'Justice and Divine Vengeance Pursuing Crime'

복수의 유혹으로부터 대처하기


안타깝게도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든 타인으로부터 피해를 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복수하는 것은 자신을 불쾌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닥칠 부당한 피해에 복수하지 않고 살 방법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Psychology Today, 2013)


첫째, 해를 끼친 상대에게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는 복수심을 가진 우리에게는 피해를 받은 주관적 입장을 명확하게 하고, 상대에게는 복수심을 품은 사람을 이해하고 자신의 잘못을 만회하는 기회가 됩니다. 골위처와 덴즐러의 연구를 따르면, 복수심이 충족되는 조건은 처벌이 아니라 ‘복수 대상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의 복수심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Gollwitzer, Denzler, 2009). 이는 피해자이자 복수자가 진정 얻고자 하는 것은 폭력이나 처벌이 아니라 대화를 통한 상호 간 이해와 용서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뜻합니다.


둘째, 타인과 나의 영역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에게 친절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당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해를 끼친 것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영역에서 이뤄진 그 사람의 몫입니다. 만약 이것을 나의 영역으로 가져오고 반응하는 것은 나의 몫이 됩니다. 이에 더하여 누군가에게 앙심을 품고 해를 끼치는 것은 나의 몫일뿐만 아니라 나의 업(業)도 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각자의 영역을 꾸려가야 합니다.


셋째, 건강한 자기상을 가지는 것입니다. 타인의 공격으로 자기상(self-image)이 손상되면 회복을 위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타인의 공격이 부당하다는 것을 거세게 주장할 수도 있고 보상받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자기상이 공격에도 손상되지 않거나 강한 회복력을 가진다면 그러한 노력은 필요 없게 됩니다. 이렇게 강하고 회복력이 있는 자기상은 누구에게도 규정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자기의 가치를 발견함으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복수심이 우리의 존재와 삶을 잠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백 선생(최민식)을 향한 복수를 멋지게 완성한 '친절한' 금자 씨(이영애 분)의 얼굴엔 웃음과 울음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아마 금자 씨에게 분노와 원한은 계속 남아 반추될 것입니다. 어쩌면 복수의 몫으로 채워진 영역에서 일상을 사는 게 감옥에서 지내던 때보다 괴로울지도 모릅니다. mind


   <참고문헌>  

Carlsmith, K. M., Wilson, T. D., & Gilbert, D. T. (2008). The paradoxical consequences of reveng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5(6), 1316.

Chester, D. (2019). Do You Want to Get Some Revenge Now or More Revenge Later?. Psychology Today, Posted Mar 27, 2019.

Chester, S. (2018). The Neuroscience of Revenge. Psychology Today, Posted Nov 06, 2018.

Gollwitzer, M., & Denzler, M. (2009). What makes revenge sweet: Seeing the offender suffer or delivering a message?.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5(4), 840-844.

Hall, K. (2013). Revenge: Will You Feel Better?. Psychology Today, Posted Sep 15, 2013.


김수비 중앙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수료

중앙대 심리학과 사회 및 문화심리 연구실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건강한 사회와 개인의 안녕감을 위해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에 대해 질문하고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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