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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삶의 심리학 mind May 13. 2020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모두에게 자살을 이해하도록 돕는, 임상심리전문가 임민경 선생님의 저서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문학으로 읽는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 임민경 지음. 들녘. 14,000원.

마인드지의 참 귀한 필진인 임민경 선생님이 첫 대중서를 출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개인적으로는 많이 기뻤다. 귀한 글을 고심 끝에 엮었을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에.


받아본 책의 제목을 읽고는 음, 역시,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문학으로 읽는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


심리학자 중에서도 → 임상과 이론 수준에서 자살을 알아야 하며 → '머리를 감으며 샴푸 뒤편에 인쇄된 성분 목록을 읽어내야만 하는 활자중독'이어야 가능한 프로젝트렷다.. 그러한.. 임민경 선생님에게, 책의 뒷이야기를 여쭈었다.


책 매우 잘 읽었다.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모두에게 자살을 이해하도록 돕는 책이었다. 자살에 대한 개론서로 적극 권유하고 싶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쩐지 어폐가 있다... (자살에 대한 개론서... 음...) 이 책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나?


감사합니다! 실물 책을 받아볼 때까지도 제 책이 나왔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잘 읽었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이제야 조금씩 실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는, 사실 처음엔 절반쯤 흥미 위주로 시작했던 기획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자살로 사망한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런 작품들을 여럿 읽다 보니 그들의 자살이 특정 심리학 이론으로 잘 설명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되었어요.


자살에 대한 제대로 된 심리학 이론이 나오기 한참 전에 출간된 책에서도, 예를 들면 18세기에 출간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처럼 ‘자살의 이론을 보여주는’ 인물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니, 입이 근질거려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한국임상심리학회)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마친 뒤, 모 아카데미에서 <심리학으로 읽는 문학 속 자살>이라는 주제로 강좌를 열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그 강좌를 토대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입이 근질.. 왜인가.. 왜.. 어떤 책을 읽든 자살에 집중하는 편인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가상의) 자살자들을 만나게 되었나?


어쩌다 보니 우연히 모인 글들이 자살에 대한 것이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올라옵니다... 자살에 집중한다고 말하면 정말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 하지만... 사실입니다.. 어떤 책을 읽든 자살과 관련한 주제에 주의를 기울이는 편인 데다 자살이 나오는 책을 골라 읽기도 하고, 자살한 작가의 글을 골라 읽기도 합니다. 이런 기벽이 어쩌다 생겼는지는 이제 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되었는데요...


사실 자살을 선택하는 인물들은 어떤 식으로든 - 감정이든, 생각이든, 행동이든 간에 - 극단을 보여주기 마련인데, 극단에 대한 묘사를 통해 어떠한 진실이 낱낱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어 그런 듯합니다. 어떤 아주 미묘한 문제는, 부자연스럽거나 비이성적일 정도로 극단적 과장을 통해서만 뚜렷이 드러나기도 하니까요. 마치 아주 작은 물체는 확대경을 가져다 대야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예를 들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유명한 ‘자살 논쟁’ 부분에서, 마치 열병으로 죽어 가는 사람에게 기운을 내라고 말한들 죽음을 막을 순 없는 것처럼, 이는 자살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분명 과장되어 있고 인지적 왜곡이 엿보이는 표현이기는 합니다만, 이러한 말을 하는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깊은 고립감, 누구와도 연결될 수 없고 아무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느낌만큼은 너무나 잘 전달되는 것 같아요.

스페인 젊은 화가 Mario Jodra의 작품.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C)Mario Jodra

묘하게 설득된다. 그럴 수 있지... 실제로 저자가 각 인물의 자살 관련 정보를 탐색하면서 기존의 사회과학적 이론들을 접합시키는 지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러나 나 같은 독자가 잘 적힌 책을 감사히 읽는 것과는 달리, 저자는 이 글들을 쓰면서 나름 고충이 매우 컸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작업을 할 때 본인이 가장 신경 쓰는 지점은 무엇이었나?


자살을 낭만화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서 다루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회과학적 이론에 너무 치중하면 차갑고 딱딱한 책이 될 것 같았고, 책 속 인물이나 작가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 치중하면 자칫 자살을 낭만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흐름에 일조하게 될까 봐 염려되었어요.


또한 실재한 작가들에 대해 말할 때에는 이미 모두 과거의 일들이 되어 문자와 자료로만 남은 삶들을 제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적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그들의 삶을 <자살>의 관점에서만 해석해서 축소시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실비아 플라스는 작품보다 자살의 과정이 상당히 드라마틱하기에 이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들이 이미 많이 알려져 있기도 했고, 시보다 자살을 말할 때 더 많이 회자되는 실존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를 기술하는 것이 참 조심스러웠습니다. 더더욱 삶이 끝난 시점에서 작가 실비아 플라스의 삶을 해석해 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가됨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결국 이 책은 자살을 말하는 것이기에 그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살에 방점을 찍지 않겠다는 의도는 일부 실패했다는 생각도 들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다만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삶의 ‘과정’ 부분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기에, 부디 읽는 분들께도 그런 노력이 엿보이면 좋겠습니다.


다른 독자분들께서도 이 책을 읽으시면서 어떻게 느끼셨을지 몹시 궁금합니다.


궁금하다니 내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책을 적는 일은 오로지 저저의 몫이기에, 저자가 자살과 관련한 일화들을 기술하면서 많이 힘들었으면 어쩌지 걱정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실 나의 경우 모든 책을 한 번에 읽는 편이지만, 이 책은 사이에 쉬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읽어야 할 정도로 마음에 거대한 중압감이 있었다. 자살에 관한 글을 적으면서 본인의 정신건강을 어떻게 챙겼는지, 또 자살에 관한 글을 기술하면서 자신을 위해 노력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 자살에 관한 글을 적던 그때 저의 정신건강은 정말이지…… 최고였습니다. 사실 작품들은 이미 익히 알고 있어 정서적 거리를 둘 수 있는 작품들이었고, 작가들도 사망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전기가 여러 권 출판된 작가들만 등장하니까요.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 아니라 ‘책 속의 인물들’을 다루다 보니 마음을 가볍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심리학 이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이미 무거운 마음으로 연구를 하고,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던 심리학자 선배들(!)의 이론을 저는 공부만 하면 됐었기 때문에, 뭐랄까 같이 농사를 짓는 농부가 아니라, 가장 맛있는 열매만 골라 따먹고 있는 여우의 기분으로 즐겁게 쓸 수 있었습니다.


아... 정신건강.. 최고... 역시 남다르다.. 책의 인물들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해보자. 소개한 여러 문학 속 인물들을 기술하는 방식들에서 약간의 온도차 혹은 애정의 차이가 엿보이는 듯했는데, 이건 내 기분 탓인가...?  혹시 애정의 차이가 있었다면 어떤 인물에서 그 차이가 있었는지 살짝 궁금하다.


앗, 그렇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작가와 인물들에 대해 더 연구하는 과정에서, 정말 사랑하게 된 인물들이 생기게 되었어요. 그런가 하면 그 와중에도 인간실격의 ‘요조’는 도무지 완전히 좋아할 수가 없었는데, 다른 것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과 함께 살던 여성이 강간 피해를 당한 후에도 상대를 위하지는 못할망정 자신을 연민하는 모습만큼은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마음이 드러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독자들 입장에서도 더, 덜 마음 가는 인물들이 분명 있을 듯하다. 참, 이것도 묻고 싶었다. 저자 소개 글에 '언제나 누군가의 애독자이자 무언가의 애호가입니다'라고 적혀있는데, 현재는 어떤 것의 애호가인지 혹시 귀띔해줄 수 있는가?


사실 그 소개글은, ‘덕후’라는 말을 어떻게든 아름답게 표현해보고자 적었던 글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덕질’ 하는 것은(고리타분한 게임 얘기를 제외한다면) 아무래도 버지니아 울프인 것 같습니다. 근래 저와 몇몇 랜선 친구들은 4월에 자체 버지니아 울프 주간을 갖고 있답니다!


울프는 고리타분한 작가인 줄로만 알았는데,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으로>라는, 또 다른 버지니아 울프 ‘덕후’ 연구자의 책 덕에 다시 사랑하게 되었어요. 울프는 일상적 삶의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도 온 정신을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또 그런 경험들에 대해 작품뿐 아니라 일기와 편지를 포함해 엄청난 양의 기록을 남긴 사람이었는데, 그 덕에 독자는 마치 울프와 자신이, 또 다른 사람들의 삶도.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세월’ 은 이런 감각으로 인해 탄생한 소설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벌써 마지막 질문이다. 책 중 (p.75) <오스트리아의 작가 에리히 프리트가 말했듯 많은 경우 문학은 "삶을 혐오하여 쓴 것도 사실은 삶을 위해 쓴 것"이며, "죽음을 찬양하여 쓴 것도 사실은 죽음을 이기기 위하여 쓴 것" 같습니다.>라는 글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건 내 생각이고...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 이 책이, 대중들에게 어떤 의미이기를 바라나?


책을 쓰면서, 은연중에 예상 독자분들로 설정해 두었던 것은, 자살이 '완전히 다른 사람 이야기'이지만은 않은 사람들, 자살에 한 번이라도 가까이 갔거나 혹은 지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혹은 저의 경우를 포함해 가까운 이의 자살을 경험했던 사람들과도 이 책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사족] 그런 사람들에게는 ‘왜’라는 말이 가장 커다랗고 가장 견딜 수 없는 질문이 되어버리는데, 그런 질문에 답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의 힌트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원한다. mind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 임상심리 Ph.D.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임상심리전문가. 한국임상심리학회 홍보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대한뇌기능매핑학회 대의원 및 학술위원. 정신병리 및 심리치료의 효과를 임상과학 및 뇌신경학적 수준에서 규명하고자 연구를 지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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