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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삶의 심리학 mind Jun 10. 2020

일에 대한 새로운 시선: 워커필(workaphile)

김근향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

일에 홀려 사느라 사생활도 가족도 희생한다는 무서운 병 워커홀릭. 그런데 워커홀릭으로 낙인찍기에는 좀 미안한 그냥 자신의 일이 좋아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진정 자신의 일을 사랑하여 일을 통한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는 말 그대로 워커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워라밸에 갸우뚱


많은 사람들이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등장에 격하게 공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은 삶에 포함되는 것인데 그 표현은 일과 삶을 이분화해서 보거나 서로 반대 끝에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워레밸(?)(work and leisure/rest balance)이라고 했으면 이해가 쉬웠을 텐데. 하지만 대충 일과 휴식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거겠지 싶었다. 인생이 너무 일 쪽으로 기울어지면 곤란할 테니.


그럼, 삶에서 일은 얼마면 돼?


모든 좋은 것이 그러하듯이 워라밸도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분명 워라밸은 우리 사회가 과도한 노동과 그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여 워커(worker) 개인 삶의 행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개개인은 무조건 워라밸을 따라가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일(직업활동)이 차지하는 적정 비율과 그 가치에 대해 이해하려는 작업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분명 일에 조금 더 가치를 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잠깐, 일의 범위를 규정하자.


여기서 말하는 일은 직업활동이다. ‘OO하는 일’이라는 표현은 아마 세상 모든 OO에 가능할 것이므로 ‘일’을 직업에 따른 업무에 국한하는 것이 맞겠다. 따라서 지금의 논의는 미안하지만 백수白手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휴식이고 레저이며 취미인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직업이 될 수도 있으므로 개인에게서 ‘일’은 모두 상대적인 것이다. 일은 사람에 따라서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고 많은 경우에 어쩔 수 없는 생계의 수단일 뿐이기도 하다.


일이 중요한 사람들


일을 좋아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인생에서 일이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 성실한 사람, 강박적인 사람, 성취동기가 강한 사람이 바로 그런 부류의 유력한 후보자다. 우리 모두가 지향한다는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의 욕구를 발휘하기에 딱 좋은 것이 ‘일’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졌거나 자신이 선택한 것을 잘 해내는 것, 그 과정을 빈틈없이 채워가는 것, 완성해 냄으로써 만족을 느끼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의 주무대는 바로 직업의 장(field)이 되겠다.


하지만 워커홀릭은 곤란


일을 끝내려고 일을 잘하려고 게다가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다 보면 지나치게 일에 몰두할 수 있다. 자칫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또한 소중한 사람들과 소원해질 수도 있다. 일을 하느라 건강과 사람 이 두 가지를 잃어버린다면 아무리 일을 잘 해낸다고 해도 소용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것이리라. 그래서 일에만 빠져 사느라 자신에게 소중한 그 무언가를 희생하여 대가를 치르게 되는 사람들에게 워커홀릭(workaholic)이라는 오명을 씌우는 것일 게다.


워커홀릭의 리얼리티?


하지만 얼마나 일을 끊지 못하길래 누구나 하기 싫어한다는 ‘일’에 중독까지 될까. 알코올홀릭처럼 워커홀릭도 일을 조금 해서는 성에 안 차고 더 많은 일을 해야 만족을 느낄 수 있으며(내성) 일을 딱 끊고 안 하게 되면 일을 하고 싶어 안달(금단)이 날까. 워커홀릭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카페인, 니코틴, 알코올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일’을 대입하는 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일에 대한 내성도, 일을 끊었을 때의 금단현상도 도무지 와 닿지가 않는다.


몰입이 가장 잘 되는 것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경험표집법(Experience sampling method; ESM)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일상 활동의 몰입도를 측정하였다. 경험표집법은 활동을 하는 현재의 그 순간에 실시간 보고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회상과 의미부여, 사후 해석 등으로 인한 오류를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다. 연구 결과, 몰입이 가장 잘되는 것은 다름 아닌 일과 공부였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행복이라는 몰입. 일이 몰입도가 가장 큰 것이라면 가장 큰 행복은 일하는 것인데...


'일'에 몰입하는 것이 행복인 이유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일에는 명확한 목표와 규칙이 있다. 일은 산만함을 누르고 집중력을 살린다. 어떤 목표 하나에 집중할 때 불안은 사라지고 심지어 신체도 이완된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여가는 일보다 즐기기가 더 어렵다. 여기에서 말하는 여가는 TV시청과 같은 수동적인 활동이 아니다. 여가를 통한 몰입을 경험하려면 처음에 어느 정도의 집중력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오히려 일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이 더 쉽단다.

해바라기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모습을 고갱이 남겼다. Paul Gauguin (1848–1903), Van Gogh Painting Sunflowers, 1888

일에 잘 몰입하는 누군가는 '일'을 좋아할 밖에


몰입의 즐거움을 최고로 제공하는 것이 일이라면 어찌 일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일에 몰입하려면 열정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일에 어느 정도의 호감은 있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일에 몰입하여 만족감을 느끼고 또 그로 인해 몰입을 더 자주 경험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몰입할수록 점차 더 향상되는 실력과 성과 등으로 인해 그 사람은 결국 그 일을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관심을 두지 않는 일상의 다른 영역은 소홀해질 수도 있다는 단점도 있다.


그렇다면 워커필?


자신의 일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그 일을 몹시 좋아하는, 그러면서도 강박적으로 일하지는 않는 사람, 그렇다고 워커홀릭은 아닌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있다. 일(work)에 좋아한다(phile)는 의미를 붙여서 만든 '워커필'이 바로 그것이다. 워커필은 일 벌레의 건강한 형태로 불편한 현실과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며 일을 함으로써 오히려 이완되고 워커홀릭과 달리 타인들과도 잘 어울린다(Edward, 2014). 여전히 워커홀릭과 헛갈리기는 한다. 워커홀릭이 단지 일에 중독된 것이라면 워커필은 일을 통한 몰입의 즐거움에 중독된 것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워커만으로도 좋지만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요즘 세상에 사실 워커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며 그에 흠뻑 몰입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 워커필도 일을 과도하게 할 경우에는 폐해가 발생할 수 있으니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면 그들과 상의하여 일과 가정 또는 일과 대인관계 그리고 일과 휴식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행여 일을 통한 몰입의 즐거움에 빠져 열심히 일하는 워커필을 그동안 워커홀릭으로 오해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둘의 감별진단이 여전히 어렵긴 하지만. mind


   <참고문헌>  

Csikszentmihalyi, M.(1997). Finding flow: The psychology of engagement with everyday life. New York: Basic Books.

Edwards, J.(2014). The World Is Your Oyster:?Designing your career in engineering and science(eBook). Coal Point.

김근향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 | 임상심리 Ph.D.

너무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꿈을 심리학자로 정해버려 별다른 의심 없이 그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그 여정에서 다시 태어나면 꼭 눈에 보이는 일을 해 봐야지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의 심리학 대세론에 선견지명이 있었다며 스스로 뿌듯해하며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꾸어 본다.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 생생한 삶 속에서 심리학의 즐거움과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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