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 중앙대 심리학과 박사 수료
지난 4월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와 같은 안타까운 재난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매번 원인으로 지적되는 안전불감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지난 4월 29일 경기도 이천의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원인에 대한 조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공사를 빨리 끝내기 위해 샌드위치 패널과 같은 인화성 물질이 든 자재를 가공하는 동시에 용접을 하다가,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유증기에 불티가 옮아 폭발과 화재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현장에서 일하던 38명이 유명을 달리하셨고, 10명이 다쳤으며, 나머지 피해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유가족들은 이천시가 임시로 마련한 거처에서 한 달이 넘게 수사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고 내용을 보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는지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닙니다. 사고 원인에 대한 추측이 사실이라면, 왜 따로 진행해야 할 자재 가공과 용접을 동시에 진행했는지, 유증기가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환기만 잘 시켰어도 피해가 덜 했을 수 있는데 왜 되지 않은 것인지, 피해자 대부분이 하청업체가 일시적으로 고용한 일용직 노동자인 상황에서 사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되고, 자연히 이번 사건 또한 우리가 수없이 들어온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의 결과인지를 묻게 됩니다. 그렇다면 ‘안전불감증’이란 무엇이고, 왜 나타나며, 어떻게 대비책을 세울 수 있을까요?
안전불감증, 우리만의 일일까?
안전불감증은 사람들이 당연히 위험을 느끼고 안전한 방향으로 행동해야 함에도 문제의식 없이 불안전하게 대처하는 관행을 지적하는 말 입니다만(이강준, 권오영, 2005), 연구자들은 이 표현에서는 다분히 자기 조절과 통제를 강조하고 있는데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 실천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다소 어폐가 있다는 점을 짚습니다. 이 표현은 실재하는 사회적 병증을 나타낸다기보다는, 소중한 인명을 덧없이 잃는 재난이 반복되는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 수사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이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라고 하는 1911년 트라이앵글 화재 사고 때는 셔츠를 만들던 어린 여공들이 천 무더기가 쌓인 좁고 열악한 작업장, 잠긴 비상구 때문에 제때 탈출하지 못했고, 1987년 영국 여객선 프리엔터프라이즈 호는 관리 책임이 있었던 선장, 부갑판장, 1등 항해사의 태만으로 출입문을 닫지 않은 채 출항했다가 침몰하여 193명이 사망했습니다(박상은, 2014). 이러한 사고의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상황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하는 ‘안전불감증’이라는 표현에 들어맞는, 잠재적인 위험요인을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방치한 행동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안전불감증’에 우리 사회만의 고유한 요인이 아닌 무언가 보편적인 요인도 작용함을 시사합니다.
안전을 위한 법 제정의 중요성
위의 두 사고 이후 조치를 살펴보면 안전불감증으로 이어지는 ‘보편적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트라이앵글 화재는 대대적인 시민운동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결과 비상구 상시 개방을 포함해 안전한 작업환경을 보장하는 법이 제정됩니다. 프리엔터프라이즈 호 침몰 재판에서는 책임 있는 개인들과 함께 회사도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영국 법원은 판결 때 선사 전체에 ‘부주의라는 병(disease of sloppiness)’이 만연해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때의 판결은 2007년 기업살인(과실치사)법이 제정되는 계기가 됩니다. 법이 제정되었다는 것은 안전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 실질적인 불이익이 뒤따른다는 의미이고, 이는 인간이 가장 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확실한 이익은 취하려는 데 비해, 확실시되는 손해는 얼마큼일지가 불확실한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피하려고 하는 인간의 경향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Kahneman, 2012). 만약, 법이 제정되기 전에 안전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거나, 안전 관리를 위해 추가적인 업무를 하거나, 인력을 더 고용하는데 드는 비용을 지출하는 것을 꺼렸다면, 법이 제정된 뒤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집니다. 그러한 비용을 지출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개인이나 조직이 위험을 방치하는 이유가 대처에 드는 비용(돈, 시간, 노력)을 아끼기 위해서라면, 대처하지 않았을 때 드는 비용이 더 커지도록 상황을 바꾸어야 행동이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법은 이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발의되었으나, 제20대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습니다. 법을 만들거나 바꾸는 데 주요하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가 사회적 여론이기 때문에, 이렇게 보았을 때 여론을 형성하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은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조직이 사람들의 안전을 좌우하는 결정을 해야 할 때, 조직의 권력이 리더에게 집중되어 있다면 조직에 생계를 걸고 있는 관리자나 하급 직원이 리더의 뜻을 거스르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상호관계와 사회적 조화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문화가 여기에 부가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처럼, 현장에서 실무를 맡은 말단 직원이 상사나 선배의 명령, 관행, 집단의 압력에 반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조직의 리더가 경제적 이익을 선택할 경우에 대비한 방책이 필요합니다. 위험행동이 안전행동에 비해 손해라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고려하여 납득 가능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험은 우리 삶의 전제조건이며,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구조적 측면, 문화적 측면, 개인적 측면이 모두 중요합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브릭웰(Breakwell, 2014)은 위험의 사회심리학적 분석을 위한 모형을 제시했습니다. 이 모형은 사회역사적 맥락, 물리적 환경, 사회적 가치, 신념, 규준, 조직과 다른 사람들의 영향, 개인의 과거 행동 및 생각, 감정, 의도가 모두 개인의 위험 관련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순열(2015)은 위험 감소와 사고 예방을 위한 심리학적 대책을 제대로 수립하기 위해서는 개인, 산업조직, 국가사회의 경험적, 인지적, 지각적, 정서적 측면을 통합적으로 연구해야만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법에서부터 산업현장의 구체적인 안전 수칙에 이르기까지 사회 구성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 그리고 개개인이 생활 속에서 그러한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의 중요성은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이 떠나신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연구하고 실천하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합니다. mind
<참고문헌>
박상은 (2014).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사회운동.
이강준, 권오영 (2005). 안전시스템 구축과 심리학의 적용. 한국심리학회지: 실험, 17(3), 299-310.
이순열 (2015). 한국사회의 위험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과 제언. 한국심리학회지: 일반, 34(3), 709-739.
Breakwell, G. M. (2014). The Psychology of Risk. Cambridge University Press.
Kahneman, D. (2018). 생각에 관한 생각. (원전은 2011년에 출판) 파주: 김영사.
신기원 중앙대 심리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심리학과 사회 및 문화심리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위험지각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내용과 형식이 아름다운 심리학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꿈은 나와 우리가 함께 행복한 삶의 길을 찾는 심리학에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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