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현 삼육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이제 한국에서도 데이트 폭력이 낮설지 않다. 많은 연구들은 '밀당'없는 '올인'이 더 위험하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한다. 모순적인 사랑의 심리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지금은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지만 21세기가 시작될 즈음까지도 연인 사이에 발생하는 폭력에 관심을 갖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필자는 중독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로 외국에서 음주와 데이트 폭력 간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을 알게 되어 한국인을 대상으로도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연인 간에 발생하는 폭력에 관한 연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사회에는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2001년 전에는 데이트 폭력이 매스컴에 기사화된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일간지 기자에게 이메일
이에 필자는 데이트 폭력 연구에서 나타난 실태를 알리기 위해 4대 일간지 사회부에 이메일을 보냈고, J일보 사회부 기자가 연락을 해 왔다. 기자의 지인이 데이트 폭력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어 이것이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것을 통감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2001년 9월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이 기사화 되었고, 그 이후 드디어 방송 등에서도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필자는 Dating violence를 ‘연애 폭력’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었고, 다른 학자들은 ‘이성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기사내용에 관해 논의하면서 기자가 연애폭력이라는 표현이 왠지 어색하다고 하여 ‘데이트 폭력’이라고 번역하기로 협의하고, 그 이후부터 필자는 방송이나 논문에서 데이트 폭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지금은 데이트 폭력이라는 표현이 일반화되었지만 지금도 ‘데이팅 폭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데이트 폭력과 관련된 인간의 심리는 무엇일까? 미국에서 1980년 전후 연인 간에 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한 이래 많은 연구들이 있었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목격했거나 경험하여 학습된 심리가 데이트 폭력을 가해 혹은 피해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가부장적인 심리도 남성이 데이트 폭력을 가해할 수 있고, 여성이 피해를 감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데이트 폭력이 인간의 심리가 아닌 처한 상황과 관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경계선 성격 소유자
그런데 필자가 20년 이상 데이트 폭력을 연구하고 가해자나 피해자를 상담한 결과 심각한 데이트 폭력은 모두 연인에 대한 집착 혹은 상대를 소유하고자 하는 심리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경계선 성격'(Borderline Personality)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그런 심리가 강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사람에게 집착하게 되는 심리는 어린 시절 사랑하거나 신뢰했던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멀어졌거나 심리적으로 '버림'(abandonment)을 받았다고 느껴지는 경험에 기반으로 둔다. 그런 충격적 경험이 신뢰할 수 있거나 사랑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강한 그리움을 발달시키고, 그런 그리움은 완벽한 인간관계, 특히 이성관계에 대한 로망을 키운다.
그런 심리가 기본적으로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사회관계에 잘 적용하면 타인에게 헌신하고 관계의 가치를 존중하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심리가 지나쳐 타인을 조종하거나 의심하는 수준에 이르면, 상대에게 강한 분노를 느끼게 되고 그것이 상대를 향한 폭력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연인관계는 자신의 유전자를 남겨야 하는 본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겼을 때 경험하는 분노 수준은 실로 엄청나서 상대를 살해하는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평소에 아주 잘해준다
그런 심리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연인이 골절상을 입을 정도의 폭력을 가해하는 사람들도 평소에는 상대를 아끼고 아주 잘 해준다. 그런 사람들은 이성친구와 언제나 함께 하고 싶어 하며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한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어 만나기 시작하면 이른바 ‘밀당'(밀고 당기는 심리적 전략)을 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소위 '올인'(all-in)하는 것이다. ‘밀당’을 하지 않고 상대에게 완전히 빠지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연인과 언제나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게 되고 그 과정에서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연인에게 모든 것을 거는 것은 데이트 폭력 가해자의 심리이기도 하지만 피해자의 심리이기도 하다. 데이트 폭력 피해자인 여성 내담자들 중에 한 명은, 살면서 이성과 제대로 사귄 적이 세 번 있었는데 각각 다른 세 사람의 연인으로부터 모두 사귀는 동안 지속적으로 심각한 수준의 폭행을 당했다. 얼핏 이 여성이 맞을 짓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이 아니고 이 여성은 오직 자신에게 올인하고 나중에는 집착할 남자만 선택하여 연인관계를 맺는 심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연인, 혹은 스토커
그런 심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연인과 헤어진 이후 스토커가 된다. 스토커의 58% 혹은 80%가량이 헤어진 연인이라는 조사 결과들이 있었다. 또한 그런 사람들은 이별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스토킹도 이별범죄이지만 더 심각한 범죄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성친구의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대 혹은 상대의 가족에게 폭력을 가해하거나 심지어 살해하는 경우까지 있다.
방송에서 많이 소개되어 익숙한 미국의 유명 밴드 시카고(Chicago)의 명곡 'How to Say I’m Sorry'의 가사 중 처음 시작하는 부분은 연인들의 관계에서도 각자의 독립된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Everybody needs a little time away / I heard her say /from each other / Even lover’s need a holiday / far away from each other.
이 노래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연인 간에도 서로의 사생활이 존중되어야 한다. 이런 원칙은 부부 간에도 지켜져야 한다. 사람에 대한 집착을 '관계중독'이라고도 하는데, 그런 심리는 타인은 물론 자신의 삶도 파국으로 이끌 수 있다.mind
서경현 삼육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 상담심리 Ph.D.
현재 삼육대 상담심리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건강심리학회장을 역임한 글쓴이는 데이트 폭력 외에도 건강심리나 중독심리를 연구하고 긍정심리를 주제로 강연하며 주위사람들이 앞으로 더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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