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 삶의 심리학 mind Jul 19. 2019

그를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고선규 마인드 웍스 대표

임상심리전문가그룹 마인드웍스 대표이자 고려대학교 KU마음건강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중인 임상심리학자이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애도가 관심 분야이며 자살 사별자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와 상담을 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아름다운 것을 탐미하며 그 속에서 심리학적 이야기를 관찰하고 나누고자 한다.

한 정치인의 부고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은 이런저런 가설들을 늘어놓는다. 한 개인이 내린 비극적 결정,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감으로 오랜 시간 힘들어할 지인들이 있다. 우리가 조금 더 절제하고, 조금 더 조심스러워야 할 이유다.


2019년 7월 16일 화요일 오후 6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한 정치인의 이름을 확인했다. 곧 동료들이 있는 단톡방에 그의 기사 링크가 걸린다. 누군가는 정치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망가뜨리는지를 말하고, 누군가는 외모와 패션센스, 가수 데뷔, 일식당 창업 등 그의 행보에서 드러나는 그의 성격 특질을 분석한다. 누군가는 그를 치료했을 주치의를, 누군가는 마지막 방송을 한 제작진이 받았을 충격을, 누군가는 남겨진 가족을 염려한다. 몇 분 동안 한두 마디씩 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보탰다가, 금방 다른 주제로 전환된다. 단톡방의 짧은 대화가 끝나고, 나는 포털 뉴스와 SNS를 넘나들며 그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고 죽기 전 그의 행적과 말을 추적했다.


구스타프 쿠르베Gustav Courbet, 1819~1877. '오르낭의 장례식'. 1849~50. 캔버스에 오일. 315 × 660 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2019년 7월 17일 수요일 오전 10시.


그의 마지막 방송이었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다음과 같이 멘트를 한다.


매일 실시간 검색어를 훑어 드리는데 어제 저희 프로그램을 들으신 방송 들어오실 때부터 방송 끝나고 나가실 때까지 평소와 다른 점을 못 느꼈습니다. 시작하기 10분 전에 오셔서 원고 보시고 방송도 잘하셨고, 인사하고 악수도 나누고 가셨는데. 어쩌면 저랑 했던 악수가 이 세상 마지막 악수였던 것 같습니다.... 어제는 유독 아주 화사하게 고운 연분홍 옷을 입고 오셔서 덕담을 드렸더니 살짝 웃고 마셨는데. 일부러 그 옷을 고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생전에 남긴 발자취가 저희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에서 저도 가슴이 무겁습니다..... 아무쪼록 편안하게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2019년 7월 17일 수요일 오후 5시.


자살 사별자 자조모임 리더인 심명빈님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뉴스 보셨죠?” 2014년 12월 1일 남편을 자살로 잃은 분이다. 유명인의 자살이 보도될 때마다 반복된 질문에 대한 반복된 대답. “진짜 자살하기 전에 경고 신호를 알 수 있을까요? 전 정말 몰랐어요”, “죽고 싶은 사람한테는 직접적으로 물어보라고 하던데, 당신 자살하고 싶어? 이렇게 제가 물어봤어야 했나요. 다시 돌아가도 전 그렇게 못 물어봤을 것 같아요”


2019년 7월 18일 목요일 오후 6시.


어제까지 검색어에서 내려오지 못했던 그의 이름은 사라졌다. 유족들의 뜻에 따라 부검은 하지 않겠다는 짧은 뉴스와 그의 이름과 함께 조회수를 늘려 보려는 질 낮은 기사들이 보인다.


갑작스럽고 예측하지 못했던 죽음으로 인한 사별을 외상적 사별이라 한다. 외상적 사별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이 그 사람의 죽음 이전과 이후로 완전히 분리되는 경험을 하는데 이것은 B.C.(before the crisis)와 A.D.(after the death of someone you love)로 표현될 수 있을 정도다. 대중들은 더 이상 그의 이름을 검색하고 기사를 찾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머릿속 한 가득 그의 이름이, 그의 마지막 말이, 그의 마지막 행동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 각인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고통에 위로와 공감이 닿기는 쉽지 않다. 


공감은 그저 "정말 힘드시겠어요, '"하는 말을 꼬박꼬박 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난을 빛 속으로 끌어와 눈에 보이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공감하려면 당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감은 자기 시야 너머로 끝없이 뻗어간 맥락의 지평선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 레슬리 제이미슨, 『공감 연습』


우리의 가벼운 입을 닫자


그와 가까운 사람들이 충분히, 아주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가만히 있자. 지금은 그럴 때다. 왜라는 질문은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우리보다 그의 가족이, 그와 가까운 사람들이 평생 스스로에게 던질 것이다. 그 고통을 감히 우리는 알지 못한다. 위키피디아식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이랬다, 저랬다 평하지 말자. 가까운 사람들이 그와의 관계에서 나눴던 아주 사소한 경험까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장례식장에서 가장 위로가 됐던 순간은 “어떡해 어떡해”만 되뇌며 울던 사람이었다는 내담자의 말이 떠오른다. 갑자기 닥친 이 죽음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대신 말해 주는 것 같아 얼싸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일상이었던 그가 갑자기 사라진,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막막함을 느낄 사람들이 있다. 빨리 잊으라고, 회복하라고 채근하지 말자. 그것이 애도의 고통 속에 있을 사별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다. mind


고선규 mindworks 대표 | 임상심리 Ph.D. 

임상심리전문가그룹 마인드웍스 대표이자 고려대 KU마음건강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중인 임상심리학자이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애도가 관심 분야이며 자살 사별자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와 상담을 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아름다운 것을 탐미하며 그 속에서 심리학적 이야기를 관찰하고 나누고자 한다.



>> 한국인을 위한 심리학 잡지, <내 삶의 심리학 mind> 온라인 사이트가 2019년 7월 8일 오픈하였습니다. 내 삶의 비밀을 밝혀줄 '심리학의 세계'가 열립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50명의 심리학자와 함께 합니다.

카카오톡에서 '심리학mind' 친구 추가하고, 매일 아침 내 마음의 비밀을 풀어 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매력의 비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