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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삶의 심리학 mind Jul 25. 2019

디멘터와 맞서 싸우는 법

이종선 강원대 심리학과 교수

이종선 강원대 심리학과 교수
사람에 따라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법이 다르다고 한다. 우울한 사람들은 장밋빛 미래를 잘 꿈꾸지 못한다는 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종선 교수가 해리포터를 소재로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공한다.


디멘터를 아는가?


해리포터(Harry Potter)의 작가로 유명해진 조앤 롤링(Joan K. Rowling)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죽어버린 감정  즉 심한 우울을 경험한 과거를 회상하며,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디멘터(Dementor)를 떠올렸다. 해리포터 속 디멘터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긍정적 정서를 모두 다 빨아들이고 최악의 기억들만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해리포터는 이런 디멘터를 죽이기 위해 밤낮으로 페트로 누스(Patronus) 마법을 연마한다. 디멘터에 맞설 페트로 누스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법 방어술 외 두 가지를 더 갖추어야 한다. 즉 '디멘터 앞에 설 용기' 그리고 '디멘터와 맞서 싸울 행복한 기억'이다. 롤링은 자신이 이 디멘터에 맞서 싸우기 위해 미래에 대한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고, 결국 성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해리포터에서 등장하는 디멘터는 '우울'을 상징한다. 디멘터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최악의 기억들을 불러일으킨다. 디멘터가 등장할 때마다 해리는 엄마가 볼드 모어에게 살해당할 때의 비명소리를 듣게 된다. 이때 해리가 디멘터에 맞서기 위해 하는 일은 부모와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다.


우울한 사람들의 미래


일반 사람들에 비해 우울한 사람들은 장밋빛 미래가 본인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우울한 사람들은 장밋빛 미래는커녕 미래 자체를 떠올리기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다. 우울한 사람들이 미래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이들의 미래 자살행동과도 관련이 있다. 우울한 사람들은 왜 건강한 사람만큼 미래를 그리지 못할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모딜리아니가 죽자, 이틀 뒤 그의 아내 에뷔테른도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에뷔테른 임신 8개월째였다.  상실의 고통 속에 의미없는 삶을 살기보다 천국에서 그의 모델이 되기로 했다

맥로드(MacLeod)와 동료들은 우울한 사람들, 불안한 사람들 그리고 건강한 사람들에게 하루 뒤, 한 달 뒤, 일 년 뒤, 십 년 뒤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상상하도록 했다.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긍정적 사건과 부정적 사건을 각기 얼마나 상상했는지 살펴보았다.


예상했던 바대로 우울한 사람들은 건강하거나 불안한 사람들과 달리 미래에 일어날 일을 거의 상상해내지 못했다. 반면 불안한 사람들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상상할 수는 있었지만, 사고나 위험에 처하게 될 미래를 그렸다.


비슷하게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우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만한 짤막한 스토리를 들려주고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상상해보라고 요청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본인에게 일어난 일인 것처럼 상상해달라고도 했다. 가령;


당신은 오늘 애인과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약속 장소에 와 있고, 레스토랑 앞에서 메뉴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애인과 만나기로 했던 약속시간이 15분이 지났는데, 애인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러 생각이 머리에 맴도는 순간 핸드폰이 울립니다.
전화를 받자, 애인은…………………….'


동일한 이야기를 듣고 우울한 사람, 불안한 사람, 그리고 건강한 사람은 각기 다른 답변을 말한다. 이들의 마음속에 맴도는 답변은 매우 자동적이다. 우울한 사람들은 거절을 예상하는, 불안한 사람들은 사건, 사고와 관련된, 그리고 건강한 사람들은 기쁨 또는 안도감과 관련된 답변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자 그다음 장면을 상상해 주시겠어요?  
……. 글쎄요. 음……...'


우울한 사람들은 그다음 장면을 상상하는 이야기를 만들지 못한다. 왜 그럴까?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잠시 우울한 사람들의 과거에 대한 기억들은 어떤지 살펴보자. 우울한 사람들에게 과거 기억나는 장면이나 사건을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첫째 긍정적 기억보다는 부정적인 기억들을 더 쉽게 떠올린다. 둘째, 구체적인 내용들을 떠올리지 못한다. 이를 과일반화된 기억이라고 한다. 과거에 대해 구체적인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을 하지 못하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다. 그렇다면 다시 의문이 생긴다.


우울한 사람들은 왜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을 긍정적인 기억보다 더 쉽게 떠올리게 되는 걸까? 물론 그들에게 부정적인 기억이 더 많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사람들은 긍정적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다. 그런데 우울한 사람들은 부정적인 기억은 쉽게 떠올리면서 긍정적인 기억은 잘 떠올리지 못한다. 이는 그들의 기억이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건강한 일반인들에 비해 과거를 회상할 때 부정적인 기억에 더 쉽게 접근이 가능한 자동적인 정보처리 모드를 가지고 있다.


앞서 애인과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애인이 나타나지 않다가 전화벨이 울렸을 때 우울한, 불안한, 건강한 사람들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전화 내용에 대해 예상하는 바가 각기 다르고 그 반응이 자동적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즉 어린 시절부터의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세상에 대해, 미래에 대해 기대하는 저장된 정보처리 방식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동화되어 처리되고 있다는 뜻이다.


나쁜 기억을 구체화하지 못하는 이유 


부정적인 기억에 접근할 때 그 기억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게 되면 심리적 고통감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런 심리적인 고통감을 피하기 위해 우울한 사람들은 모호하게만 그 장면을 떠올려야 한다. 멀리서 일어난 일인 양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것은 우울한 사람들의 자기 보호 기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패턴은 그 사람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고통스럽고 어두웠던 사건들의 기억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고 처리되지 않은 채 마음 한편에 남아 세상을 바라보고 타인을 바라보며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거리를 두고 회상하는 방식은 긍정적 사건에도 적용이 된다. 우울한 사람들에게 긍정적 사건을 떠올리게 하면 그들은 제 3자의 관찰자 입장으로 거리를 두고 떠올린다. 그렇다면 우울한 사람들에게 왜 이런 기제가 작동하는 것일까?


그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신경심리학자인 샤롯(Sharot)교수는 미래 기억과 관련된  뇌영역이 어디인지 궁금증을 가지고 연구를 한 적이 있다. 건강한 일반인들을 데려다가 과거와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며 뇌스캔을 해보았다. 결과, 과거를 떠올리는 기억 장소와 미래를 떠올리는 장소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 희망스러운 미래를 그리지 못하는 것과 관련된 특정 영역이 탐색되었는데, 그곳은 바로 행복 기분을 관장하는 곳으로 알려진 문측전방대상피질(RACC; rostal anterior cingulate cortex)이다. 이 영역은 우리의 정서를 관장하는 편도체(Amygdala)와 연결된 곳이기도 하다. 우울한 사람들이 긍정적 미래를 그리지 못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우울한 사람  뇌의 문측전방대상피질과 편도체로 이어지는 통로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추측하고 있다.


우리 뇌의 문측전방대상피질과 편도체 간 연결을 일반인들과 동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디멘터를 흡수할 페트로 누스 마법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디멘터에 맞설 용기 그리고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울한 사람들이 디멘터에 용감히 맞서고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돕는 방법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고민하며 연구 중이다.  mind


이종선 강원대 심리학과 교수 | 임상심리 Ph.D.

임상심리학자로 강원대 심리학과에 재직 중이다. 영국 King’s College London, Institute of Psychiatry, Psychology & Neuroscience에서 컴퓨터 기반 인지 편향 수정 프로그램 효과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우울, 불안 및 외상 관련 실험 기반 심리치료 프로그램의 효과 검증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한국임상심리학회 편집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총무이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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