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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삶의 심리학 mind Jul 26. 2019

빨간 사과는 본질적으로 빨갛지 않다

조수현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조수현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우리 눈에 사과가 빨갛게 보이는 것은 사과가 본래 빨갛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뇌가 작용하여 그렇게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만약 사과가 본래 빨갛다면 강아지의 눈에도 빨갛게 보여야 하지만 실제로는 노랗게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감각 경험은 뇌 작용의 산물


눈 앞에 빨간 사과가 있습니다. 사과는 분명 빨갛게 보입니다. 강아지의 눈에도 빨간 사과가 보일까요? 아닙니다. 강아지의 눈에는 노란 사과가 보입니다. 빨강 혹은 노랑 등의 색상은 사과의 내재적인 본질이 아닙니다. 보는 이의 뇌가 사과로부터 반사된 빛의 파장을 해석하여 특정한 색채 경험이 만들어집니다.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 '4개의 사과'. 1881. 캔버스에 오일. 개인소장.

색채 경험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듣는 모든 소리 역시 우리 귀 속에 전달된 에너지를 우리 뇌가 탐지하고 특정한 청각 경험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피부로 느낀 모든 감각적 경험은 우리의 뇌가 외부로부터의 물리적인 에너지 자극을 탐지하고 해석한 결과로 창조된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적 경험은 우리 감각 기관에 전달하는 에너지를 탐지하는 세포의 활동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러한 세포들을 수용기(receptor)라고 부릅니다.


뇌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처리


망막에는 빛을 탐지하는 광수용기(photoreceptor)가 있습니다. 광수용기 세포들은 특정 범위 내의 파장을 가진 빛 에너지만을 탐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빛 에너지를 가시광선(visible light)이라고 합니다. 광수용기가 탐지하지 못하는 파장 범위의 에너지는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합니다. X 선, 적외선, 자외선 등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광수용기 세포들이 이러한 에너지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달팽이관 속의 청각 수용기가 탐지하지 못하는 에너지는 듣지 못합니다. 동물의 종(species)마다 청각 수용기가 반응하는 에너지 파장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에너지의 범위도 다릅니다. 강아지들은 인간이 듣지 못하는 고주파수의 에너지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하여 사람은 듣지 못하지만, 강아지는 들을 수 있는 고주파수의 소리를 발생시키는 ‘개 호루라기(dog whistle)’가 훈련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감각 기관의 수용기 세포가 탐지한 에너지는 세포 활동에 의해 전기, 화학적 신호로 변환되어 뇌에 전달됩니다. 세포와 세포 간의 정보 전달을 통해 대뇌 피질에 전달된 에너지는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되어 감각 경험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우리의 시지각 경험은 감각 기관으로부터 대뇌 피질로 전달되는 상향식(bottom up) 정보 처리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정보 처리 위계 상 더 상위에 있는 대뇌 피질이 감각 기관으로부터 전달받은 정보를 보충, 변형하여 시지각 경험이 재구성되기도 합니다.


맹점이 문제 되지 않는 이유


예를 들어, 우리의 두 눈의 망막 안쪽에는 구멍이 하나씩 있습니다. 이 구멍은 우리 눈에 혈관이 들어오는 입구이며, 시신경이 눈을 빠져나가는 출구이기도 합니다. 망막의 구멍 난 부위에는 광수용기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곳에는 빛이 도달하더라도 탐지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 부위를 맹점(blind spot)이라 부릅니다. 분명 우리 눈에는 맹점이 있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시각장(visual field)에는 구멍 난 곳이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것은 우리 뇌가 망막으로부터 전달받은 감각 정보의 불완전함을 보충하여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각 눈의 맹점으로부터 전달받지 못한 정보는 다른 눈으로부터 전달받은 정보를 이용하여 재구성됩니다. 따라서 두 눈을 사용할 때는 맹점으로 인한 시각 정보의 손실을 경험하지 못하지만, 한쪽 눈을 감으면 맹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음 그림을 보면서 맹점을 경험해봅시다.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으로 점을 응시하세요. 그리고, 지면과 얼굴 간의 거리를 대략 25-30 센티미터 정도로 하여 조금 더 가깝게 혹은 멀게 거리를 조절해보세요. 거리를 잘 맞추면, 오만 원 지폐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때 오만 원 지폐로부터의 빛이 오른쪽 눈의 맹점에 맺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주변 환경으로부터의 자극들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뇌가 만들어낸 심리적 현실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mind


조수현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 인지 신경과학 Ph.D.

UCLA 심리학과에서 추론과 문제 해결 등 고등 인지의 뇌기전을 연구하였으며, 인지 신경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Stanford University 의과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3년간 아동의 수학적 문제 해결 능력과 관련한 뇌의 발달적 변화를 연구하였다.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 중이며 수학적 인지, 고등 인지, 의사 결정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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