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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삶의 심리학 mind Jul 27. 2019

아이들의 범죄피해 진술, 얼마나 정확한가

이승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이승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아동 관련 사건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진술이 중요해지고 있다. 문제는 아동들의 진술이 얼마나 정확한가 하는 것이다. 아동들의 특성상 조사자의 강요에 취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출처의 혼동으로 잘못 기억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한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강간, 학대, 강제추행 등의 끔찍한 범죄가 나날이 증가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이에 성폭력 피해 아동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아동 성폭력 전담 기구의 설립이 추진되었고 2004년 '해바라기아동센터'가 전국적으로 문을 열었다. 이 센터에서는 사건 발생 시 아동 상담에서부터 의료 지원, 사건 조사, 소송을 위한 법률 지원 등 아동 피해 사건에 대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성폭력 특별법으로 비디오 진술 녹화 제도를 도입해 기존의 형사 절차에 비해 피해 아동의 정신 건강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수사 면담의 횟수를 최소화하고 있다(성폭력 특별법 제21조 2). 그러나 이와 같은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단 절차적인 요인도 중요하겠지만 수사 면담의 환경적 특성과 아동의 기억 특성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이탈리아 극작가 카를로 콜로디의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 중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 이 그림은 초판에 실렸던 삽화로 엔리코 마짠티의 작품이다.

말을 바꾼 아이들


30여 년 전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이든턴 지역(The "Little Rascals" ritual abuse case in Edenton, NC, 1989)에 있는 아동보호센터에서 아동 성학대 사건이 신고되었다. 당시 경찰관들은 이 센터에 소속된 90명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사건 발생 여부에 대해 수차례의 수사 면담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최초 면담에서 많은 아동들이 성학대 피해 사실을 동의하지 않았지만, 수사가 진행된 10개월 후에는 모든 아동들이 피해 사실에 동의하였다. 이후 그 당시 시행된 수사 면담의 질문 방식이나 수사관들의 태도 등에 대한 기록들이 일부 외부에 공개되면서, 경찰관들의 그릇된 면담 행태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었다.


일례로 경찰관들은 면담 과정에서 아동에게 반복적이고 암시적인 질문들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아저씨는 경찰이고 경찰관은 거짓말을 하는 나쁜 아이들을 얼마든지 혼낼 수 있어’와 같은 위협적인 표현들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아동은 자신의 사건 기억과는 무관하게 경찰관의 권위나 상황적인 압력에 굴복하여 경찰관의 기대나 특정 방향의 주장에 순응하였던 것이다. 또한 경찰관들은 면담 과정에서 기소된 혐의자들을 ‘나쁜 사람’, ‘무서운 사람’이라는 편견을 아동에게 반복적으로 주입했다. 또한 ‘너를 제외한 모든 친구들이 나(경찰관)의 의견에 동의했다’는 거짓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또래 압력을 이용하여 아동의 동의를 유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성학대 피해 사실을 인정하면 아동이 좋아하는 사탕이나 인형을 주겠다는 유혹을 한 경찰관도 있었다. 비록 국외에서 발생한 오래전 사건이고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 수사 면담의 올바른 방식, 아동 진술의 신뢰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Ceci & Bruck, 1996).


과거 경험에 대한 아동의 진술 특성과 관련하여 국내외서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어린 아동의 경우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적이 없는 즉 발생하지 않은 일에 대해 얼마나 생생하고 구체적인 진술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알아본 흥미로운 실험 연구가 진행되었다.  2006년 한 연구진이 실시한 만 3~5세 아동 75명을 대상으로 유치원에서 있은 마술사의 실수를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었다(Principe, Ceci, & Singh, 2006).


사라진 토끼에 대한 기억


우선 아동의 유치원에 한 마술사가 등장해서 계획한 대로 다양한 마술들을 보여주었다. 아동들이 좋아할 법한 모자 안에서 토끼가 튀어나오는 전형적인 마술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마술사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토끼가 튀어나오지 않는 모습을 아동이 관찰하게 했다. 이에 마술사가 당황하는 모습을 아동은 목격하고, 이후 아동들은 아래와 같은 우연을 가장한 어른들의 대화를 직접 혹은 또래 반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듣게 하였다.


성인: 메직 멈프리(마술사 이름)가 그 마술쇼에서 실수를 했다면서요. 모자에서 토끼가 나오지 않았다고.
선생님: 네, 맞아요. 마술사가 모자 안에 손을 넣었는데, 세상에 토끼가 거기 없었던 거 있죠.
성인: 음. 제가 듣기로는 토끼가 달아나서 00 이네 교실에서 당근을 먹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실험의 시나리오상 유치원에 있는 그 어떤 아이도 토끼를 직접 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2주 후 기억 면담에서 꽤 많은 아동들이 자신이 토끼를 직접 본 것처럼 보고하였다. 어떤 경로를 통해 특정 정보 (예: 토끼가 마술사 모자에서 이미 달아나서 다른 교실에서 당근을 먹고 있었다는 내용)를 알게 되었는가 와도 무관했다. 단순히 토끼를 보았다는 진술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토끼가 어떤 색깔이었는지 혹은 무엇을 먹고 있었는지, 그리고 어디로 도망가고 있었는지 등에 대해 자발적으로 서술하는 아동도 있었다.


예를 들어 면담자가 ‘토끼는 어떻게 생겼었어?’라고 암시적인 질문을 던질 경우, 검은색, 흰색, 분홍색 등 자신이 알고 있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말하기도 했다. 면담자가 ‘토끼를 네가 직접 쓰다듬었어?’와 같은 질문을 하면, "쓰다듬어 주려고 했는데 나에게서 도망갔어요. 토끼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어요."라고 응답하거나 "토끼가 목이 말라서 연못으로 뛰어가는 걸 봤어요."라고 응답하는 아동도 있었다.


이처럼 아동은 직접 경험하거나 혹은 목격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자발적으로 거짓 진술을 할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거짓 진술은 아동이 누군가를 해하거나 벌을 주려는 의도에서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동은 단지 이전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나 텔레비전을 통해 알게 된 사실, 혹은 동화책에서 읽은 이야기들을 본인이 직접 목격하거나 경험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보지 않았지만 자신이 토끼를 보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그 믿음에 해당되는 내용들을 기억의 형태로 인출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감찰의 오류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정보들 간의 출처에 대한 오기억을 '출처 감찰의 오류'(source monitoring error)라고 일컫는다. 물론 성인도 자신이 경험한 사실과 간접적으로 들은 사실에 대해 혼동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아동은 기억 발달의 한계상 성인보다 출처 감찰의 오류에 더 취약하다. 또한 모순되게도 상상력이 뛰어나거나 어휘력이 풍부한 아동의 경우 자발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거나 창조해 내면서 거짓 진술의 양도 풍부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직접 경험해서 알게 된 사실과 간접적인 경로(예: 독서, 지인과의 대화, 매체 등)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들 간의 출처를 명확히 구별하는 능력은 크게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범죄 사건이 발생했고, 그 사건에서 발생한 일에 대한 정확한 진술을 요구하는 수사 면담에서는 내가 직접 체험한 사실과 전해 들은 사실, 혹은 단순히 목격한 것에 지나지 않는 사실들을 구별하는 능력은 사법적 판결에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사건 발생 후 즉시 수사 면담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공식적인 수사 면담이 시행되기까지 꽤 긴 지연 기간이 발생하고 이 기간 동안 아동이 어떤 오정보를, 어떻게 마주하는 가에 따라 아동의 사건 기억은 다르게 형성될 수 있다.


따라서 피해 아동을 대상으로 수사 면담을 실시하는 전문가는 아동의 인지발달적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 암시적인 질문을 하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아동은 거짓말을 하고자 하는 특별한 의도 없이도 출처 감찰의 오류로 인해 꽤나 구체적이고 생생한 거짓 진술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유념해야 한다. mind


<참고문헌>  

Ceci, S. J. & Bruck, M. (1996). "Jeopardy in the courtroom". pp. 9–11.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Washington,DC. ISBN 1-55798-282-1.

Principe, G.F., Kanaya, T., Ceci, S. J., & Singh, M. (2006). "Believing is seeing: how rumors can engender false memories in preschoolers." Psychological Science, 17(3), 243-248.


이승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서울대에서 심리학 석사를, 미국 University of North Carolina–Chapel Hill 에서 발달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심리학과 관련된 교양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아동 기억의 발달적 특성을 토대로 아동 증언의 신뢰성과 관련된 연구들을 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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