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주 서울여대 심리치료학과 교수
게임중독에 대한 염려가 많지만 그렇다고 약물중독과 같은 것은 아니다. 게임은 수동적 경기에서 능동적 상호성과 주체성을 경험하는 새로운 삶의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다.
얼마 전 증강현실 게임을 통해 게임 세계와 현실 세계가 혼재되면서 주인공이 비극적인(적어도 본 저자에게는 매우 비극적이었음!) 결말을 맞이하는 드라마를 흥미롭게 시청하였다. 화려한 CG를 통해 구현된 증강현실 게임을 보면서 드라마에서 보여준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의 혼재 혹은 뒤바뀜이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화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1999년에 우리는 워쇼스키(Wachowski) 형제의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 유사한 상상을 경험한 바 있다.
최근 WHO에서 게임중독을 정신장애로 규정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게임 업계에서 많은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2013년 발표된 DSM-5에서 ‘Internet Gaming Disorder’가 추후 연구가 필요한 장애로 분류된 것에 비해 보다 강력한 결정을 WHO가 내린 것이다.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게임중독은 통제 결여와 관련된 장애보다는 약물 중독에 더 가까운 장애이다. 그렇다면 중독 수준의 게임 몰입은 알코올이나 기타 약물 중독과 같은 치료 접근을 통해 개선되는 장애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게임의 전통적 정의
게임 중독은 현대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한 가지 임에는 틀림없지만 ‘게임’이라는 매체는 알코올, 담배와 마약과는 매우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 게임이라는 개념은 과거에 그리고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확장성을 가진 포괄적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실상 “게임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일치된 정의는 없는 상태이다. 위키백과 등에서 통상 사용되는 정의로는 2명 이상의 참가자들이 일정의 규칙에 따라 특정 목표를 얻고자 경쟁하는 활동으로 정리할 수 있다(Wikipedia. "Game,” 2019).
여기서는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게임 용어는 일단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로제 카이와(Roger Cailois)는 그의 저서 『놀이와 인간』(les jeux et les hommes)에서 게임은 재미가 있어야 하고,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어야 하며, 예측불가성과 비생산성의 속성 및 규칙의 지배와 허구(현실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의 요소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Cailois, 1957).
카이와의 정의를 기반해서 알코올과 게임을 단순 비교해 보면 알코올 섭취는 재미와 비생산성 요소는 게임과 공유하나 시간과 공간의 분리, 예측불가성, 규칙의 지배와 허구 요소는 게임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지는 않아 보인다. 오히려 게임의 여러 측면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구조 및 관계 양상과 보다 많이 닮아 있다.
현대 사회의 게임은 과거 텔레비전이나 영화와 큰 차이점을 가진다. 먼저 과거 매체와 현대 매체가 사용자에게 허용하는 활동 수준 자체가 다르다. 텔레비전과 영화와 같은 과거 매체에서 인간은 이미 주어진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객체이며 원하는 상황에서 언제든지 심리적 부담 없이 접속을 차단할 수 있었다.
RPG, 능동적 상호작용의 경험
그러나 게임, 특히 RPG(Role Playing Game)에서 인간은 정해진 틀에 들어가 있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고 상대를 만나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능동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창조해 내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상호성이라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최근 출시된 많은 RPG 게임들은 하나의 결말을 향해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결말 자체가 달라지도록 처음부터 설계되어 있다.
뮤리얼과 크로포드는 독일, 스웨덴, 룩셈부르크와 영국의 28명 참가자에 대한 심도 있는 면담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비디오 게임의 경험과 문화 관련성 등을 분석함과 동시에 현실 사회와 유사한 과정을 경험하는 비디오 게임을 통해서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였다(Murial &Crawford,2018).
최근 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인해 게임은 보다 더 현실과 닮게 되었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게임을 통해 현재의 삶이 아닌 또 다른 삶을 살 기회를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게임 속의 행동과 실제 현실 행동은 얼마만큼의 유사성을 가지는가? 비교적 최근 연구로 버니안, 케노사, 콜빈과 엘-나스르는 자신들이 개발한 Virtual personality assessment lab이라는 게임에서 얻은 행동 로그 자료를 바탕으로 Hidden Markov Model을 이용해서 성격 5요인을 예측해 보려고 하였다. 결과를 보면 게임행동을 통해 성격 5요인에 해당하는 외향성, 개방성, 성실성, 친화성과 신경성이 높게 나타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54.1~59.1% 수준에서 정확하게 구분하였다(Bunian,, Canossa,, Colvin & El-Nasr, 2017).
게임 속 행동과 현실의 유사성
실제 심리학 연구 기준으로 볼 때, 현재 변별률은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이다. 실제 이 연구의 의미는 가상현실 기법을 사용한 성격평가 게임이 현재 성격유형을 얼마나 잘 변별할 수 있는가를 시도하였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통상 표준화된 공간에서 표준화된 절차에 의해 시행되는 평가가 가장 믿을만하고 타당하다고 간주한다. 하지만 이러한 타당성과 신뢰성이 입증된 평가 결과가 실제 인간 행동을 얼마나 잘 예측하는지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모순에 빠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심리치료 영역에서도 유사하다. 심리치료 효과를 검증하여 근거가 있는 심리치료 기법들을 제시하기 위해 최근 10~20여 년 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으나 이제는 그렇게 검증된 근거기반 심리치료 프로그램들이 실제 현장에 효과적으로 적용될 것인지에 대해 고심한다. 게임행동을 통해 성격을 평가한다는 것은 게임행동과 실제 행동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게임에서의 인지능력
최근 저자의 연구에서도 게임에서 보인 인지능력은 표준화된 검사에서 측정한 인지능력과 매우 높은 관련성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보다 흥미로운 것은 게임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생태학적 행동(자신의 성취를 중간중간 자주 확인하는 행동이나 게임 중간에 그만두는 행동 등)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이러한 생태학적 행동은 스스로 보고하는 자기 조절의 어려움 결과와 정적인 관련성을 보였으나 표준화된 검사에서 측정한 인지능력과는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는 않았다. 학교 다닐 때 보면 시험 전에 불안해하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막상 시험은 잘 치르는 학생들이 있다. 통상 이런 친구는 음흉스럽다고 주변 친구들의 미움을 받게 된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 친구가 경험하는 시험 전 불안은 음흉이나 가식이 아니고 주관적 현실이었을 것이다. 심리평가와 치료 영역에 국한하여 볼 때 이제 우리는 게임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과거에는 제한이 있었던 개인의 주관적 현실과 경험을 객관적 지표와 더불어 포괄적으로 평가하여 생태학적 타당도가 높은 평가 및 치료 방법을 제시할 수 있게 된 것일 수 있다.
이제 삶의 플랫폼으로
정리하면, 저자를 비롯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재까지 게임을 오락의 한 형태로 보는 협의의 개념으로 이해해 왔지만 기술혁명 시대와 더불어 게임은 우리 삶의 플랫폼이 되는 광의의 개념으로 자리매김해 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이러한 새로운 관점으로 게임과 관련된 산업 및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이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는데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심리평가와 심리치료 영역에서 최신 기술을 이용한 게임 플랫폼은 오랜동안 임상심리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순환적 모순을 해결할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mind
<참고문헌>
Bunian, S., Canossa, A., Colvin, R.C., & El-Nasr, M.S. (2017). Modeling Individual Differences in Game Behavior using HMM.?AIIDE.
Cailois, Roger (1957). Les jeux et les hommes. Gallimard.
Muriel, D., & Crawford, G. (2018). Video games and agency in contemporary society. Games and Culture, 1555412017750448.
Wikipedia contributors. (2019, June 8). Game. In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Retrieved 02:10, June 19, 2019, from https://en.wikipedia.org/w/index.php?title=Game&oldid=900969614
송현주 서울여대 심리치료학과 교수 | 임상심리 Ph.D.
임상심리학 주제 중 조현병 환자의 회귀억제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하고 gamification을 활용한 조현병 위험집단에 대한 인지재활치료로 박사후 과정을 하였다. 현재 서울여대 심리치료학과(특수치료 전문대학원)에 재직하고 있다. 임상심리학에 중심을 두고 신경과학을 융합하는 연구에 주요 관심을 두고 있으며 주의력, 실행기능, 인지 조절력과 정신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정신장애의 조기진단과 치료적 책략을 개발하고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를 수행해 왔다. 최근에는 앱 기반 아동 청소년 대상 일차 심리평가 게임 '코콘'을 개발하였고 가상현실을 활용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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