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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삶의 심리학 mind Aug 07. 2019

지난밤, 잠은 어떻게 잘 주무셨나요?

현주석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수면의 질과 우울한 심리상태는 작업기억에 어떤 영향을 줄까. 최근 연구에서는 인지적 정보처리과정에서 작용하는 작업기억에 이러한 요소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Henri Rousseau(1844~1910). The Sleeping Gypsy(1897. 129.5*200.7cm). MoMA.

서양인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에게 제일 먼저 건네는 아침 인사가 “좋은 아침이네요!”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안녕히 주무셨어요?”라 묻는다. 아침 인사가 이 정도인 만큼 한국인의 수면의 양과 질에 대한 관심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대단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아마도 서양에서는 밤 사이 잠을 설칠만한 특별한 일이 없었던 이상 편안한 수면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반면, 한국 사람들에게는 과거로부터 편안한 잠을 청하고 깨는 것이 그동안 많이 어려웠던 듯싶다.


이토록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수면과 몇 가지 심리적 요인 사이의 관련성을 조사한 흥미로운 연구가 올해 발표되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리버사이드 분교의 심리학 연구진들은 인간 정신현상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작업기억과 수면, 나이 및 우울 성향 사이의 분명한 관련성을 보고했다. 특히 개인의 수면, 나이 및 우울 성향 등이 개인의 작업기억 수행에 있어서 양적, 질적 측면에 상이한 영향을 초래할 가능성을 발견했다.


작업기억Working memory은 인간의 인지적 정보처리 과정 중 학습, 추리, 이해 등의 과정에 필요한 정보를 일시적으로 저장하고 관리하는 단기 저장소이다. 작업기억은 특히 지능, 창의적 문제 해결, 언어, 행동에 대한 계획 및 통제를 담당하는 고등 인지 기능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고 사용하고 기억하는 데 있어서 작업기억 개입은 필수적인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번 연구는 먼저 참가자의 연령이 작업기억 능력 의 '질적' 측면, 즉 기억 선명도와 정반대의 관계성을 가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참가자의 나이가 많을수록 회상된 정보의 선명도가 낮아져 기억된 정보의 의 명확성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수면의 질과 정서적 우울은 이전에 경험했던 사건을 얼마나 많이 저장하고 회상해 낼 수 있는지의 여부 즉 작업 기억의 '양적' 측면과 큰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수면의 질이 나쁠수록 그리고 정서적으로 우울할수록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회상 가능한 정보의 양 자체가 상대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연구는 수면, 나이, 우울 등의 세 가지 요인 각각이 작업기억 수행의 질적, 양적 측면에 각각 독립적인 영향을 주기보다는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상호작용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노인들의 수면의 질은 상대적으로 청장년층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크며 결과적으로 피로감에 의한 부정적인 정서의 빈번한 촉발로 인해 우울감이 초래될 가능성 또한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노인들은 작업 기억 수행의 모든 측면에서 청장년 개인에 비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사실 기존의 유사한 주제를 다룬 연구들은 연구자가 임의 선택한 요인들 외에 다른 요인들의 개입이 없을 것을 가정하고, 선택된 해당 요인과 작업 기억의 수행 지표와의 관련성을 조사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두 요인들 사이에 밀접한 관련성이 발견된 경우, 실제로는 드러나지 않는 제3 요인의 개입 가능성을 배제하기가 항상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수면, 나이, 우울과 같은 세 가지 요인이 작업 기억의 양적, 질적 측면에 미치는 복합적인 영향력을 통계적으로 분리해 비교적 명확하게 설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이 연구가 중요한 것은 이론적 시사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실용적인 시사점 때문이다. 즉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여겨졌던 노년기의 지적 능력의 감퇴를 지연시키는 데 있어서 수면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부여한 것이다. 더 나아가 기억력 저하의 극단적 형태인 치매의 예방과 치료에 있어서 적어도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심리적 요인들 중 일부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도 역시 중요하다.


아마도 머지않은 미래에는 “안녕히 주무셨어요?”라는 인사보다는 서양처럼 “좋은 아침이네요!”라는 인사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모두가 시간을 맞춰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야 하는 요즘 같이 첨단화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찌 보면 제시간에 자고 충분한 숙면을 취한 뒤 정해진 시간에 다음 날을 시작하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양질의 수면을 보장할 수 있는 좀 더 너그럽고 풍요로운 대한민국 사회가 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mind


현주석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 인지심리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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