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경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토요일은 휴일이 아니어서 출근을 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일을 하러 출근하기보다는 오전에 급하지 않은 회의나 잔무 처리를 하고, 점심식사를 마치면 책상정리를 하고 난 후, 2시 전후에 퇴근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초가을의 어느 토요일로 기억되는데 동료 5명과 같이 점심을 먹고나서, 빨리 집에 가서 쌓인 피곤을 풀겸 늦은 낮잠을 좀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
“바다가 보고 싶다.”
지금도 그 말을 누가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뒤로도 도대체 그 말을 누가 했는지 서로 진지하게 묻곤 했는데 나를 포함해 6명 모두가 자기는 분명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고, 단지 기억나는 거라곤 누군가가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을 했으며, 그 순간 거짓말처럼 갑자기 바다를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 6명 모두는 집에 전화를 해서 가족들을 모두 회사로 나오라고 연락을 했고, 막내인 임모과장과 김모과장이 펜션을 예약하고 관광버스회사에 전화를 해서 45인승 버스를 불렀다.
1시간여 만에 6식구가 모이니 순식간에 20여명의 대규모 여행단이 구성되었다. 우리들은 어리둥절해 하는 식구들의 따가운 눈길을 무시하고 버스에 몸을 실은 후 속초로 출발했다.
아이들도 10명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가장 큰 아이라고 해 봐야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가장 어린 녀석은 3살 정도였다.
다행히 속초로로 가는 길이 크게 막히지 않아 7시쯤 펜션에 도착하여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놀고, 어른들은 담소를 나누며 오래간만에 사치스런 여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초가을이라 아이들은 모두 내복을 입고 있었는데, 역시 어린아이들인지라 순식간에 친해져서 넓은 펜션의 거실을 뛰어다니며 즐겁게 놀기 시작했고, 특히 우리 딸 아이는 집에서 오빠하고만 놀다가 일행 중에 섞여 있던 초등학교 3학년 언니를 보자 졸졸 따라다니며 신나게 신세계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대포항으로 가서 늦은 아침을 먹게 되었는데, 그래도 바닷가에 왔으니 회를 먹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따라 회를 주문하고 낮술을 곁들여 즐거운 회식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대부분 회에 손을 대려 하지 않았으므로 아이들이 먹을 만한 대게찜과 튀김 같은 것을 한상 따로 차려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4살밖에 안된 우리 딸 아이가 회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마 또래 언니 오빠들이 많이 모여있고, 너무 즐거운 시간을 가지다 보니 회 특유의 서걱서걱한 맛을 따질 경황도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흡족하고 또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딸 아이는 거기 있던 어른들이 모두 놀랄 정도로 엄청난 양을 먹어 치웠고, 지금도 나와 아내는 그 광경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뒤로 2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때 번개여행을 다녀온 어른들은 만날 때마다 그 때의 추억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단 한명도 속초에 다녀온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제는 성인이 되었지만, 당시 그 여행에 동참을 했던 녀석들을 볼 때마다 그때가 기억나니? 하고 시시콜콜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며 어떻게 든 그 때 기억의 한조각을 끌어내 보려 했지만 어느 한 녀석도 내 기대를 채워주지 못 했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은 멋진 장소와 맛있는 식사메뉴보다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과 같이 시간을 보내며 즐거운 추억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소중했던 것이라고…
속초에 간 것은 기억하지 못 하지만 그날 그 녀석들은 사랑과 우정, 관심을 만끽했고 순간순간을 기억해 내지는 못하지만 아름다운 어린 시절 추억의 흐름 속에 그날이 단단히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