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쇼코의 미소, 최은영 (문학동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얼마간 만나지 않으면, 얼마간 연락을 주고받지 않으면 저 사람은 나에 대한 관심이 없는 거다. 카톡 읽씹―보고 답장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과 나의 심리적 거리를 나타낸다. 등등...
인간관계 관련 정답을 단정 짓는 문장들이 온갖 플랫폼들에 떡 하니 올라온다. 그런 글들을 보면 괜히 나도 싶은 마음에 나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저 말들이 일정 부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쇼코의 미소는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들의 관계에 딱 떨어지는 정답이 있을까. 가깝고도 먼, 멀고도 가까운 친구가 있지 않을까?
모든 관계는 변한다. 가깝다가도 멀어지고 멀어졌다가도 가까워진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없듯 똑같은 삶도 없고 똑같은 관계도 없다. 세상에 정답이 있는 관계는 없다.
진심이 닿은 관계만이 그 둘 사이를 비로소 연결한다. 진심의 여부는 관계를 맺고 있는 그 두 사람만이 진정으로 알 수 있다.
쇼코와 소유. 그들은 유사한 인물 같으면서도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다. 비슷한 점도 꽤 있다. 두 사람 모두 삶에서 할아버지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족 관계의 결핍이 있다. 삶의 우울과 불안을 겪는다.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렇다고 그들이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은 것도 아니다. 심지어 각자 삶을 사느라 서로를 잊고 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관계이었을지라도 누구보다 더 큰 존재감으로 위로해 주고 공감해 줄 수 있는 관계도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 관계의 깊이는 마음 간의 진정한 교류 여부에서 판가름 난다.
나에게도 쇼코처럼 마음속 깊숙이 남아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 교환 학생을 갔을 때 만났던 한 외국인 언니다.
자주 연락을 하고 싶었는데 한국에 돌아오고 각자의 삶에 집중하면서 서서히 멀어졌다. 중간에 한 번쯤 연락을 했을 법도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느 날 심지어 해킹을 당해 타의로 연락처를 전부 초기화해 버린 이후로는 더더욱 연락이 힘들어졌다.
그러나 가끔은 언니와 함께 바라봤던 언덕 위 하늘이 생각난다. 그 순간 우리 둘 사이에서는 불어오는 바람과 모래냄새가 있었다. 광활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함께 느끼던 그 순간들은 돌이켜보면 돌이켜 볼수록 더욱 그립고 애틋하다.
서로 살아온 날들을 이야기하며 공감하기도 하고 위안하기도, 위안받기도 했다. 분명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았음에도 서로의 감정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했다.
언젠가 연락이 닿아 다시 만날 날이 오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는 언니에게 위로를 받는다. 나는 그 순간의 우리들을 내 삶에 영원히 지고 갈 것 같다. 언니에게도 그런 나의 마음이 한 줌 닿기를 바라본다.
한편 최근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성찰해 보는 기회가 있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나도 이 세상의 한 존재이고 저 사람도 한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정답은 없다. 상대방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노력한 나 자신을 토닥인다. 상대에게 알게 모르게 주었을 상처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반성한다. 반대로 상대가 준 호의와 상처를 생각한다.
우리들의 삶은 단순한 동화가 아니다. 우리들은 평면적인 인물이 아니다. 한 사람은 선한 면도, 악한 면도 있다. 호의적인 부분도 있고 날카로운 부분도 있다. 그럴수록 난 더욱 단단해지고 더욱 따뜻해지고 싶어진다.
책을 두 번 읽었다. 처음에는 속독으로 그 다음번에는 천천히 내 속도대로 읽었다. 단편 소설 속 인물들의 삶들이 너무도 가슴에 아려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작가는 각각의 단편소설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한다. 우리들의 존재 자체를 이야기한다. 응웬 아주머니의 삶을 이야기하고, 말자 할머니의 삶을 이야기한다. 한지와 영주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미카엘라와 엄마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한편 우리가 단순히 커다란 역사의 흐름으로만 알고 있는 사건의 진정한 피해자들인 응웬 아주머니, 순애언니 그리고 순애언니의 남편. 미카엘라, 소민 등이 등장한다. 나는 감히 그 심정을 헤아릴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녀이고 누군가의 부모이다.
정치, 이념, 사상을 떠나 이 소설에서 밝히는 모든 사람들의 진짜 주인공들의 삶을 추모한다. 적어도 내 자신이 그들을 규탄하지 않기를 그들의 소중한 마음을 짓밟지않기를 바란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 곳에서는 진정한 공감과 사랑이 있다. 순애언니가 엄마를 용서한 이유는 인생의 한 순간의 자신에게 진정한 사랑을 나눠준 사람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마주한 누군가는 더없이 신기하고 특별하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의 일부분만을 공유하고 알고 있을 뿐이다. 그 누군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애정이 가득 담겼으면 좋겠다.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들로 누군가를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오늘 하루도 바라본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참조 출처 : 『쇼코의 미소』최은영, 문학동네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