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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별펭귄 Oct 27. 2023

결국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이방인이다.

[책 리뷰] 이방인, 알베르 카뮈 (더클래식)

저자 : 알베르 카뮈 | 출판 : 더클래식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읽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책을 온전히 느껴볼 수 있을까. 저자의 마음을 조금 더 알아볼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다. 물론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한다'라는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 책을 읽고 소화해내는 나만의 방식을 탐구해보는 중이다.


 이번 책 <이방인>은 인상 깊었던 문장, 표현이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스크랩하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보는 방식으로 리뷰를 작성해 보았다.




이방인 제1부. 2건의 죽음들


    

순식간에 밤이 유리창 위로 깔렸다.
관리인이 스위치를 올렸을 때
별안간 쏟아지는 불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오히려 앞이 캄캄해졌다.

마지막 전차들이 지나가면서
거리에 남아 있던 소음들도 함께 실어갔다.


전반적으로 작가의 문체가 간결하고 감각적이라 술술 읽혔다. 특히 풍경, 심경 묘사들이 너무나도 절묘하고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공감각적인 비유가 특히 많았는데 그만큼 세련된 문체로 느껴졌다. 간결한 비유와 표현만으로 문장을 구성하고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저자의 서술 방식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언덕 위로 부는 바람에는
소금기가 실려 있었다.
아름다운 하루가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야외에 나가본 일이 없었다.

엄마 일만 아니었으면
산책하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짤막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게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고
한낮의 균형, 행복을 느끼던 바닷가의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다시 네 발을 쏘았다.

총알은 보이지도 않게 깊이 박혔다.

마치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소리 같았다.


 소설은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된다. 읽는 내내 찝찝한 기분이 드는 동시에 소설 속 발생한 사건들과는 별개로 주인공 사고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용납되어 다소 당황스러웠다. 주인공은 살인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평범한 모습, 평범한 사색들이 당혹스러웠다. 간혹 뉴스에 머그샷으로 등장했던 평범한 범죄자들의 모습들과 모든 악은 평범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매사에 무덤덤하고 그저 생각이 많은 사람이군 싶다가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생각과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내 입장에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주인공이 자기 엄마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였다. 주인공은 엄마의 죽음에도 울지 않는다.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저 무덤덤해한다. 아니 오히려 장례절차를 지루해하기까지 한다. 이런 주인공을 보고 처음에는 가정폭력, 불우한 가정환경 등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정 내지는 극도의 슬픔 때문에 감정적으로 무감각한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소설에서 그런 기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엄마의 장례 다음날 주인공은 너무도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인근 해수욕장으로 수영을 하러 가고 데이트를 즐긴다. 늘 그랬듯 사람들을 관찰하며 사색에 잠긴다. 욕정을 느끼지만 사랑을 느끼진 못한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듣고 있다고 느껴지 않는다. 주인공이 마치 망망대해에 홀로 있는 무인도처럼 느껴진다. 책 제목 그대로 주인공은 이  세상의 이방인인 마냥 존재한다.


 그런 이방인은 도대체 왜 총을 쏘아 사람을 죽인 것일까.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바닷가를 굳이 되돌아가 자신과 직접적인 원한관계도 없는 이를 살인한 것인가. 따지고 보면 그가 죽인 아랍인은 그저 그렇게 알고 지낸 지인의 원한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충분히 모른 척할 수 있었고 그에겐 굳이 살인을 벌일 동기가 없었다.


 총을 쏜 행위가 과연 어떤 의미인건지, 주인공은 그저 사이코패스 부류의 인간인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소설 속 묘사된 총을 쏘는 장면만으로는 충분히 주인공의 심리가 해석되지 않았다. 그렇게 주인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다소 허망하게 1부가 끝났다.




이방인 제2부.

과연 이방인은 누구일까



 2부에서는 감옥에 갇힌 주인공의 온갖 사색들이 촤르륵 펼쳐진다. 그만큼 인상깊은 구절도, 이해하지 못할 구절도 또 그렇기에 이해되는 구절도 많았다. 생각보다 스크랩한 문장이 많아 소분류로 문장들을 나누어 리뷰를 작성해보았다.



1.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주인공의 심리


어쨌든 무슨 일이든간에
절대 과장해서 말하면 안 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내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불편들을 제외하면
나는 그다지 불행을 느끼지도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시간을 보내는 게
큰 문제였다.

과거를 추억하는 것을 배운 뒤로는
심심해서 괴로운 일은 없었다.

가끔 내 방을 생각했는데
머릿속으로 한 구석에서 출발해
한 바퀴 돌고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방법이었다.


그때 나는 바깥 세상에서 단 하루만을
산 사람도 감옥에서 백 년 정도는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부에서는 도저히 살인을 저지른 자의 생각으로는 믿겨지지 않는 주인공의 속마음이 나타난다. 주인공은 사람을 죽인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본인이 죄인이라는 자각을 뒤늦게, 그것도 방청객들의 반응에 겨우 알아챈다.





그때 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아는 얼굴을 찾아 말을 건네고 대화를 나누는 게

마치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들끼리 서로 만나 즐거운,
무슨 클럽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나는 무엇인가가 방청석 전체를
술렁거리게 만들었다는 것을 느끼고
처음으로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럴 때마다 사형 집행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일을 후회했다.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
그런 문제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심지어 감옥에서의 생활을 불편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고 서술한다. 오히려 감옥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탐구한다. 그와중에 찾아낸 방법은 제법 창의적이고 흥미롭기까지 하다. 이에 더해 그동안 사형집행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말한다. 나는 결국 주인공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저 책을, 주인공의 말과 심리를 읽어가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2. 덧없는 인생에 대한 통찰



감옥에 있으면 시간관념이 없어진다는
얘기는 분명히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그런 것들이
별 의미가 없었다.

하루가 얼마나 길고 동시에 얼마나 짧을 수가 있는 것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내기는 물론 길었지만,
하루하루가 어찌나 길게 늘어지는지
하루가 다른 하루로 흘러넘쳐
경계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하루하루는 그렇게 이름이 사라지고
어제나 내일 같은 말만이
내게는 의미가 있었다.

(중략)

인간의 삶 속에 적어도 한 번쯤은
바퀴가 있어 거스를 수 없는
사전 계획 속에서도 우연과 요행이
변화를 일으킨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 서른 살에 죽는 것이나
예순 살에 죽는 것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어떤 경우든 당연히
그 후에는 다른 여자와 다른 남자들이
살아갈 것이고

그런 일은 수천 년 동안 계속될 것이다.

아무튼 지금이 됐건 이십 년 후가 됐건
언제든 죽게 될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실보다 분명한 것은 없다.



 주인공 자체를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공감과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지루한 감옥 속에서 하루하루 보내는 것을 마치 물이 넘쳐흘러 경계가 사라진 것에 비유하며 시간의 영속성을 표현한 부분,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그 모든 삶을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풀어나가는 사유의 흐름도 모두 인상깊었다.


 유구한 인간의 역사적 순환을 다른 남자와 다른 여자가 살아간다고 표현한 문장이 낯설고 또 새롭게 다가왔다.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으면서도 이미 우리네들 인생이 늘 그래왔었던 것 마냥 당연하게 느껴졌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나는 그 이유를 잘 안다.
당신 역시 그 까닭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 부조리한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내 미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상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오지도 않은
세월을 거슬러 불어오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날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내게 주어진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쓸고 지나가면서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번씩 인생에 대한 무상함을 느낄 때 누구나 저런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무언가 허탈하고 공허한 느낌. 함께 있지만 함께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외로운 순간순간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르게 쳇바퀴 속에 갖혀 하루하루 흘려보내는 것 같은 기분들.


 인생은 덧없는 것이다. 무형의 시간을 보내는 건 때로는 길고 때로는 짧다. 이 모든 말들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기에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당연시했고 익숙하게 넘겨버렸다. 하지만 작가는 참신한 표현, 깔끔하고도 단호한 문장들로 우리들에게 그 사실들을 통렬하게 상기시킨다.





3. 삶의 끝자락에서 느낀 죽음



거기 생명이 꺼져가는 양로원 근처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보고 싶어졌던 게
틀림없다.

아무도 그 누구도 엄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릴 권리는 없다.


내게 남은 소원은 오직 하나,

모든 것이 완성되고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질 수 있도록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그날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와
증오에 가득 찬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매일 매 순간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죽음은 우리 곁에 늘 존재한다.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해 인간은 애도를 표한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애도의 표현 중 하나인 울음에 권리를 부여한다면 ─주인공의 말과 같이─ 우리에게는 그럴 권리 자체가 없었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이 왜 엄마의 죽음에 울지 않았는지 알 법도 했다.


 하지만 인생은 권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눈물을 흘리고 아파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결국 언젠가는 죽음을 겪을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강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죽음의 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종국에 죽음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여전히 주인공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 범주 밖에 있다. 증오의 함성을 받고 싶어하는 이방인의 심정을 헤아릴 순 없지만 그의 죽음에 대한 해방감에 나의 정다운 무관심이 깃든다.





4. 그저 반해버리고 만 묘사들



눈을 뜨자마자 바로 위에서 별이 보였고
들판의 소리들까지 들려왔다.

밤 냄새, 흙 냄새, 소금 냄새가 풍겨와
관자놀이가 시원해졌다.

여름의 묘한 평화가
밀물처럼 내 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는데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는 소리였다.


 작가의 감각적인 문장을 읽을 때면 내 모든 감각세포들이 깨어나는 기분이다. 정말이지 한 문장만으로 머릿속이 상상으로 가득 찬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소설가는 인간을 관찰하고 사유하는 직업이라고 들은 적 있다. 그만큼 이 작가는 인간과 자연을 관찰하고 또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낼 줄 아는 진정한 작가이다.


 물론 이 책은 번역본이다. 그만큼 간결하고도 감각적인 우리말로 공을 들여 소설을 번역하신 번역가 분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하지만 내 해석 능력이 닿는대로 언젠가 작가의 원본도 읽어보고 싶다. 이런 표현력 넘치는 문장을 읽을 때마다 번역 되기 전 작가의 사유가 온전히 담긴 문체도 느껴보고 싶다는 욕심이 난다.






결국 세상 모든 이들은 서로에게 이방인이다.



나는 그 안에 이방인이며
왠지 침입자 같았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모든 고통을 씻어 주고
희망을 없애 버리기나 한 듯

온갖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가 가진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이 열린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
마치 형제 같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주인공은 사형선고를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리면서도 끝까지 이 세계에서의 이방인으로 산다. 어머니의 죽음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의 살인행위도 전부 이방인인 그에게는 닿지 않는 무형의 형체였을 뿐이다.


 그러나 결국 이 세계는 그런 주인공과 닮았다. 세계가 가진 정다운 무관심, 정답지만 사람을 외로이 만드는 그 모든 것. 세상 사람들은 모두 서로에게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주인공도 세계도 심지어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방인>을 읽는 독자도 결국엔 이방인이다.


 난 이 책을 읽을 때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여전히 그를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것을, 심지어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까지 작가가 안배했다고 느껴진다.

 

 나에게 그가 이방인이듯 그에게 나도 이방인이다.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듯 그도 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 그를 이해할 수 없고 주인공도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도 모두 내 단편적인 생각들과 행동들로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각자 모두에게 이방인인 그런 존재인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이방인이다.




By.  민트별펭귄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
인용 출처 : 『이방인』알베르 카뮈, 더클래식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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