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하얼빈, 김훈(문학동네)
김훈 작가의 <하얼빈>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유독 내 눈길을 끌었다. 김훈 작가도 하얼빈도 모두 내게 익숙했기 때문일까.
김훈 작가님은 워낙 명필로 알려진 우리나라 작가님이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못들어본 적 없는 베스트셀러를 쓰신 분으로 유명하다.
어떤 강의를 들을 때 작가님의 문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말을 길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며 교수님이 든 예시가 김훈 작가님의 글이었다. 김훈 작가님은 간결하지만 핵심을 담은 육중한 문체가 특징이라고 들었다. 그 때문인지 한번쯤은 작가님 책을 꼭 완독해봐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매번 김훈 작가님 책을 읽는 것에 실패했다. 시도조차 못했다. 핑계이겠지만 뭔가 책 제목들이 전부 긴 장편의 대하 드라마 같아 한번 읽을 때 한두달씩 오래 걸릴까봐 지레 겁먹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 내가 이번에 큰맘 먹고 김훈 작가님의 책을 읽게 된 건 아마 제목 때문일 것이다.
하얼빈은 뭐랄까. 내게 제 2의 고향같은 곳이다. 해외에서 체류하며 타지의 문화를 오래도록 겪어본 곳이 다름아닌 하얼빈이라 더 그렇다.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그때 하얼빈의 추억들은 지금도 아련하니 내 기억속에 남아 나의 일부를 구성한다.
이 책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 이야기다. 직접 하얼빈을 가보고 직접 안중근 의거 108주년을 기념하여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다녀온 사람으로 더더욱 책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다.
그렇기에 이번에 책 <하얼빈>을 읽게 되어 기쁘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안중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철천지 원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은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정체모를 힘이 있다. 그래서 더더욱 궁금했다. 남들 다 아는 안중근 이야기를 작가는 왜 정성들여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걸까.
책을 다 읽은 후 모든 의문은 사라졌다. 어떤 명언 중에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 내가 달라진다면 그 책은 좋은 책이다.' 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책을 읽기 전 나에게 안중근은 단순히 역사 속 대단한 위인이었다. 비범하고 굳은 신념을 가진 독립투사.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법한 존경하는 인물. 나였다면 절대 못했을 일을 해낸 의지의 끝판왕.
그러나 내가 알고 있던 역사는 고작 한 줄짜리 였다.
"안중근의사가 민족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안중근도 사람이었다. 우리들처럼 불발탄이면 어쩌지 걱정도 하고, 독립운동 하느라 가족들을 못 챙겼다는 미안함을 가진 가장이었다.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 그가 '살인하지 말라'는 종교적 교리와 국가의 존폐의 위기에서 갈등하는 순간에는 무슨 감정이었을지 짐작하지도, 아니 짐작한 적도 없었다.
이 책은 안중근을 역사책 속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닌 우리처럼 고민하고 가족들을 생각하고 또 이토를 쏘지 못할까 맘졸이던 인간 안중근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록 이토를 쏘진 못했지만 그와 함께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위인, 우덕순에 대해 재조명했다. 거사를 치르기까지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자들은 알았다. 그 둘의 마음은 같았다.
책은 이토 히로부미의 시점과 안중근의 시점을 교차하여 서술했다. 내 사고방식이 다소 극단적인 측면이 있어 이토 부분이 나오면 솔직히 그냥 성질이 났다. 고작 이런 생각으로 우리나라 국권을 침탈한 것이더냐 이토 히로부미, 잔뜩 화가 나 부들부들거리며 다소 유치하고도 치졸한 마음으로 책을 보기도 했다.
이토는 제국주의 사상에 깊이 빠져 자신의 일을 정당화하는데 특화된 사람이었다.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조선의 국권을 침탈하는 것이 문명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여전히 말도 안되는 억지에 화가 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토보다도 그의 사상에 동조한, 친일로 돌아서버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 속상하고 화가 났다.
나는 책 속의 활자 한 자 한 자를 통해 작가가 정말 많이 공부하고 알아보고 이 책을 쓰셨구나 느꼈다. 직접적으로는 책 제일 마지막 부록의 참고자료들, 간접적으로는 읽는 내내 구체적이고 상세한 시간적, 공간적 묘사들이 그러했다.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쓰셨을지 작가님이 존경스러웠다.
제일 감명 깊었던 부분은 안중근이 재판받기 직전의 대목이다.
안중근은 재판관, 검찰관,
서기, 속기사들을 차례로 응시했다.
거기에, 말을 붙일 수 없는 세계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관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여기까지 오기는 왔구나.
여기서부터는 말을 붙일 수 없는 세상을
향해서 말을 해야하는구나.
여기서부터 다시 가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여기서부터 사형장까지......말을 하면서......
안중근은 몸속에서
버둥거리는 말들을 느꼈다.
(출처 : 『하얼빈』 김훈, 문학동네)
나는 그가 총을 쏘고 외친 "코레아 우라"가 단순한 외침이 아닌 이제는 너무도 간절한 한마디였음을 아주..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안중근 안에서 버둥거리는 수없이 많은 말들을 고르고 골라 그가 간절히 외친 것은 바로 조국의 독립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조선의 독립을, 조선인을 대표해 온 세계에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골랐을 절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이전에 내가 하얼빈에서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갔을 때의 경험으로 이 서평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때는 안중근의사가 이토를 쏜 지 108주년이 되던 날이었다. 거사일 10월 26일에 맞춰 기념관을 방문하기 위해 달력에도 따로 적어놓고 기념관 가는 방법도 미리미리 찾아봤다.
그리고 당일, 나는 먼저 거사가 일어났던 하얼빈역을 찾았다. 당시 하얼빈역은 공사중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쏜 자리에 발판 기념물이 있다고 해서 그 자리에 서보리라 잔뜩 기대했는데 실망이 컸다.
조선과는 완전히 다른 이 타지에서 무슨 생각을 했으며 어떻게 저 곳에서 이토를 쏠 수 있었을까... 공사중인 하얼빈역을 다소 서글프게 바라보다가 택시를 잡고 안중근 기념관으로 향했다.
택시기사님께 안중근 기념관으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택시기사님이 매우 반가워하며 말했다. "저도 안중근 의사를 알아요, 하얼빈에서는 엄청 유명한 분이에요." 그 말을 들을 때의 마음 속 깊은 울림이 여전히 생생하다.
택시기사님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기는 중국 동북지방 하얼빈 본토 토박이며 이곳 역시 강제 징용, 731부대 마루타 실험 등 일제의 가혹한 침탈을 겪었기 때문에 여전히 일본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일본 제국주의 앞잡이, 이토 히로부미를 쏜 안중근의사의 의거는 지금까지도 동북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사건이라 말했다.
그리고 안중근의 나라에서 온 후손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과연 내가 이 벅찬 감동과 감사 인사를 대신 받아도 될까 싶었다. 괜시리 울컥했다. 나는 이 택시기사님의 감사한 마음이 언젠가 이곳에 있었던 안중근 의사님에게, 그리고 그 당시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원하던 그의 마음 속에 꼭 전달되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By. 민트별펭귄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 안중근기념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