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여행의 이유, 김영하(문학동네)
[책 리뷰] 여행의 이유, 김영하(문학동네)
<알쓸신잡>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김영하 작가를 알게 되었다. 작가님이 조곤조곤 말씀하실 때 공감이 되기도 하고 어떻게 저런 참신한 생각을 했을까 감탄도 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님들은 신기하다. 사람들이 그저 오감으로 느끼고 그저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버리는 생각들을 글로 눈앞에 펼쳐 보이는 능력을 갖고 있다. 덕분에 나는 책을 읽으며 내 생각의 표현 범위를 덕분에 넓히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느낀 바를 저자가 딱 적절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통쾌하고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미 예능에서 보여주신 작가님의 표현력에 내적 공감대를 많이 형성하였기에 최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님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를 읽어보기로 했다. 무의식중에 느꼈던, 말로는 도대체 어떻게 표현하나 싶은 문장들을 속 시원히 적어주신 작가님 덕에 마음 속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며 책을 술술 단숨에 읽었다.
그중 가장 속시원했던 구절들을 사례로 들며 나만의 여행의 이유를 생각해보려 한다.
모든 여행은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완전한 타지에서 느껴본 타자로서의 외로움, 익숙한 장소와 익숙한 사람들과 멀어져 있다는 것에서 느껴지는 상실감 등 부정적인 감정들도 있었고, 아름답고 광활한 자연을 보고 느꼈던 경이로움, 낯선 풍경 속에서 느껴지던 왠지 모를 위안, 새로운 장면에 대한 호기심 등 긍정적인 감정 역시 느꼈다.
그런 경험들은 지금의 내 자신이 있게 했다. 일상에서는 너무도 당연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고, 세상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모든 게 현재시제로 서술된다.
…(중략)…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나'라는 주체가 있지만
그 주체를 초월하는 생생한 현재가
바로 눈앞에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원경으로 물러난다.
범속한 인간이 초월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자아가 지워지고 현재가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의미로
육박해오는 이러한 초월적 경험은
시간이 충분히 흐른뒤에야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
언어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은 '생각'이 되어
유통된다. 유통되지 않고 재고로 남은 기억은 창고 깊숙한 곳에 묻혀 잊혀진다.
작가님의 비유가 너무 마음에 들어 가져왔다. 언어가 택배상자가 되어 구석진 창고에 있거나 트럭에 담겨 이곳저곳 다니는 모습 등 마치 언어가 눈에 보이는 듯한 유쾌한 상상도 해보았다.
여행을 다닐땐 힘듦, 즐거움, 신기함, 그 모든 감정을 그 순간 생생히 느낀다. 하지만 정작 그 경험들은 일상으로 돌아와 다녀온 경험들을 곰씹어볼 때 의미를 가진다. 특히 그 기억들을 생생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언어다. 누군가와 다녀왔던 여행에 대해 대화를 나누거나 기록해두는 행위가 우리들의 기억을 생각으로 유통시켜 우리 기억속에 오래도록 남게 한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여행은 마치 삶과 같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어봤다. 여정이 있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예상치 못한 다양한 일들을 겪는다. 나는 삶 속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할 때 유독 많이 당황하고 곤란해 한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나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고 그 안에서 기쁨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게다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서 여행을 간다.
삶 그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라면 지금 이순간도 현재에 몰입하여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지나간 과거에 미련을 두지 않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떨쳐버린 채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에 대한 깨달음을 얻듯이 기나긴 삶속에서도 파트를 나누어가며 깨달음도 얻고 재충전 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은 눈에 보이는 적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어떤 허깨비와 싸우는 것일지도.
한동안 스트레스 때문에 고생을 한 적이 있다. 분명 외적인 요인에서 기인했다고 여겼지만 결국 나는 내 스스로롤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 사건은 지나간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나는 그 과거를 반추하며 스스로롤 괴롭게 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거의 상처받은 내 자신이라는 허깨비와 싸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인(아치볼드 매클리시)은 자존심을 다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에 지구라는 작은 행성, 푸르게 빛나는 우주의 오아시스와 우리 서로를, 모든 동식물을, 같은 행성에 탑승한 승객이자 동료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암시한 것이다.
우주를 보면 수십억개의 별들이 있다. 우리는 그 중 하나인 지구에 살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찮은 먼지같다가도 내 옆의 인연이 더없이 소중히 느껴진다. 이렇게 수많은 별들 가운데 지구에 함께 태어났고 수많은 나라 가운데 이 나라에 태어나 당신을 만났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눈에 보이는 나무들, 풀잎들, 옆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 모두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함께 인생을 여행하는 동료로 더없이 기쁘게 살아가보자고 굳게 다짐해본다.
신뢰란 죽음만큼이나 동기를 짐작할 수 없는 어떤 인물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힘이다. 낯선 이를 신뢰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중국을 혼자 여행하던 적이 있었다. 안그래도 신문에 중국의 인신매매 사건이 유난히 보도가 많이 되던 때라 걱정되기도 했지만 꼭 해보고 싶었던 경험이기에 가능한 많은 곳들을 가보려고 했었다. 한편 돈이 부족한 시절이라 새벽 기차를 구매한 탓에 새벽 3시까지 외딴 기차역에 가야했다. 그 당시 나는 중국의 조그마한 시골도시에 있었고 혼자였으며 버스도 끊긴 시간이기에 택시를 타야했다.
나는 외딴 타지에서 만난 택시기사님을 신뢰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용기였다. 하지만 택시기사님은 여느 기사님들과 똑같이 어느 지역에서 왔느냐 물어봐주시며 혼자 여행을 하다니 기특하다고 하지만 조심히 다녀야 한다고 따스한 미소와 함께 응원을 해주셨다.
택시를 타기 전까지, 그리고 타기까지 나는 매우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낯선 사람을 결국 믿었고 다행히 나는 따순 말을 들었을 뿐더러 나홀로 여행에 대한 응원도 받았다. 그렇기에 작가의 말들에 더욱 공감이 되었다.
내가 그동안 여행자, 지나가는 사람 등에게 베풀었던 소소한 환대와 나를 그동안 마음 따뜻하게 만들었던 누군가의 배려들이 하나 둘 머릿속에 떠오른다. 여행지에서 혹은 일상 중에도 마음이 따뜻한 이들을 운좋게 많이 만났다. 그리고 나 또한 물어보는 이에게 따뜻히 대해주려 노력한다.
내가 베푼 친절이 바로 내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좋다. 작가의 말처럼 친절들이 돌고 돌아 서로가 서로에게 더 많이 베풀고 사는 세상이 되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여행의 이유』김영하, 문학동네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