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문학동네)
한동안 깻잎논쟁, 롱패딩 논쟁 등등 몇 가지 흥미로운 논쟁거리들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간단히 해보자면, 내 동성친구가 깻잎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나의 연인이 젓가락을 들어 깻잎을 떼어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절대 안된다는 사람과 그게 뭐 어째서 라는 사람 등등 사람들마다의 답은 다양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는 내내 이 논쟁이 떠올랐다. 관계라는 것, 특히 인간이 맺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관계인 연인, 부부, 서로간에 지켜야 할 관계의 적정선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이성인 친구와는 완전한 친구로서의 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가.
이러한 논쟁은 아마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 계속될 것 같다. 그렇게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을 하도록 만든다.
처음에 제목만 읽어봤을 때 물리학 저서 정도로 오인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소설제목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아니 어떤 작가가 소설제목을 이렇게 짓나 싶어 책을 집어들었다. ―최근 들어 이 책이 눈에 띄었는데 알고보니 김영하 작가의 책 소개로 유명해져서 서점에서 잘 보이는 곳에 있었던 것이었다.―
책을 읽은 후에도 제목을 저렇게 지은 작가의 의도가 너무 알고 싶었다. 빛과 물질의 상관관계가 궁금해졌다. 빛은 파장의 형태인 전자기파, 물질은 질량을 가지며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는 실체다. 열심히 지식백과를 읽어봤다. 음..처음으로 물리학에 문외한인 내가 안타까웠다.
그리고 어렴풋이 깨달았다. 오히려 작가가 의도한 건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라는 제목을 마주한 독자들의 당혹스러운 감정과 소설을 읽을 때 그들의 관계를 바라보는 독자의 감정을 비교해보라고 한 것은 아닐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느낌을 제목에 투영하여 전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게 정확히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느낌. 하지만 그동안 우리 주변에 평범하게 존재하기에 어렴풋이 알고 있던 빛과 물질들. 분명 알고 있다고 느꼈지만 정작 우리가 모르고 있던 관계들에 대해서 말이다.
강의실 밖에서는 얘기라곤
나눠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로 인해
핏속부터 편안하고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로버트와 헤더의 미묘한 관계의 시작이었다. 핏속부터 편안하고 따뜻한 관계. 대화만으로도 서로를 알고 느낄 수 있는 관계.
그 관계를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까. 이것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시선에 떳떳하기도 떳떳하지 않기도 한 은밀한 만남은 반복된다.
이것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느낌과는 아주 다른 감정이다.
나는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헤더는 남자친구 팀과 결혼을 하고 남은 생을 함께 늙어갈 수 있다고 명확하게 확언하는데도 그를 사랑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사랑하지 않지만 사귈 수 있는가. 사랑하지 않는데 결혼하고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가.
그렇게 그녀는 죄책감을 느꼈다. 사회가 정의내린 보통의 사랑과는 모순되는 그녀의 감정은 도대체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그러나 무슨 말을 떠올려봐도
모든 것이 다 부정확하게 여겨졌다.
나 자신에게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를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헤더의 말마따나 이 관계를 정의내리고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헤더의 시선으로 소설을 읽은 내가 느낀 건 결국 사랑이었다. 헤더와 로버트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구나. 그들은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서로 나눴구나 싶었다.
육체적인 관계 전혀 없이 단순히 대화만 나누었음에도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 관계.
그리고 인간으로 하여금 기어코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관계.
그렇게 이 둘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궁극적인 질문으로 회귀하게 된다. 사랑이 무엇인가. 사람들마다 정의하는 사랑의 의미가 다 다르다. 누구는 별도 달도 다 따다 줄 수 있는 희생적인 사랑, 스킨십과 성적인 애로스적 사랑, 포괄적인 범위로 모든 사람과 만물을 사랑하는 아가페적 사랑 등등 사랑의 범위도 제각각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을 잘 알고 있는 걸까.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도 쉽게 내뱉지만 정작 우리가 아는 사랑을 명확히 정의내려 볼 수 있을까. 제목을 보았을 때 느꼈던 당혹스러웠던 감정이 똑같이 밀려 들어왔다.
나의 행동이 배신임을 아는 것은
나 자신의 마음,
어쩌면 나 자신의 가슴뿐이었다.
결국 나는 이 문장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문장이라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사랑이 정확히 무엇인지 답을 전혀 모른다. 평생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녀가 느꼈던 죄책감을 그 척도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건 그 관계를 겪은 자신 스스로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헤더가 로버트를 평생 사랑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팀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팀에 대한 사랑으로 변화했을 수도 있고 친구들과의 우정 등을 편안하고 따뜻한 관계로 정의내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스스로의 죄책감과 사회가 정의내린 부정한 관계와의 모순. 가장 솔직하고 사실에 가까운 건 결국 우리가 직접 겪고 느낀 감정과 마음이지 않을까.
아마 이 소설은 인간 감정의 내밀한 부분을 직설적으로 찌르며 우리들 마음 속에 있었을 죄책감들을 찔렀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없이 날카로운 소설이다.
“자만심은 물리학자에게 있어
가장 큰 방해요인이지요.
뭔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발견의 기회를 없애버리게 되니까요.
그럼에도 나는 이 말에 유념하며 끝까지 겸손하고자 한다.
단순히 물리학자에게만 해당되는 구절이 아니라고 느꼈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정,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론과 물질, 감정 등이 너무도 많다.
책을 읽고서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상이 저마다 다르다. 나는 사회적 정의의 사랑과 본질적인 사랑의 대비에 초점을 맞췄다면 어느 누군가는 헤더의 죄책감을 논할 지도 모른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나의 저변을 넓혀가는 것이 앞으로도 주욱 내가 원하는 일이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문학동네)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