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코끼리의 마음, 톤 텔레헨 (아르테)
코끼리에게 나무에 오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산다는 것일까.
이룰 수 없는 꿈과 소망일까? 내가 기어코 이 땅에서 해야만 하는 운명의 굴레일까.
너라면 그래도 올라가고 싶을 것 같니?
사실은 나무에 잘 오르지도 못하고,
결국 떨어져 아플 걸 알면서도 말이야.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지나가면서 본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이름 모를 참가자들이 떠올랐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그런 사람들.
그러나 매번 수차례 수십차례 오디션에 떨어져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 석자 말하는 것조차 못하는 그런 이들이 생각났다.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새파란 조명 아래로 터덜터덜 퇴장하던 그네들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도전한다는 건 무엇이길래 사람들 깊숙이 울림을 주는 것일까? 코끼리는 떨어지고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왜 계속 나무를 올라가는 것일까?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그냥.
어린 시절 '왜' 라는 질문에 '그냥'이라고만 답을 해 부모님의 화를 돋군 적이 있었다. 재미삼아 했던 '그냥', 나도 잘 모르겠으니 '그냥', 회피하고 싶어서 했던 '그냥'. 제각기 달랐던 그냥그냥들.
그런데 그냥, 그냥 살면 안되는 것일까.
나는 그냥 코끼리이고,
그냥 나무에 오른다.
나도 그냥 책을 읽었고 그냥 서평을 쓴다.
작가는 각종 다양한 동물들을 통해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준다. 우리는 책 속 그들의 마음 속에서 우리들의 마음을 발견하곤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간다. 바닷가재, 두꺼비 같이 자의식 과잉과 분노조절장애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아르마딜로처럼 매번 상상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까마귀처럼 자존감이 바닥인 사람도 있다. 족제비처럼 남들과 어울리는 파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우리는 모든 동물이 서로 같지 않은 것처럼 우리네들도 제각기 서로 다르게 살아간다.
나 자신을 동물에 비유하자면 나는 작은 동물이다. 사회에서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가 세고 용맹함을 지녔으며 멋진 털을 뽐내는 커다란 동물이다.
매번 나는 주변 사람들한테 말한다. 세상이 정글이라면 나는 그 틈바구니 안에 살아가는 다람쥐, 토끼, 펭귄 같이 작은 생물일 거라고 말이다. 가끔은 풀 한뿌리, 돌맹이 하나 조차 아닌 것 같을 때도 있지만 말이다.
한때 나는 멋진 치타, 용맹한 호랑이, 기가 센 현명한 사자가 되기를 꿈꿔왔다. 그러나 속담 한 구절은 세상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듯 말한다. 황새 따라하려다가 뱁새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말이다.
인생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그만 뱁새가 키 크고 멋있는 황새를 계속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생은 정말이지 불공평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불공평하다는 것마저 체념해 버리게 된다.
나는 헛된 꿈과 희망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내게 주어진 한계를 거역하고 나만의 길을 가겠다며 뱁새가 황새 따라하듯 행동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 어쩌면 공평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너무 공평해서
코끼리만 넘어지고
다른 이들은 아무도 넘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이 세상 모든 것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공평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책이 던진 말을 그대로 받아 묻는다. 그런데 공평하다는 게 과연 어떤 걸까?
애초에 세상이 공평할 수는 있는 걸까?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교활한 여우에게 뒷통수를 제대로 맞기도 하고, 독을 지닌 뱀한테 물렸다가 가까스로 도망쳐 나오기도 했다. 기가 센 멋진 호랑이들 사이에서 자괴감에 빠져 우울해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 동물이라면, 정글이라면 지긋지긋하게 겪어본 듯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살아있다. 나를 살뜰히 살펴주는 다람쥐 같이 멋진 친구가 있다. 기린처럼 목이 길어 높은 곳에 있는 나무열매도 잘 따먹고 자신의 과실을 잘 나눠주는 친구도 있다.
그래서 나같은 토끼, 펭귄 같이 작은 동물들도 살 수 있는 게 세상이구나 싶다.
한편 책속에서 다람쥐는 코끼리의 친구다. 언제나 그의 말을 묵묵히 들어준다. 그리고 꿈을 좇는 친구의 한 걸음 한 걸음을 곁에서 지켜봐준다. 코끼리가 힘겨워 할 때면 잠자코 내려와 이불을 살포시 덮어준다.
나도 친구들에게 다람쥐 같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삶의 도전이 힘에 겨워 부칠 때면 다가와 쉬어갈 수 있는 나무 밑동이 되고 싶다.
꼭 나 자신에 대해 뭘 생각해봐야 하나?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내가 만약 코끼리라면?'
내가 만약 코끼리라면 나도 나무에 오르고 떨어지기를 계속 할 수 있었을까?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나의 주관과 줏대를 가지고 살 수 있었을까?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떨까?
코뿔소는 외부적인 시선으로 코끼리 자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존재이다. 코뿔소도 코끼리를 보고 나무위에 올라가고 싶어진다. 나무에 오르는 시도를 했고 아니나 다를까 나무에서 떨어졌다. 자신과 똑같은 시도를 하고, 똑같이 실패한 코뿔소를 바라보는 코끼리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한편 두더지와 지렁이의 입장에서 본 코끼리에 대한 관점도 인상 깊었다. 코끼리가 떨어져서 나는 땅의 울림은 다른 누군가에겐 방해받는 소음으로, 색다른 오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남에게 주는 피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언젠가 떨어져서 그 이상의 것을 마주하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게 어렴풋이 죽음에 대해 고민한 코끼리는 깊은 사색에 빠진다.
무엇인지도 모르겠는 죽음에 대해 고민해본 코끼리는 어디에도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어갔다. 마치 죽음에 대해 인식하고 횡단보도를 신경써서 건너는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물맴이도 나처럼
이런 모든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까?
생각이 너무 많아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갖 생각에 생각을 다 하고 있을 때면, 나도 코끼리 같이 생각했다. 남들도 나같이 이렇게 생각이 많고 힘들게 사는 걸까. 왜 나는 생각이 많은걸까. 단순하게 살면 참 좋을 텐데. 계속해서 이어지는 생각의 늪에 나는 고뇌했다.
남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없으니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 있다.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 고유의 특성이자 나를 나답게 만든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는 것. 동물들은 제각각 자신의 입장에서 코끼리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경험과 주관에 따라 제각기 다른 결과다. 결국 앞서 말한 것의 동어 반복이다. 결국 우리는 모든 동물이 서로 같지 않은 것처럼 우리네들도 제각기 서로 다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감상과 다른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느낀 바가 다를 것이다. 나는 살면서 수많은 다른 이들의 삶을 듣고 바라보고 느끼고 결국 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책을 읽는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 『코끼리의 마음』톤 텔레헨, 아르테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