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문학동네)
제목에 이끌려 그리고 조곤조곤 말씀하시던 작가님 모습에 이끌려 책을 집어들었다. 천문학자가 바라보는 것이 별이 아니라면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블랙홀? 은하? 우주? 미지의 생명체?
이 책은 천문학자의 에세이다. 하지만 천문학자의 에세이이자 우리 모두의 에세이이기도 하다.
천문학자도 과학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우리와 같이 슬픔과 기쁨, 경이로움과 부끄러움, 성취와 좌절을 겪는 사람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바라볼 때 직업이라는 테두리 안에 그 사람을 가둬놓고 자기 맘대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이의 직업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짧은 찰나에 벌써 온갖 사회적 편견들과 세상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들에 사로잡힌다.
책을 읽기 전 나조차도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오랫동안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매일 밤 밤하늘의 모든 별들을 줄줄이 꿰고 있을 테며 우주에 가고 싶다는 상상으로 가득 찬 괴짜같은 천재이면서도 학문의 대가인 천문학자님은 무엇을 이야기할까? 우주와 천문학에 대한 상상으로 설렜다.
독자들이 제각기 천문학자에 대한 온갖 멋진 상상과 기대로 부풀어 저자를 빤히 바라본다. 저자는 사람들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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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하던 장내가, 아니 마음속이 조용해진다. 완전한 침묵 속 저자는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책을 택한 모두의 시선을 소중하게 하나하나 바라본다. 그리고는 서서히 입을 뗀다. 휴지에 서서히 스며드는 물처럼 우리들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천문학자가 조망하는 삶은 여러 빛깔로 다채로웠다. 그 안에는 연구자로서의 삶이 있었고, 여자로서의 삶이 있었고, 강사로서의 삶이 있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의 삶이 있었다. 반짝반짝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곳에 별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각자
인생의 흐름이 있는 것이고,
나는 삶을 따라 흘러다니며 살다보니
지금 이러고 있다.
저자는 천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기까지 자신에게 운명적인 흐름 같은 건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그저 삶을 따라 흘러 들어왔고 살다보니 지금 천문학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들처럼 평범한 한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가 마음 깊숙이 울림을 준다. 흘러가다보니, 포기하지 않다보니 어느 순간 다다랐다는 천문학자의 길이다.
'대학이란 무엇인가'
대학시절 이 질문에 심취해 고뇌했다. 나는 취업 준비 인재 양성소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학문을 배우고 싶었다. 더 많이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1학년부터 공모전, 서포터즈 등 스펙을 준비해두지 않으면 변변찮은 직장마저도 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내가 사는 시대에 대학에서 학문을 깊이 공부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조금 괴짜였다. 사회를 향해 나름대로의 반항을 했다.
남들보다 학점을 더 들었다. 듣고 싶은 강의는 죄다 신청했다. 모든 학기를 꽉꽉 채워 들었다. 친구 따라 청강도 들어갔다. 청강생에게 자유로운 교수님 수업은 괜시리 모른 척 하고 앉아서 한자라도 더 들었다.
좋게 말하면 대학 등록금을 뽕 뽑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남들 번듯한 직장에 취직할 때 미련하게 학문에 목맨 것이다.
책에서는 대학, 학문 그리고 배움에 대한 교수님의 성찰이 나온다. 저자의 진심은 과거 미련했던 한 대학생의 어깨에 포근히 내려앉았다.
관찰하고 탐구하는 그 자체가
학문적 태도다.
관찰하고 탐구하는 자체가 대학의 목표인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각박하게 좁은 취업문을 뚫고 스펙을 얻겠다고 난리인 세상이 아니길 바란다. 배우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탐구하는 자가 기꺼이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이 되기를 바란다.
한편 삶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끊임없는 평가의 연속이다. 연구자로서도 여성으로서도 저자는 계속해서 평가를 받는다.
여성 과학자의 삶은 만만치 않다. 연구를 지속하면서 가정과 일의 양립을 지키는 일은 주변의 도움 없이 불가능 그 자체였다.
저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평가받는다. 엄마로서의 삶에 충실한지, 여자로서 연구에 집중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지 평가받는다.
평가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원하진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시선들이 조금 더 인간적이고 따뜻해지길 바란다. 각자 주어진 인생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며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존중해주길 바란다.
내가 고요히 머무는 가운데
지구는 휙휙 빠르게 돈다.
살다보면 나만 뒤쳐지고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저만치 앞서 나가는데 왜 나는 아직도 이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이래도 되는 것일까. 조바심이 난다.
하나의 정보도 뒤쳐지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최신 이슈를 파악하고, 승진을 빨리 하기 위해 남는 시간에 가산점이 붙는 자격증을 공부하고, 이제는 건강마저 일찍부터 부지런히 준비해야하는 시대, 영양제를 챙겨먹고 부지런히 운동을 한다.
숨이 가쁘게 달리다 보니 숨이 찬다. 잠시 멈추고 숨을 헥헥대며 주위를 둘러본다. 나만 제자리인 듯싶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각자 인생의 흐름이 있다. 저자는 말한다.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아주 빠르게 나아가는 중이라고. 잠시 멈췄대도, 다 괜찮다고.
이순간도 지구는 빠르게 돌고 있다. 지구가 말한다. 내가 빨리 돌테니 당신은 잠시 삶에 여유를 가져도 된다고.
자연은 늘 예외를 품고 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실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것만이 언제나 어디서나 진실이다.
저자는 삶을 관통하는 한 가지 진실을 알려준다. 자연에는 늘 예외가 있다는 것.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로 예외로 가득하다.
비단 과학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당연히 여기던 것들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한번쯤 돌아보는 마음이 우리 삶에도 필요하다.
삶은 춥고 어둡고 광활하다. 우리는 그 안에서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의 우주는 어떤 행성과 위성, 별을 품고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심채경, 문학동네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