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아무리 가까운 가족관계라 할지라도 서로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비단 부모자녀 관계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몸 속에 같은 피가 흐르고 비슷한 유전자를 물려 받았는데 서로 어쩌면 이렇게까지 다른 것일까.
<젊은 근희의 행진>은 동생과 언니의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소설 속 대치구도가 꽤나 마음에 든다. 꼰대 언니 문희와 북튜브를 하겠다는 동생 근희.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하나뿐인 동생이 떠올랐다. 문과생과 이과생. 사고뭉치와 얌전이. 무계획인 칠렐레 팔렐레와 틀에 박힌 계획없인 불안한 동생. 과연 닮은 구석이 있을까 싶은 나와 동생의 모습들.
평상시 나는 동생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춰졌을까.
서로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한 배에서 태어나서 같은 부모 아래 자라왔다. 소설은 문희와 근희의 관계를 통해 우리들의 삶과 가족간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나의 어릴 적 기억과 맞물려 인상깊은 구절이 하나 있었다.
지들이 뭔데 내 동생을 욕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 있는 권한은
나한테밖에 없었다.
어린시절 동생이 친구들한테 한 대 맞고 왔길래 잔뜩 성이 나 동생 친구들을 혼쭐내주고 온 적이 있었다. 지들이 뭔데 내 동생을 때려? 너는 왜 맞고만 있어?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씩씩대고 있던 기억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동생을 한번도 안때렸던가. 우리 둘은 매번 치고박고 싸우는 것이 일상이었다. (부모님 말로는 내가 일방적으로 동생을 쥐어박은 적도 많다고 하지만, 당시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던 나로서는 조오금 억울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우리는 여전하다. 서로 몸싸움만 없다 뿐이지, 동생앞에서는 늘 툴툴거리고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는다. 하지만 밖에서 동생 관련 흉이라도 들을라 치면 울컥 화부터 올라오는 사람이 바로 '나'다.
한번은 부모님께서 '우리들이 가면 너희는 둘이라 서로 잘 의지하며 살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을 당시 나는 그저 심드렁 하니 넘겨버렸다. 부모님이 없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건 당연하고, 나의 존재가 동생이 의지할 역할로만 귀결되는 것이 불만족스럽다는 이유 하나, 그리고 각자 가정을 꾸리면 점점 자기 삶을 사느라 멀어질 것이 뻔한데,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법한 미래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또다른 이유였다.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근희의 행진은 나의 행진과
명백히 다를 것이란 걸.
동생의 행진과 나의 행진 역시 다를 것이다. 우리는 진로도 명백히 달랐을 뿐더러 관심사도 다르다. 앞으로도 우리는 각자의 삶에 열심히 살 것이다.
그러나 혈육이라는 정이 뭔지 알 것도 같다. 소설 속 문희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녀의 눈물과 마음에 하나가 된다.
결국 서로 떨어져 있더라도 한번씩 서로의 마음 한 구석에 의지할 존재가 바로 형제자매 아닐까. 다투고 싸울지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걱정부터 할 서로다. 나도 마음 속으로나마 세상을 향해 동생을 위한 오글거리는 한 마디를 살포시 전해본다.
내 동생 많관부.(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의 줄임말)
어쩌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하루 하루를
요카타라는 말로 체념하고,
요카타라는 말로 달래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오늘을,
다시 내일을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할머니의 요카타는 힘겨운 오늘과 알 수 없는 내일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다. 어찌할 수 없는 일들에, 이미 내 손을 떠나버린 모든 것에 대해 할머니는 요카타로 마중을 나가고 보냈다.
이 소설을 읽으며 10년을 살아도, 100년을 살아도, '처음 사는 인생은 모두 매한가지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번생은 처음이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서툴러도, 역사의 모진 풍파를 맞아도, 때로는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어도 우리는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요카타'에는 그런 토닥임이 들어있다.
그러니까 눈을 감는다는 것은
눈꺼풀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눈을 감고 눈꺼풀 안을 들여다본다. 빨강, 초록, 파랑 세 가지 색이 어지러이 점점이 찍혀있다. 지지직거리는 TV 조정 화면의 까만색 버젼 같다. 주인공은 무슨 심정으로 미역줄기를 다듬다 눈을 감고, 커피를 마시다 눈을 감고, 기도를 하며 눈을 감은 것일까.
라디오 인터뷰는 할머니가 스스로의 과거를 반추해볼 수 있는 역할을 제공한다. 질문에는 답이 기다린다. 헌데 지나가버린 과거에 대한 정답이 있긴 할까.
할머니는 미역을 다듬듯 자신 삶의 보기 좋은 부분만을 남겨 보여준다. 그것이 그동안 살아온 세상이 원하는 답이었다는 듯 말이다.
한편 나는 새로운 지역에 여행을 가면 그 지역 박물관이나 역사관을 가보고 싶어한다. 솔직히 사진과 설명만 줄줄이 걸려있는, 영 재미가 없는 곳은 몇 번 지나친 적도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특정 한 지역의 역사에 대해 흥미가 많은 편이다.
한 할머니의 삶과 지역의 변천사. 한 사람의 삶 속에 담겨있는 역사란 어떤 것일까. 100살 쯤 되면 알 수 있을까.
휴대폰이 진화해온 세월, 코로나가 할퀴고 지나간 시대, 인공지능이 바꿔놓을 미래까지, 먼 미래 나의 삶의 궤도에 어떤 과거가 녹아있을까 생각해보는 오후다.
어릴적 무지개빛으로 현란하게 빛을 내는 자개장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지금도 자개 가구 하나쯤은 집안에 들여놓고 싶은 욕심이 여전히 있다. 자개장이야말로 한국적인 매력을 지닌 신묘한 가구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그런 자개장 안에 마법의 힘을 불어넣었다.
이 소설은 한국판 나니아 연대기다. 자개장은 들어가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마법의 옷장이자 문이다.
늘 출근하기 싫어 아침마다 '순간이동 하고 싶다' 연신 외쳐대던 내게는 참으로 탐이 날 수밖에 없는 가구다. 한편으로는 자개장이 범죄로 남용되지 않고 마음이 선한 이들에게 가서 다행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자개장의 마법은 어느새 우리들을 스쳐 지나가고 소설은 결국 본질에 다가간다. 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돌아온다는 건 무엇인가. 다시 돌아올 것을 믿고 우리는 늘상 떠나는 것인가.
내가 소리 내어 말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누구도 모르는 자리에 남게 된다.
자개장의 용도는 믿기 힘든, 매혹적인 비밀이다. 사랑하는 이에게까지 말하기 망설여지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자 마음 저변의 망설임이다.
여성을 계보로 물려온 마법의 힘은 점차 당돌한 후대에게로 이어졌다. 그들의 비밀은 밝혀내는 자의 것이었다. 어느날 그 선을 주인공의 엄마가 깨뜨린다. 비밀을 가족들과 함께 공유한다. 자개장에 대한 욕망은 어느새 가족 모두의 것이 된다. 그리고 절약을 이유로 독점된 자개장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불만을 야기한다.
그러나 자개장 안에는 욕망뿐만 아니라 되돌아오지 못하면 어쩌지 걱정하는 애정어린 마음이 들어있었다. 우리는 늘 여행이 끝나고 가족에게로, 집으로,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되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인 것이다.
그들은 가고 싶었던 곳에 가서 다시 되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거친다. 일방향뿐인 자개장의 통로는 마치 미래만을 바라보고 흐르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모두 마법스럽고 신비하지만 한 방향으로만 간다.
그 한방향은 직선이 아닌 나선형이다. 둥글둥글 회전하는 나선형은 우리네들 삶의 굴곡을 닮은 듯도 하다.
첫 장면을 보자마자 비위가 상했다. 연필 샌드위치를 먹는 꿈이라니. 연필은 무슨 맛일까 궁금하던 어린 시절, 연필 끝을 혀로 낼름 먹어보고는 금세 퉤퉤 거렸던 기억이 설핏 났다. 하물며 연필을 통으로 여러 개 얹은 것도 모자라 지우개까지 집어넣은 샌드위치라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난 후 애증했던 할머니를 잃고 입맛마저 잃어버린 주인공이 저 편에 누워있다. 소설 첫부분에 느꼈던 가벼운 호기심의 너울은 커다란 파도의 애잔함이 되어 내 마음속으로 거세게 밀려왔다.
현실적으로도 구수한 맛은
최후의 맛이다.
애증했던 간장 냄새가 그리움으로 되돌아오면 다른 무슨 맛을 느낄 수 있을까. 맛으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구수함으로 귀결된다. 구수함은 입맛이 없어 먹는 누룽지 국물에도, 미음조차 먹기 힘든 이들의 유동식에도 들어 있었다.
애증하던 이의 죽음은 주인공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의 감정은 끔찍한 맛으로 감각된다. 꿈과 현실을 오가며 계속 먹을 수밖에 없는 무언가로 표현된다.
애증하는 이의 죽음을 겪고 어지러운 감정의 늪에 빠진 이의 마음을 차마 다 알 길이 없어 마음 근육이 뻐근해졌다.
죽음이란 무엇이기에 인간을 이렇게 만들어 놓는 걸까. 갖은 방법으로 속수무책으로 다가와 버리는 죽음은 언제나 늘 당혹스럽고 두렵고 무섭다. 언젠가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빼앗아갈 죽음, 이 세상으로부터 떨어뜨려놓을 죽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다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주인공이 다시금 입맛을 되찾기를, 악몽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일이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2023년을 마무리하며 2023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집을 읽어보았다.
모든 일들은 겉으로는 쉬워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하기 어려운 일들이 참 많다. 글도 그렇다. 깊은 시간 작가와 함께 고뇌하고 사고하고 이렇게 세상에 태어난 소설들을 가슴 깊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각각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이별을 경험하고, 사기를 당하며, 죽음도 경험한다. 그 험난한 서사 속에는 작가의 진심이 깃든 따뜻한 문장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렇기에 공감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었다.
책은 세상을 향한 질문이다. 책속에 있는 수많은 물음들에 답을 찾아본다. 물론 여전히 구하지 못한 것들도 많다. 앞으로도 계속 답을 찾아 나설 것이다. 질문은 나를 새롭게 만들고 세상을 살아나갈 원동력이다.
내게도 참으로 다사다난하고 힘겨웠고 또 다행스럽고 행복했던 2023년이 흘러간다. 차마 예측도 하지 못할 2024년, 모두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길, 조금더 서로 공감하고 따뜻해지는 세상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 『젊은 근희의 행진』이서수, 문학동네
『요카타』정선임, 문학동네
『자개장의 용도』함윤이, 문학동네
『연필 샌드위치』현호정, 문학동네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